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무현 대통령의 표정이 밝아졌다고 한다. 한동안 침울해 있던 노 대통령이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아 주위에 농담도 곧잘 건넨다고 한다. 북핵 위기의 먹구름이 걷혀서도 아니고, 경제 지수가 좋아져서도 아니다. 오랜만에 필드에 나가 '버디'를 잡아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바로 대통령의 오랜 '동지'이자 '동업자'요, '측근'인 안희정(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씨 때문이다. '소환 즉(卽) 구속'이라는 대검 중수부의 안씨에 대한 소환조사를 계기로 대통령이 웃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는데 뜻밖에도 4월30일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고서부터 안색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구속을 '기대'했던 일부 언론의 표정은 어두워진 느낌이 든다. 그뿐이 아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했던가. '똥 누러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이른바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의혹'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대하는 요즘 일부 언론의 태도가 딱히 그렇다.
대검 중수부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반장 김수남·주임검사 조은석)은 지난 4월4일부터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의 재수사에 착수한 이후 그간 두 갈래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하나는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염동연(민주당 인사위원·전 노무현 후보 정무특보) 관련 금품수수 의혹이고, 다른 하나는 나라종금 대주주였던 김호준 전 보성인터내셔날 회장과 김씨가 퇴출을 막기 위해 영입한 안상태 전 나라종금 대표의 정·관계 구명로비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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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종금 사건의 본말이 전도된 두 갈래 수사 방향
사안의 성격으로 보면 후자가 본류(本流)이고 전자는 곁가지에 해당한다. 그러나 금품 수수 당시에는 '별 볼 일 없던' 안희정·염동연씨가 대통령의 '측근실세'로 떠오른 지금은 그 본말이 전도(顚倒)되었다. 이 또한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만, '끈 떨어진' 과거 실세(구주류)에 대한 로비의혹보다는 현존하는 실세에 대한 로비의혹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현재의 실세'는 로비를 받은 당시에는 '힘없는 허세'였기에 '대가성이 전혀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국민 법감정은 별로 귀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의혹 사건의 얼개는 이렇다.
97년 11월 당시 김호준 보성인터내셔날 회장은 경영위기에 처한 나라종합금융을 인수한다. 그런데 나라종금은 김 회장이 회사를 인수한 지 4일만에 IMF체제를 맞이하게 되어 그해 12월 1차 영업정지를 당한다. 나라종금은 이듬해인 98년 5월에 영업을 재개하지만 2000년 1월에 2차 영업정지를 당해 같은 해 5월에 퇴출당한다. 그때까지 나라종금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2조3000억원이나 된다.
한편 나라종금 대주주였던 김호준 회장은 영업을 재개한 나라종금이 퇴출위기에 처하자 99년 5월 안상태씨를 나라종금 대표이사로 영입한다. 99년 5월부터 2001년 5월까지 2년간 대표이사를 맡은 안씨가 나라종금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김호준 회장으로부터 '스카우트비' 명목으로 받았다는 30억원 때문이다. 안씨는 검찰에서 "그 중 10억원 가량을 돌려줬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김 회장이 자신의 자금관리인인 최은순씨를 통해 안씨에게 30억원을 건넨 것은 나라종금이 위기에 처한 99년 8월부터 2000년 4월까지에 집중돼 있어 구명 로비자금이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이런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 회장과 안상태씨가 염동연씨를 포함한 정·관계에 로비자금을 뿌린 흔적과 함께 김 회장의 동생 김효근씨(40·전 닉스 대표이사)가 안희정씨에게 2억원을 제공한 혐의를 포착한 것이다.
