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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왔습니다. 여름 철 음식중 가장 으뜸은 뭐니뭐니해도 시원한 물냉면이죠. 사람의 식성에 따라 그 기호가 전부 다르겠지만요.

먼저 냉면하면 다들 비빔으로 먹는 함흥식 회냉면을 으뜸으로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찌는 듯한 여름이 다가오면 이상하게도 먼저 땡기는 것이 바로 시원한 물냉면인 평양냉면입니다. 사실 냉면은 겨울에 만들어진 먹거리인데 지금은 여름에 각광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죠. 제가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사실 단순한 계기였습니다.

▲ 여름의 별미 물냉면들
ⓒ 최승희
제 고향 속초는 수복지구인지라 함흥사람들이 많이 피난을 내려와 정착을 한 관계로 제대로 된 물냉면을 할 줄 아는 집이 하나도 없는 반면 함흥냉면만큼은 정통으로 요리를 잘하는 집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들과 단골로 먹었던 것이 바로 함흥식 비빔냉면이었죠. 지금도 속초 시내에는 몇 십년을 쟁쟁하게 버티고 있는 낙천회관, 함흥회관, 제일면옥, 한양면옥 등 기라성 같은 함흥식 냉면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당연히 냉면하면 비빔냉면으로 통하는 함흥냉면이 최고인 줄 알았죠.

그렇게 바보스럽게 몇 십년을 살다가 어느 날 지인들과 함께 을지로 4가에 있는 우래옥이란 곳엘 우연히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누군가의 추천으로 제육물냉면을 먹은 것이 바로 내 입맛을 바꾸어 놓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 냉면, 그거 예술이더군요.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 맛을 대부분 밍밍한 맛이라고 한다는데…. 모르고 먹으면 맹맹한 맛이 나고, 알고 먹으면 세상에 그런 맛이 없다는 맛,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평양 '원조' 물냉면인 것입니다.

그럼 평양 옥류관의 시원한 맛을 계승한 장안의 4대 천왕이라고 불리우는 평양식 물냉면의 원조는 과연 어디일까?

맨 먼저 의정부의 '평양면옥'을 들 수 있습니다. 의정부 병무지청 맞은 편에 있는 평양면옥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정통 평양 물냉면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막연히 찾아가면 골탕을 먹기 일쑤이죠. 식당찾기가 어려워 하루종일 헤맨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곳이 서울 을지로 물냉면의 대부격인 곳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 의정부 평양면옥
ⓒ 최승희
자, 어렵게 찾아가 그 유명하다는 원조 물냉면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만큼 그렇게 푸짐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밀면으로 뽑은 사리에 동치미 국물 그리고 고추가루, 파가 전부였습니다.

냉면 육수에 고추가루라니. 사실 이것은 진정한 물냉면의 맛을 알기 위해 파와 고추가루만 살짝 띄운 평양면옥만의 전통이죠. 그리고 쉽게 끊기는 면발 역시 정통 평양 물냉면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입니다.

원래 이 집은 평양냉면 중에서도 가장 서민적인 스타일을 취하고 있는 집입니다. 대다수 손님들도 거의 쉰이 넘으신 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죠. 맛은 '시원하다' '컬컬하다' '뒷맛도 개운하다' 정도입니다. 특히나 고추가루가 얹혀진 육수만큼은 시원함 그 자체였죠!

그러나 우래옥에서 처음 맛 보았던 면발의 싸리한 즐거움과 독특한 밀향은 쉽게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물 냉면의 원조를 아시는 고수격인 분들은 아직도 이곳을 장안의 넘버원으로 친다고 합니다. 이유는 물냉면의 초절정 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한우 양지살만을 이용해 만든 맹맹한 육수의 맛이 천하일품이기 때문이죠.

그 다음이 바로 '우래옥'입니다. 우래옥(又來屋)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1월 문을 열어 이젠 반세기를 넘어선 정통 평양냉면집이죠. 처음 가는 분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을지로 4가 전철역에서 나오면 바로 오른쪽 골목으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이 하나 나오는데, 그 앞은 을지로 재봉틀 파는 가게들이 무리지어 상가를 이루고 있죠.

그 골목 안쪽에 넓은 주차장을 가지고 있는, 조금은 부티나는 이층 냉면집이 나오는데 거기가 바로 우래옥입니다. 가끔 젊은 친구들은 한자를 못 읽어 그냥 지나치기도 한답니다.

▲ 을지로 우래옥 본점전경
ⓒ 최승희
이곳은 이미 워낙 많이 알려진 곳이고 삼성동에 분점이 있을 정도이니 익히 그 맛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 강점입니다.

