호연재의 후손들이 빚어 마셨다는 가양주인 송순주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봄에 갓 올라 온 솔순으로 빚어내는 송순주는현재 대전 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송관장의 부인인 윤자덕 여사가 기능 보유자로 선정 되어 있다.
나 어렸을 적에 山監(산감)은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소나무 벌채 감시가 주임무인 산감은 밀주 단속까지 겸하고 있었는데 몰래 막걸리라도 담갔다 들키는 날이면 몇 만원이라는 벌금을 물어야 했던 것이다. 요새 몇 만원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몇 만원이면 집안이 휘청거리게 된다. 그래서 어렸을 때 동네 어귀에서 놀던 아이 하나가 "야, 상감온다!"라고 소리치면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허둥지둥 집안으로 뛰어들어가서 땔감으로 쌓아둔 생솔가지와 밀주를 숨겨야 했다. 박정희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런 산감의 위세는 계속 되었던 것이다.
나는 송봉기 관장에게 송순주가 어떻게 밀주 단속을 피해서 여태까지 전통을 보존해 올 수 있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 분의 말씀은 이상하게도 산감들이 송순주를 보고도 아무 말 않고 그냥 가더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사랑채가 두 채나 되는 이 집의 넉넉함이 그들을 너그럽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제사 준비를 도우려고 모여드는 친척들이 많아져서 더 앉아 있기가 거북해졌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대전 광역시 민속자료 제3호인 이 집을 왜 단순하고 멋없게 송용억 가옥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큰 사랑채인 소대헌이라 부르는 것이 어떨까 싶었기 때문이었다.堂號(당호)는 그 집의 품위와 격을 나타낸다. 송봉기 관장도 내 얘기에 기꺼이 동의했다. 공부원들이 문화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고도 했다. 얘기를 마치고 나니 2시간 가까이 흘렀다. 얘기를 끝내고 나서 이 집의 가묘에 대한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더니 송 관장님은 우중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손수 안내해 주셨다.
맞배지붕 양식인 宋門의 사당 앞에도 어김없이 만화방창의 꽃 천지였다. 모란꽃이 막 피기 시작했고 영산홍, 자산홍도 활짝 피어 있었다. 안채에서 송 관장님과 윤 여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와서도 사랑채인 소대헌과 오숙재를 한참을 둘러 보았다. 이 삭막한 도시에서 이렇게 장엄한 꽃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큰 사랑채인 小大軒(소대헌) 섬돌 바로 아래 잔뜩 꽃을 머금고 있는 저 백모란은 언제 쯤에나 그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릴 것인가.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
솔직히 꽃나무는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
내가 너를 그리워하는 것,
이것은 터뜨리지 않으면 곪아 썩는 못난 상처를
바로 너에게 보내는 일이다
꽃이 허공으로 꽃대를 밀어올리듯이
그렇다 꽃대는
꽃을 피우는 일이 힘들어서
자기 몸을 세차게 흔든다
사랑이여, 나는 왜 이렇게 아프지도 않는 것이냐
몸 속의 아픔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내 그리움도 향기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살아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 안에 가득 고인 피,
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을때
꽃은, 핀다.
안도현 詩 <꽃> 全文
그렇다면 저 모란꽃이 아직 피지 않은 것은 아직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몸 속에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터뜨리지 않으면 곪아 썩는 못난 상처'가 없기 때문일까. 벌써 피어버린 소대헌 뜨락의 자산홍을 바라보며 그 꽃이 가진 상처에 동조의 눈짓을 보내며 터벅터벅 송용억가를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