염동연·안희정은 '노무현 사단' 두 쌍두마차의 바퀴
염동연(57) 민주당 인사위원과 안희정(39)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사단'을 이끈 두 쌍두마차 그룹의 핵심 인물이다. 노무현 후보의 정무특보였던 염씨는 이강철 조직특보와 함께 '시니어 그룹'의 쌍두마차였고, 대선후보 정무팀장이었던 안희정씨는 이광재 기획팀장(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함께 '주니어 그룹'의 쌍두마차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날에 외부인사로는 처음으로 염씨와 이강철 특보를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하며 두 사람을 격려한 것도 대선 '1등공신'인 이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한 배려였다. 당시 노 대통령이 외국의 취임 축하 사절 15명과의 면담 일정을 30분 간격으로 소화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취임 후 첫 비공식 일정으로 이들을 따로 불러 오찬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두 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젊은 시절 수산물 가공공장을 운영하면서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 부회장을 지낸 염씨는 90년대 들어 김홍일 의원이 이끌던 민주당 청년조직인 '연청'의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연청을 맡으면서 조직관리와 운영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조직의 귀재'라는 별명과 함께 동교동계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통합민주당 때부터 안면이 있던 노 대통령이 염씨에게 도와달라고 지원을 요청한 것은 지난 2000년 6월경. 동교동계와 가까운 염씨는 평소 가깝게 지낸 김경재 의원(민주·전남 순천) 등과 거취를 상의한 뒤 캠프에 몸을 싣게 된다. 본격적으로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노 대통령이 당시 염씨에게 맡긴 자리는 캠프의 좌장 격인 자치경영연구원 사무총장.
염동연, 연청 움직인 광주경선 1위의 숨은 공신
그는 노무현 사단에 합류하자마자 캠프의 맏형으로서 노 후보의 386세대 참모들을 이끌며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특히 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가 '김심(김대중 대통령의 마음) 개입론'과 '연청 개입론'을 거론하며 음모설을 주장해 파문이 인 적이 있는데, 실제로 광주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1위를 한 것은 염씨가 광주전남의 '연청' 조직을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염씨는 대선 캠프의 선거자금을 끌어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노무현 후보는 돈에는 '젬병'이었기 때문에 자금조달은 염씨와 386 참모인 '좌희정(안희정) 우광재(이광재)'의 몫이었다. '좌희정 우광재'는 주로 벤처사업을 하는 동창·선후배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고, 염씨는 30대인 안희정과 이광재가 상대하기에 버거운 중장년층 인사들을 상대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안씨가 받은 2억원을 이광재씨에게 전달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온 것이다.
아무튼 노무현 캠프의 정치자금은 대개 소액 후원금인 데다가 그것마저 구하기가 쉽지 않아 그때그때 자금을 변통해 캠프 살림을 어렵게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염씨가 후보 경선 당시 돈에 무심한 노 대통령의 경비를 보조하느라 자신의 신용카드가 정지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대선을 전후로 180도 바뀐 안희정·염동연의 진술
지난 대선 전에 안희정·염동연씨의 나라종금 금품수수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두 사람은 "한나라당이 선거에 이기려고 별 짓을 다한다"고 한 목소리로 부인했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이들의 발언은 "돈을 받긴 했으나 '생수사업 투자금'(안희정)과 '용돈'(염동연)일 뿐 대가성이 있는 뇌물은 아니다"로 바뀌었다.
염씨가 나라종금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의혹이 본격적으로 쟁점화되자 김호준 회장의 변호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김 회장이 염씨에게 건넨 돈의 성격을 이렇게 해명했다.
"염동연씨는 김호준씨의 중동고 선배이고 서로 절친한 사이였다. 염씨가 수자원관리공사 감사를 하다가 비리에 연루되어 감옥에 갔다온 후인 99년 8월경 김호준 회장을 찾아갔다. 염씨가 '실업자 신세가 됐다. 내가 당신 회사에서 도와줄 일이 없겠느냐'고 하자 김 회장이 '선배님이 무슨 할 일이 있겠습니까, 어려울 때 용돈이나 쓰시라'고 수표로 5000만원을 건넨 것이다."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한 뒤인 지난 4월 6일에도 문재인 민정수석은 "검찰이 오히려 두 사람을 무혐의 처리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어야 했다"고 두 사람을 적극 변호했다. 또 안씨가 돈을 다른 측근(이광재)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문 수석은 4월 8일 "악의적"이라며 "우리가 파악한 것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염씨가 화의 청탁과 함께 김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의 액수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2억8800만원으로 늘어났다. 상식적으로 '생활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액인 만큼 로비자금이나 정치자금으로 보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현재 검찰이 사용처를 조사하고 있는 2억8800만원은 염씨가 노무현 캠프에 결합하기 전인 1999년 9월~2000년 2월에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신은 '제2의 권노갑'이다"
범죄사실을 확정하는 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 염씨에 대한 수사는 뜻밖에도 쉽게 끝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법조계 인사에 따르면 수사검사는 "당신은 '제2의 권노갑'이다. 어차피 '전과'도 있고 처음이 아니니 '희생양'이 되어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염씨를 설득했고, 예상외로 염씨가 돈 받은 사실을 순순히 실토하는 바람에 수사팀 주변에서는 '염씨가 보기보다 순진한 사람이더라'는 말이 나왔다. 염씨는 4월 3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이날 밤 서울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다.
