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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밀리면 아니 될 일이지!'

유리는 비류와 온조의 도발적인 언사에 말려들지 않으려 애썼지만 실제로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천자가 되면 우선 그대들부터 목을 벨지 모르는 터인데 법이 팔십 개가 되든 팔백 개가 되든 무슨 상관이오?"

이 말에는 비류와 온조는 물론 을소조차 잠깐 놀란 듯 했다. 특히 비류는 상기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 온조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따라오라는 비류의 고함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류가 전해준 이야기를 들은 월군녀는 아픈 사람답지 않게 펄펄 뛰며 화를 냈다.

"대체 어떤 인간의 몸에서 난 자식이기에 그렇게도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당장 폐하에게로 가 이 사실을 고하리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몽이 앞으로 월군녀를 만나주기라도 할지가 의문이었다. 그래도 이 사실은 월군녀로서는 간과할 수가 없는 지라 앞뒤 가릴 것 없이 거의 뛰어가듯 주몽의 처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시오?"

주몽은 마지못해 월군녀를 맞아들였지만 얼굴에는 불쾌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태자가 말하길 '천자가 되면 비류와 온조의 목을 벨 테다.'고 했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누가 그런 얘기를 했소?"

"왕자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 옵니다."

주몽은 크게 화를 내며 월군녀를 나무랐다.

"왕자의 나이가 몇인데 그런 일을 와서 이르는 것이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들을 태자로 책봉하지 않고 두고 본 것이외다! 게다가 그런 참소를 믿고 내게 와서 전하는 저의가 무엇이오! 태자를 폐하고 비류나 온조를 태자로 책봉하란 말이오! 당신이란 자는 도대체 언제쯤이나 정신이 든단 말이오!"

주몽은 화를 이기지 못해 옆에 있던 벼루를 집어 벽에 던졌다. 벼루는 월군녀의 마음처럼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당장 내 앞에서 물러가시오!"

월군녀는 뭔가 더 따지고 싶었지만 주몽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순순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월군녀도 그랬지만 주몽이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묵거가 남긴 '미움을 가지지 말라.'는 말이었다. 예전에 혼자 말이나마 묵거를 원망했던 것이 주몽은 한스러워졌다.

'미안하오 묵거! 그대의 말을 난 따르지 못하겠소.'

월군녀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두 왕자들을 앉혀놓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제 말을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두 왕자께서는 과연 태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폐하의 피붙이도 아닌 분들이 말입니다!"

비류와 온조는 월군녀가 현실을 깨우쳐 주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요? 왕자님들은 결코 태자의 지위에 오를 수 없습니다. 지금 왕자의 대우를 받고 있는 것도 어쩌면 폐하의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비류의 한스러운 소리에 월군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어찌 포부들이 그리 작으십니까? 폐하께 책봉 받는 태자가 될 수 없다면 스스로 천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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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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