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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애들이 시골에서만 살다보니 돈을 쓸 줄을 모른다. 할머니가 이따금 용돈을 주어도 환경이 그렇다보니, 돈의 사용처도 몰랐다. 애들이 가게에 가서 돈을 주고 과자 한 봉지 못 사먹고, 문방구에 가서 공책 한 권을 못 샀다.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쑥스러워서’, ‘부끄러워서’였다. 아이들도 쑥스럽고 부끄러운 게 무엇인지를 아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 그랬다.
우리 집 병아리 은빈이가 가끔 떼를 쓴다. 돈을 달라는 것이다. 대룡리 피아노학원을 다니면서 다른 아이들하고 어울리다보니 돈을 쓰는 법을 배운 모양이다. 한번은 할머니가 만 원짜리 지폐를 주셨는데, 집에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달랑 갖고 왔다. 아내가 돈 만원을 어디에 썼냐고 물었더니, 오빠 언니 친구들을 문방구에 데리고 가서 하나씩 다 사주었다고 한다.
그날 은빈이는 아내에게 혼이 났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혼이 나는 은빈이가 귀여웠다. 7살짜리가 돈 쓰는 걸 알아서 언니 오빠들을 데리고 문방구에 가서 물건을 사주었다는 게 기특하고 신기했다. 시골에서만 20년을 살다보니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은빈이 친오빠들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 자기들끼리 구멍가게나 문방구를 가지 못했는데, 그럼 은빈이가 더 조숙한 것인가?
또 옛날 생각이 난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왕복 30리 길을 통학했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다. 굶지는 않았지만 배불리 먹지는 못했다. 어릴 적 기억이 4학년 때까지 용돈을 받아 본적이 없었다. 또 돈을 쓸 기회도 없었다.
새벽밥을 먹고 학교엘 간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나는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했다. 화천초등학교 교문 근처에 오면 문방구겸 구멍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전교생이 2000명이 넘는 제법 규모가 큰 학교였다. 내가 지나가는 코스에 구멍가게가 한집 걸러 하나씩 있었는데 언제나 내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게 ‘딱지와 눈깔사탕’이었다. 그 밖에 풍선, 과자, 공책이 수북하게 쌓여있는데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었다. 4학년 때까지 한번도 내 돈을 내고 물건을 사 본 경험이 없었다.
학교 가는 길 구멍가게 앞을 지나가려면 나를 유혹하는 것이 ‘왕방울 눈깔사탕’이었다. 그 놈을 하나 입에 넣으면, 입안이 가득하여 볼 딱지가 불룩 나올 정도로 큼직한 사탕이었다. 어쩌다 어머니가 장날 눈깔사탕을 사오면 그걸 몇 조각으로 깨트려서 나눠먹었다.
눈깔사탕이 나를 쳐다본다. 나도 눈깔사탕을 쳐다본다.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들어서곤 했다. 그러던 2학년 어느 날이었다. 어느 구멍가게 앞에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 쓸쓸한 구멍가게 앞에 서 있는 내 가슴이 콩당 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었다. 나의 손은 진열장 속에 있는 눈깔사탕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얼른 눈깔사탕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가게에서 나와 학교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런데 누가 뒤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야! 임마! 너 잠깐 거기 서 봐!”
구멍가게 아저씨였다. 내가 매일 그 집 앞에서 서성거리며 서 있었을 때, 그 아저씨와 여러 번 눈이 마주 쳐 그 아저씨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너, 새끼, 사탕 훔쳤지?”
“.....”
“어디 주머니 좀 보자.”
나는 꼼짝없는 도둑놈이었다. 그 아저씨는 내 뒷목덜미를 잡더니 나를 잡아끄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입에서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하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그 아저씨에 의해 교무실로 끌려갔고 그 아저씨의 진술에 의해 상습적으로 눈깔사탕을 훔친 도둑이 되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철아, 너 사탕이 먹고 싶었던 게로구나. 너 같이 착한 애가 얼마나 사탕이 먹고 싶었으면....” 그러면서 내 머리를 만져 주셨다.
구멍가게아저씨는 소리 소리를 지르며 ‘저 녀석이 한두 번 훔친 게 아니다’ 라며 학교에서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서로 끌고 가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대신 돈을 물어주셨다.
“철아, 다음부터 절대로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하자. 너네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을께.”
김영식 선생님, 살아계셨으면 연세가 팔십 가까이 되셨을 것 같다. 내가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선생님이시다. 구멍가게와 눈깔사탕은 나의 유년시절을 반추하게 하는 세 번째 단추이다. 우리집 병아리 은빈이가 막대사탕을 빨아먹는 모습을 보며 가끔 그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김영식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