반면에 법원은 검찰이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청구한 안희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검찰은 안씨가 99년 7월 김호준 회장의 동생 효근씨로부터 투자금으로 받은 2억원을 2000년 11월 자신이 운영하던 '오아시스워터' 생수회사 매각과 함께 돌려주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이 설립한 자치경영연구원(옛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운영자금으로 사용한 것은 정치자금법 30조 1항에 위반('법이 규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받은 혐의')된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안씨가 김효근씨에게 "투자금을 연구소를 운영하는 나의 정치활동비로 지원해달라"고 얘기했고, 2억원이 사실상 연구소 운영자금으로 사용돼 정치자금으로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서울지법 영장전담 최완주 부장판사는 "안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인정되지만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데다 실형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영장 기각되자 칭찬에서 비난으로 표변한 언론
그러자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만 해도 칭찬 일색이던 일부 언론은 영장이 기각되자 하루 만에 비난 일색으로 표변(豹變)했다. 사실 검찰이 인권침해 소지가 큰 '포괄영장'을 청구할 때도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언론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영장이 기각되자 '내 그럴 줄 알았다'면서 영장 기각이 마치 검찰과 법원이 '짜고 친'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안희정·염동연씨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나라종금 로비 의혹 재수사 착수 25일 만에 거둔 첫 성과다. 현직 대통령의 핵심 측근 2명을 새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사법처리한 것은 나름대로 '성역(聖域) 없는 수사'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 4월 30일, '나라종금 로비의혹' 안희정·염동연씨 영장)
"나라종금 의혹에 연루된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함으로써 우려했던 대로 검찰수사가 안씨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 됐다. 권력과 여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느라 꼬일 대로 꼬인 수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검찰이 자초한 결과라는 인상마저 든다…(중략)…국회의원이 운영하는 외곽 정치단체의 사무국장급에게 정치자금법을 적용했다는 것은 어떤 의도성을 의심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사법처리의 모양새는 갖추되 가벌성이 약한 정치자금법을 활용한다는 검찰의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비칠 수 있다." (<조선일보> 5월1일, 사설 '나라종금, 결국 영구 미제 사건 되나')
10년 '노무현 살림' 해명하다가 설움 복받친 안희정의 눈물
그러나 구속영장이 기각될 것으로 예상하고 영장을 청구하는 검사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려면 판사와 '짜고 쳐야' 가능한데 그것은 사법부를 모욕하는 것이다. 오히려 영장담당 판사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안씨에게 심문을 상당히 심하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영장전담 최완주 부장판사는 노무현 사단의 '살림'을 맡아 노 대통령과 10년 넘게 고락을 같이 한 안씨에게 "돈을 받은 99년부터 이미 대선 출마 준비를 한 것 아니냐, 즉 처음부터 선거캠프 운영자금으로 쓰기 위해 모은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는 것이다. 판사는 또 "그 돈이 정치자금이라고 인정하면 당신에게는 더 유리한데 왜 부인하느냐"고 안씨를 다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노 대통령이 98년 7월 종로 보선에서 당선된 뒤로도 노무현 캠프는 돈 부족에 시달렸으며 문재인 변호사와 또 다른 가까운 변호사의 부인 등이 나서 그림을 팔러 다니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던 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희정이가 2억원을 만들어왔다"고 해 '그림 장사'가 중지됐다는 것이다. '오아시스워터'의 회계장부에 2억원이 들어온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결국 2억원을 사실상 노 캠프의 '정치자금'으로 썼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안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돈에 관해서는 '젬병'이었다"면서 "그 때문에 사무실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때는 보험모집 대리점까지 생각했었다"고 가난한 살림살이를 맡아 겪은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그 과정에서 설움이 복받친 안씨가 판사 앞에서 눈물을 글썽였다는 것이다.