여기 냉면은 시원한 육수가 일품이죠. 한우의 신선한 정육을 매일 들여다가 큰 솥에 삶아 단물이 다 우러나면 차게 식혀 기름을 말끔하게 건져내고 다시 간을 해 냉장해 두었다가 진국 그대로 국수를 말아낸다는 우래옥의 전통육수는 그야말로 물냉면을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겐 아주 안성맞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아는 친구들을 처음 이곳엘 데려가면 첫 반응이 다 똑같다는 것이죠. 물론 물냉면 초보자들인 경우입니다. 처음에 데려가면 먼저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맹맹한 육수탓에, 그리고 밀면의 알싸한 맛에 대한 적응이 안된 탓에 시원하게 잘 먹질 못합니다.

대부분 남기기도 하죠. 그리곤 뭐 이런 걸 사주나 하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두 번째 데려가면 조금 반응을 보여주죠. '전엔 별로 맛이 없었는데 먹을 만하네' '시원하네'... 이런 반응이 나오죠.

세 번째로 무지 더울 때 한번 더 데려갑니다. 그러면 혼자 열심히 음미하면서 먹습니다. 그럼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 친구 나오면서 이런 말을 제게 하죠. "근데 이상하게 맛이 땡기네."

그리고 네 번째는 상대측에서 아예 전화가 옵니다. '우래옥 냉면 먹으러 안 갈래?' 그때부터는 계속 얻어 먹으면 되죠. 그런데 요즘 여기 냉면 맛이 많이 떨어졌다고 불평하는 할아버지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실 이곳 냉면스타일은 원조 옥류관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월남식 즉 서울 물냉면으로 약간은 개조된 그런 맛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냉면 초보들에게는 좋지만 물냉면의 고수들은 이곳을 졸업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럼 주변의 물냉면 고수들이 추천하는 냉면집은 어디일까 궁금해집니다.

▲ 냉면을 즐기는 사람들
ⓒ 최승희
자, 오늘 소개할 평양물냉면 4대천왕 중 이미 의정부 평양면옥과 우래옥은 소개를 드렸고 남은 하이라이트는 바로 '을지면옥'과 '을밀대'입니다.

을지로 3가에 위치한 을지면옥은 당대의 물냉면 고수들도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명가 중에 명가로 소문난 집이죠. 이곳 역시 젊은이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이곳 냉면 스타일이 바로 의정부 원조 냉면 스타일을 그대로 승계했기 때문이죠. 의정부 평양면옥과 필동면옥이 형제지간의 냉면집이기 때문에 그 육수 맛과 면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을지면옥과 냉면
ⓒ 최승희
맛을 보았죠.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약간의 무우 고명과 썰은 배가 넣어져 나오고 역시나 반찬 하나 안줍니다. 그리고 고추가루가 놓여져 있습니다. 의정부에서는 아예 고추가루가 뿌려져 나와 좀 당황스러웠는데 을지면옥은 그나마 적응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뿌리지는 않고 옵션으로 배치해 놓았더군요. 면의 느낌은 조금은 거칠지만 부드러우며 잘 끊깁니다.

어떤 분들은 육수보다 면의 끊김이 평양물냉면의 맛을 좌우하는 기준이라고도 얘기를 하는데 을지면옥 역시 그 면에서는 평양물냉면의 기준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셈이죠. 또 하나, 육수만큼은 정말 시원하고 상쾌합니다.

그러나 처음 맛보는 분들은 조금은 밍숭맹숭한 맛일 것이란 느낌입니다. 이 표현은 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의 수준에 다다랐다는 말이 되는 셈인데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쟁반수육으로 술 한잔 돌리시고 냉면으로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시는 것을 보니 전통의 힘은 역시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이 팍팍 들었죠.

▲ 을지면옥 가는 길
ⓒ 최승희
총평하자면 식당이 찾기가 쉽지 않고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어 그냥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식당 안도 깔끔한 냉면 맛을 보기엔 어두침침하고 칙칙하다는 느낌이고요. 그리고 반찬을 하나도 갖다주지 않습니다. 덜렁 냉면사발과 젓가락뿐이죠.

맛의 평가는 의정부보다는 약간 대중적인 맛이고 나름대로 시원하다는 느낌입니다. 삶은 계란이 고명으로 나오는데 여기의 노른자를 깨 부셔서 풀고 겨자와 식초를 알맞게 넣고 후루룩 후루룩 국물을 마시면서 면을 먹어야 진정한 물냉면의 맛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추천할 만한 시원한 맛의 힘을 가진 집입니다.

