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는 극단 노뜰의 <동방의 햄릿>이 공연중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의 플롯을 해체, 재구성하고, 대사를 배제한 형태로 음악과 조명, 배우의 몸짓을 이용한 작품이다.
일본의 토가 페스티벌,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 베세토연극제에 초청 공연되어 현지의 관객들에게 극찬을 받은 바 있는 이 작품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국립극장의 '소극장 연극 우수 초청작' 첫 번째 작품에 선정되어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공연되게 되었다.
극단 노뜰은 강원도 원주 문막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연극을 하는 독특한 극단으로 공동체 생활을 바탕으로 한 완성도 높은 연극을 만들고 있다. 극단의 대표는 <동방의 햄릿>을 연출한 원영오씨가 맡고 있다.
4월 22일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원영오씨를 만나 <동방의 햄릿>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셰익스피어 극은 탄탄한 플롯, 아름다운 대사가 특징이다. 그런데 공연 중인 <동방의 햄릿>은 <햄릿>의 플롯을 해체, 재구성하고 대사까지 뺐다. 셰익스피어극과는 거리가 먼 공연 형태인데?
"<햄릿>의 플롯이 워낙에 잘 되어있기 때문에 플롯을 압축하거나 상징화시켜도 이해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국내 공연 당시 실험적, 전위적인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사실 <동방의 햄릿>은 실험성과 전위성을 앞세웠다기 보다 가급적이면 저희가 이 작품을 한국을 떠나서 다양한 관객들에게 보여 주길 원했기 때문에 모국어를 손해보는 감이 있더라도 배제하고 가는 게 좀더 많은 관객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소통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사를 절제하고 대사 이외에 다른 수단들을 찾아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실험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실험적이라기 보다는 보편적인 기호를 계속 찾아내려는 작업이다."
- 보편적 기호를 찾는 노력은 얼마만큼 진행됐다고 생각하는가?
"<동방의 햄릿> 공연했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서양 사람들이 쉽게 이해했다. 플롯을 많이 깨고 부분적으로는 우리말을 사용했지만 그것이 세계관객들에게 의미전달이란 면에 있어서 크게 지장이 되지 않았다. 어떤 면에 있어서 서양의 관객들이 우리보다 작품을 더 잘 이해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석해봤는데 결국은 정서적인 원시성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생각해 냈다.
어떤 연극적인 언어라던가 어떤 연극적인 형식이라도 정서적으로 공감 할 수 있는 코드가 분명히 필요하다. 이 작품에서 역시 형식이 어떻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성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아주 동양적이지만 또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아주 원시적인 정서, 예를 들어 '사는 게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화해와 평화가 무엇인지' 이런 아주 원론적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정서와 형식으로 잘 결합이 되었을 때 모국어를 뛰어넘는 제3의 소통의 기호가 나온다."
- <햄릿>을 재구성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는가?
"<햄릿>은 워낙에 드라마가 좋다. 주된 뼈대를 이루고 있는 플롯 외에 곁가지의 다양한 드라마가 형성되어 있다. 그것을 다 풀어내기 위해서는 구구절절한 설명이 너무 많이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아니어도 '로얄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너무 잘하고 있다.
가장 핵심이 무엇인가 찾았다. 어차피 <햄릿>은 복수비극이다. 복수비극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있다. 이 복수비극이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우리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을 찾았다. 그래서 찾은 사람이 거투르드, 햄릿, 죽은 왕, 삼촌 이 네 사람이다. 그 외에 나머지 인물들은 없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네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됐다."
- 극단 노뜰은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더 잘 알려진 극단이다. 극단에 대한 소개와 그 동안의 성과?