앞서의 법조계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그 순간 조은석 주임검사는 반사적으로 판사의 얼굴을 쳐다봤고 판사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의 기복을 느낀 그 순간 직감적으로 영장발부는 틀렸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조은석 검사는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곧바로 반박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영장 발부와 기각의 갈림길에서 판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안희정의 눈물이었던 셈이다.
노무현 "안희정은 나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사람"
안희정의 눈물은 '동지'이자 '동업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도 움직였을 법하다. 노 대통령은 영장이 기각된 다음날인 5월 1일 MBC 100분토론에 출연해 '안희정씨가 노 대통령 대신 매를 맞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에 "안희정씨는 오래 전부터 나의 동업자이자 동지였다"면서 "나를 위해 일했고 나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노 대통령은 "안희정씨가 사리사욕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수사가 끝났다 할 즈음에 구체적 문제들을 밝히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노 대통령이 영장이 기각된 안씨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면서도 영장이 발부된 염씨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왔다. 특히 구주류 인사들을 배제한 신당 창당 움직임과 관련해 민주당 일각에서는 '연청' 사무총장 출신인 염씨가 범동교동계나 구주류 인사들과 가깝기 때문에 '버리는 카드'로 쓴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했다. 실제로 염씨는 92∼95년 연청 사무총장, 95∼98년 국민회의 사무부총장을 지내 구여권 인사들과 더 가까운 사이다.
검찰이 전남 보성 출신으로 전남지역 정치인들과 교분이 있는 안상태 전 나라종금 대표에 대한 '포괄영장'을 청구한 것도 구주류를 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실제로 검찰은 재수감된 안상태씨가 입을 열지 않는 바람에 본안사건에 해당하는 '퇴출저지 로비의혹' 수사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포괄영장' 청구는 검찰의 '승부수'
안희정·염동연씨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검찰 수사팀에서는 "안상태의 상태가 안좋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는 로비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안상태씨가 입을 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검찰이 무차별 계좌추적으로 사생활과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포괄영장'을 청구한 것은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포괄적 압수수색 영장이란, 압수수색 대상 계좌나 번호 등을 특정하지 않은 채 어떤 사람의 이름만 적은 채 영장을 청구하는 '포괄계좌'와, 특정 계좌의 앞뒤로 이어진 계좌의 거래내역을 모두 볼 수 있는 '연결계좌' 등이 포함된 것이다. 나라종금 수사팀은 지난 4월 18일 안상태씨의 가족과 친인척, 임직원 등 20여명 이름으로 개설된 190여개 기관의 금융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서울지법에 청구해 모두 발부받았다.
이 때문에 나라종금 로비의혹 수사와 관련해서 정가에는 '구주류 제거 시나리오'라는 '음모설'이 그럴 듯하게 퍼져 있다. 그러나 이런 음모설 자체가 노 대통령과 민주당 구주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음모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일부 언론은 특검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조선일보>는 5월2일자에서 '검찰은 다시 특검을 부르는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아예 특검 수순 밟기를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평검사와의 토론에서 '인사권자에 줄서지 말라' '기개를 가지라' '감옥 가면서 언론자유를 지켰듯이 검사들도 스스로 중립을 지키라'고 주문했었다. 검찰은 지금 그 노 대통령의 주문과 반대쪽으로 가면서 '노 대통령은 이 돈과 무관하다'는 해명에 앞장서 있다. 검찰이 이 길로 걸어가면 결국 특검을 불렀던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특검 이어가기는 한나라당의 '총선 전략 로드 맵'