여기서 잠깐 상식. 물냉면을 먹는데 사람마다 기호가 있겠지만 냉면 사발을 들고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서 면을 먹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야지만 진정한 물냉면의 참 맛을 알 수가 있다나요.

마지막으로 마포구 염리동 동사무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있는 조그만 냉면집 '을밀대'를 소개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장안의 4대 천왕중 가장 강력한 맛을 지닌 냉면집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 을밀대와 비길 만한 라이벌이 조금 전 소개한 을지면옥과 동대문에 있었던 평안면옥이라는 물냉면집이었는데, 평안면옥이 지금은 사라졌기 때문에 을밀대가 마지막이 되었네요.

▲ 염리동 을밀대 전경
ⓒ 최승희
을밀대는 많이 알려진 만큼 단골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한 여름 점심시간엔 아예 피해서 가는 게 좋을 정도입니다. 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품격 있는 물냉면을 제공하지만 이곳 역시 초보자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입성을 해야 할 만큼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곳이라는 평가입니다.

이곳의 물냉면 맛의 비결은 단연 면발과 육수입니다. 면발은 절대 미리 뽑아놓지 않고 손님이 자리에 앉아 주문하면 그때 면발을 뽑기 시작합니다. 을밀대의 특징 중 하나인 이 면발은 아주 쫄깃하기로 유명한데요. 다른 평양 물냉면이 잘 끊어지는 미덕이 있는 반면, 을밀대는 이 면발을 아주 쫀득하게 만들어서 색다른 냉면 맛을 느끼게 하죠.

▲ 을밀대
ⓒ 최승희
땀이 비오듯 흐르는 어느 여름 날 이 냉면을 한번 제대로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며칠간 잊지 못합니다. 오죽 했으면 을밀대 증후군이라는 것이 생겨났을까요. 날씨가 더워지고 습해지면 등에 땀이 흐르는데 이 땀마저 을밀대라고 쓰면서 내려갈 정도라고 합니다.

살얼음이 살짝 뜬 그 육수는 이 냉면집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처음에 먹을 때는 이 살얼음 때문에 입이 얼얼해 도무지 육수가 무슨 맛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죠. 하지만 몇 번 그 과정을 거치면 진정 시원한 육수 맛을 알게 됩니다.

자, 정리를 해야겠네요. 여름엔 물 냉면이 제격이라는 말씀을 드렸듯이 장안에 있는 냉면 4대천왕 중 어느 한 곳을 택해 꼭 한 번 드셔보시기 바랍니다. 나름대로 시원하고 은은한 맛을 풍기고 있는 전통 냉면집들이니까요.

냉면 그릇 안의 살얼음들을 요리조리 치우고, 시원한 식초와 알싸한 겨자를 넣어 만든 육수를 후루룩 입에 넣으면 쫀득하게 씹히는 그 맛이란 정말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즐거운 경험이죠.

을지면옥과 의정부 평양면옥은 그 맛과 제조방법이 유사하여 대체로 평양 서민들이 즐겨먹던 스타일을 무난히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래옥은 아직도 고정 고객들이 가장 많은 편이며 물냉면의 진가를 모르시는 분들이나 초보 분들이 가서 맛을 배우기에 아주 적절한 집입니다.

냉면 경력이 좀 있으신 분들에겐 제육물냉면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을밀대는 장소는 다소 협소하지만 무더운 여름날 정말 시원한 물냉면의 진수를 맛보시려는 분들에겐 좋은 선택의 장소가 될 것이란 말씀을 드립니다.

▲ 면을 뽑는 기계와 내실
ⓒ 최승희
더운 여름 짜증도 나고 불쾌하기도 하고 늘어지기도 하죠. 이럴 때 시원한 물 냉면으로 스트레스도 팍팍 날려버리시고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시원한 맛으로 진정한 여름의 백미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소개된 냉면집 찾아가기

의정부 평양면옥
: 의정부 3동 병무청 큰길 맞은 편 골목안 (031) 877-2282

을지로 을지면옥
: 서울시 중구 입정동 161 / 지하철 3호선 을지로 3가역 5번출구,
10m 바로 앞에 빨간 간판이 조그맣게 있다. (지나치기 쉬우므로 두 눈 크게 뜨세요).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됨. (02) 2266-7052

을지로 우래옥
: 중구 주교동 227 을지로 4가역. 을지로 4가에서 청계천으로 나가는 길 오른쪽 골목안에 있다. 연중 무휴 02-2265-0151

염리동 을밀대
: 마포 공덕사거리에서 동도공고를 지나 염리동 사무소 방향의 골목으로 들아가다 오른편에 있음(150미터). 연중무휴. (02)717-1922 / 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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