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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쇠 심장이 이 꽃길을 무심히 지날 수 있으랴
어느 무쇠 심장이 이 꽃길을 무심히 지날 수 있으랴 ⓒ 이형덕
물골안에 있는 예그린 농장에서 연락이 왔다. 복사꽃이 피다 못해 이제 지려하는데 너무 아깝다며 들르라는 기별이다.

달려가 보니, 분홍빛 물감을 들인 듯 산벚꽃잎이 떨어져 차마 밟고 지나기 아까운 길이 눈에 든다. 정신없이 바쁜 봄철이지만 모처럼 꽃구경하러 골짜기마다 바쁜 이웃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든다.

아침에 연락을 받고 갑작스레 기별이 갔지만 많이들 달려와 주었다. 어렵게 짬을 낸 시간이지만 막상 와보니 모두 오기를 잘했다고 이구동성이다. 아무리 바빠도 봄날의 꽃을 그냥 보낼 수야 있으랴.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여 온돌방에 불을 넣은 뒤라 그 숯불을 꺼내어 삼겹살을 굽는다.

잠시 손을 내어 머위 잎이며, 새로 나온 갓, 취나물, 이웃을 위해 남겨 두었다는 두릅까지 따오니 금세 상이 풍성해진다. 여자 분들은 금세 산에 들어가 더덕과 잔대를 몇 뿌리 캐어 온다.

아궁이에서 내온 숯불에 굽는 삼겹살구이
아궁이에서 내온 숯불에 굽는 삼겹살구이 ⓒ 이형덕
먹는 것도 뒤로 미루고, 얼마 남지 않은 복사꽃 구경을 한다. 15년 동안 산비탈을 개간하여 심은 묘목들이 튼실하게 자라 저마다 아름다운 잎과 꽃을 자랑한다.

복사꽃이 이웃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복사꽃이 이웃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 이형덕
모처럼 봄날에 여유롭게 길을 걸어본다
모처럼 봄날에 여유롭게 길을 걸어본다 ⓒ 이형덕
얼마 전에 내린 봄비로 저 아래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임로를 따라 잠시 산에 오른다. 여기저기 봄을 맞이하는 야생화들이 눈부시다.

봄산을 오르는 향기로운 산행길
봄산을 오르는 향기로운 산행길 ⓒ 이형덕
봄은 담장이도 아름답게 한다
봄은 담장이도 아름답게 한다 ⓒ 이형덕
산괴불주머니가 군락을 이루었다
산괴불주머니가 군락을 이루었다 ⓒ 이형덕
눈 내린 듯 흰꽃을 피워낸 조팝나무
눈 내린 듯 흰꽃을 피워낸 조팝나무 ⓒ 이형덕
서울에서 내려온 나이 드신 자매 분들이 여유있게 산길을 오르며 부르는 노래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 본다. 처음엔 낯설어하던 아이도 이내 봄의 들판에 흥겨워한다.

시원하게 늘어진 나무 그늘 아래서 농장 주인이 담근 발효효소에 취해 본다. 직접 길러낸 매실이며, 포도, 복숭아열매에 솔잎까지 황설탕에 발효시킨 효소는 술보다 달콤하면서도 얼큰히 취해 온다.

마루에는 올 포도 농사에 액비로 줄 효소단지가 놓여 있다. 당귀며, 한약재를 발효시킨 것이라는데 사람보다 더 좋은 보약 먹고 자란 포도란다.

저마다 봄 농사와 집안일 이야기꽃을 피운다. 무엇이 그리 바빠 꽃들이 오고 가는 것도 보지 못했을까. 전기가 없어 짧은 봄볕이 내려서는 걸 아쉬워하며 농장을 내려왔다.

이 아름다움이 있기까지에는 겨울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아름다움이 있기까지에는 겨울이 있음을 알고 있다 ⓒ 이형덕
지는 꽃이 아까워 이웃을 부른 그 마음이 더욱 향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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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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