한나라당은 현재 진행중인 대북송금 의혹사건 특별검사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 특검으로 들어가 내년 총선 때까지 특검정국이 이어지게 한다는 '총선 전략 로드 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4월17일 시작한 대북송금 특검의 법정 최장 만료일은 8월17일이다. 따라서 대북송금 특검처럼 120일 동안의 일정으로 오는 9월부터 나라종금 특검을 시작하면 내년 1월까지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검찰이 기소해 재판이 시작되면 선거국면에도 나라종금 로비의혹 쟁점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총선 전략 로드 맵'대로 특검정국이 이어질지는 검찰에 달려 있다. 검찰은 5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안희정씨가 '오아시스워터'를 매각하고 받은 4억5000만원에 대한 추가 계좌추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2000년 9월∼2001년 2월에 받은 매각대금 4억5000만원 중 2억원은 부채를 갚고 나머지 2억5000만원은 자치경영연구원의 확대 개편을 위한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안씨의 진술을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안씨가 2000년 말 매각대금 중 1억원 가량을 오아시스워터에 채무보증을 선 노 대통령 측에 상환했다는 첩보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가 회사 자금을 개인용도로 사용했느냐 역시 검찰의 주요 조사대상이다. 이 부분이 확인되면 검찰은 업무상 횡령 혐의를 추가할 방침이다. 일단 검찰은 추가 계좌추적이 마무리되는 대로 안씨를 재소환해 보강조사를 마친 뒤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 이번에는 또 노 대통령의 표정과 심기가 어떻게 바뀔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 | 지연·학연 얽히고 설킨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 | | | 나라종금 김호준 형제-안상태의 중동고-고려대-전남 보성 인맥 로비 집중 | | | |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대형 로비-부패 스캔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사건 또한 지연·학연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선 김호준 전 보성인터내셔날 회장은 부산 출신이고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은 전남 보성 출신이다(일부에서는 김호준 회장의 고향을 전남 보성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청바지와 의류로 유명한 보성인터내셔날과 전남 보성은 전혀 관련이 없다). 김호준 회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중동고)와 대학(연세대)을 서울서 다녔다. 염동연씨 말고도 로비의혹 대상으로 언론에 거론된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과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김 회장의 고교 혹은 대학 선배이다.
김 회장에게는 형제가 여럿 있는데 이 가운데 큰형은 부산상고와 고려대를 나왔고 청바지 회사인 (주)닉스 대표를 맡았던 동생 효근씨도 고려대 출신이다. 김효근씨와 안희정씨는 각각 고려대 82·83학번 운동권 선후배라는 인연을 갖고 있으며 김 회장이 구속된 이후 줄곧 변호를 맡아온 이재화 변호사 또한 고려대 82학번이다.
'고향 사람' 안상태씨로부터 큰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박주선 의원(민주·전남 보성-화순)과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은 둘 다 전남 보성 출신이다. 이밖에 나라종금 고문을 맡은 김태정 전 법무장관도 안씨로부터 고문료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검찰의 계좌추적에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3인은 모두 광주고 출신이다. 안씨는 전남 보성중·보성고·조선대를 나왔다.
안씨는 검찰에서 2000년 총선을 전후해 당시 박주선 무소속 후보에게 2억원 가량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주선 의원은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박 의원의 보좌관도 "안씨와 박 의원이 중학교 선후배 사이이니 모를 리는 없겠지만 법무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전혀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로비청탁 의혹을 부인했다. 박 의원은 "검찰이 부르면 언제든지 가서 직접 해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은 1999년말∼2000년초에 고향 후배인 안씨로부터 "나라종금 영업정지를 막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네 차례에 걸쳐 인사·여비조로 48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종금은 이씨가 금감위원장으로 있던 2000년 1월에 2차로 영업이 정지되어 그해 5월에 퇴출되었다.
이 때문에 보성에서는 "고향 사람(안상태)이 종금사를 맡아 뭐 좀 해보려고 하는데 한 고향 사람(이용근)이 뒤는 못봐줄망정 오히려 죽였다(퇴출시켰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씨 주변에서는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업무를 맡은 '금융계 검찰'의 수장으로서 평소 강직한 성품으로 알려진 이씨가 돈을 받은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라종금이 퇴출된 결과로 보면 나라종금 사건은 '실패한 로비'였다. 때문에 김대중 정부는 옷로비 사건에서부터 한빛은행 대출로비·파업유도 발언·이용호 게이트 의혹을 거쳐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 이르기까지 '실패한 로비'나 '미수'(未遂) 사건으로 네 차례의 특검과 국정조사를 당하는 '수모'를 기록하게 되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더 부패했던 역대정권은 '완전범죄'를 실현해 꼬리를 밟히지 않은 반면에 어설픈 김대중 정권은 '성공'도 못하면서 '욕'만 봤다고나 할까. / 김당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