"국내보다 국외의 공연에 노력하고 있는 이유는 좀 더 다양한 관객들을 만나고 싶어하는 욕구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을 하나 만들면 대학로라든지, 한국의 어디랄지 그곳에서 공연하고 잘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고 이 공연이 레퍼토리가 되어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계속 검증되고 성숙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세계 각국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많은 한국의 공연들 중에 서양에 소개된 것은 대부분은 전통적인 것이 너무 지나치다. 그래서 서양의 관객들은 한국에는 아직도 조선시대가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한국의 공연 양식하면 대부분이 한복과 관련된, 또한 사물과 관련된, 부채춤 이런 등등, 아주 전통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에는 현대예술은 존재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미술이라든가 다른 장르는 한국의 컨템포러리가 아주 잘 소개되어 있지만 공연예술장르에 있어서 그것은 너무 부족했다. 그건 우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저희를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 거라면 한국의 컨템포러리가 이렇게 존재하고, 한국의 2~30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이 한국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진보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 사람들도 저희 공연을 통해서 한국의 컨템포러리가 이런 것이 있구나 알 것이다. 그것이 일회성 공연이라면 실망하고 말겠지만 저희가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컨템포러리의 진보에 대해서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그것이 저희가 얻어낸 성과라면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대사가 배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은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가?
"드라마를 많이 버리고 작품을 하다 보니까 청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극성이 있는 음악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다. 공연에 사용한 음악들 대부분이 단순히 효과적인 면보다는 음악 자체로서도 어떤 극적 흐름을 가지고 있는 음악을 썼고 가급적이면 한국의 전통음악은 배제하고 생각했고, 동시대적인 음악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는 동시대적이되 정서적으로는 아주 동양적인, 그런 면에 있어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 극중 극이 나온다. 이것을 그림자극, 인형극을 이용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무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어디까지일까라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배우뿐만 아니라 인형, 그림자, 빛이 가지고 있는 선이 이런 것들이 다 무대에서는 언어가 되고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각적인 면에 있어서 언어의 확장 이런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가면이나 그림자 이런 것들을 배제하지 않고 공연과 잘 조화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 강원도 문막에 연극촌을 만들고 생활하고 있다. 어떻게 만들고 운용하는지?
"쫓기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도시에 있다보면 여러 가지 치이는 것이 있고, 시간에 쫓기고, 마음의 여유도 덜 생긴다. 그래서 한가로운 곳을 찾게 됐다. 물론 연극작업이라는 것을 시골에서 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이런 것들이 이상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모델을 통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쫓기기 싫어서 그곳을 선택했고 지금은 그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끼면서 작업을 한다. 부대낄 사람도 없고, 여러 가지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저희가 갖추어야 될 것도 없고, 편안하게 연습하고 연습실도 각자 원하는 만큼 연습한다. 그런 면에서 인격적인 성숙이 곧 작품에 반영될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연극은 일상이다. 연극이 곧 삶이고, 그러면 삶 자체에서 연극을 계속 논의하고 고민하고, 싸우고 발전할 수 있는 과정과 공간 시간들이 역시 그곳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사는 방법은 적당히 농사도 짓고 식사도 해먹고. 또 중요한 것은 시골에 살기 때문에 저희가 예술가로서 산다기보다 평범한 동네사람으로 산다. 대신 저희 직업은 연극이고, 동네 이웃들의 직업은 농업이다. 그분들과 담쌓지 않고 살려고 그러니까 성을 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칫 시골에 사는 분들을 보면서 '우리는 농촌사람들과 달라' 이런 예술가적인 프라이드 때문에 성을 쌓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게 아니고 우리도 똑같은 시골사람인데 우리는 그분들 일할 때, 농사지을 때 우리는 연극 연습을 하는 거다.
소통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한다.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저희 공연의 아주 중요한 관객 역시 이웃들이고 저희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스나 원천도 동네 이웃들이다. 농촌사람들처럼 살고 있다. 그래서 연극촌이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시골사는 어느 극단, 이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 <동방의 햄릿> 이후 계획
"<동방의 햄릿>은 일단 국내 공연으로서는 이번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다. 해외 공연은 새로운 페스티벌 등을 통해 별도로 접촉을 해서 공연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올 12월에 새 작품이 나온다. 새 작품은 이상을 찾아 떠나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여정을 담고 있다. 가제는 <귀환>이다. 태어나서 다시 한바퀴 돌아 땅으로 돌아가듯이 인생은 그렇게 돌고 도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출발해서 새로운 숲을 향해서 떠나는 사람들의 여정기다.
올 12월에 신작으로 공연하게 될 예정이다. 저희가 신작을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보통 1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이 작품은 이미 작년 가을부터 시작해서 12월에 한 번 초연을 했었다. 올 여름정도에 2차 시연을 한번 더 한 다음에 수정 보완을 해서 12월에 정식공연을 하게 될 것 같다."
-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