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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려면 자신은 죽어야 한다.
상수리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려면 자신은 죽어야 한다. ⓒ 느릿느릿 박철
세월은 무심코 가을 햇살이 내비치는 한낮에
도토리를 줍듯이 간단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내내 내 뒤를 따라오는
그리움은 진한 아픔으로 남아
나를 울린다 가을바람에 스치는
억새풀 소리는 묘한 진동음이 되어
내 마음을 사무치게 하고
무엇이 그렇게 그리움으로 남아서
나를 울리는 것인지
이 허망한 육신은 무엇으로 수습할 수 있는지
상수리를 주우며 곱씹어 본다.
(박철 詩. 상수리를 주우며)


작년 가을 아내와 나는 배낭을 둘러메고 상수리를 주우러 온 산을 헤집고 다녔다. 상수리가 매년 많이 열리는 게 아니다. 몇 년만에 상수리 풍년이었다. 속설에 의하면 농사가 잘 안된 해에 상수리가 많이 열린다고 한다. 상수리라도 많이 주워서 허기(虛飢)라도 면하라는 하늘의 뜻이란다.

작년에는 다른 해보다 농사가 잘 안 되었다. 큰 물난리를 두 번 겪었고, 우리 지역에서는 우박 피해가 컸다. 나는 산 속이나 숲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좋아서 산에 갈 겸 상수리를 주웠다. 반짝 반짝 빛나는 상수리 알을 줍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한 말만 줍자고 시작한 게 다섯 말을 넘게 주웠다.

얼굴은 새카맣게 그을리고 손은 나뭇가지에 긁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도시락을 싸 갖고 가서 산 속에서 아내와 먹는데 그렇게 호젓하고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무상으로 주는 은총에 깊이 감사했다. 상수리를 줍는 것까지는 재밌고 즐거운데, 그 다음 과정은 힘들고 복잡했다.

상수리 싹을 화분에 옮겨 심었다. 부디 잘 자라 거라.
상수리 싹을 화분에 옮겨 심었다. 부디 잘 자라 거라. ⓒ 느릿느릿 박철
상수리 알로 가루를 만들기까지‘지금 괜한 고생을 하는 거 아닌가?’할 정도로 손이 많이 간다. 일단 상수리 알을 잘 말려야 한다. 햇볕에 닷새정도 말리면 상수리 알이 딱딱 소리를 내면서 갈라진다. 그걸 납작한 돌로 맷돌 돌리듯이 굴리면 껍질이 벗겨지고 알만 튀어나온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껍질을 벗긴 상수리 알을 방앗간에 가서 빻아온다. 걸쭉한 상수리를 고운 채반에 받혀서 물을 부어가며 거르는데, 그 작업이 만만치 않다. 큰 함지박에 물을 가득 담아 거른 상수리 녹말을 넣고 하루가 지난 다음에 물만 잘 따라 낸다. 그러면 고운 녹말 떡개만 남는다. 그걸 햇볕에 말려서, 고운 가루로 만든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공이 많이 들어간다.

생각한 것보다 녹말가루가 많이 나왔다. 교동에 다니러 온 사람들이 몇 되만 팔라고 해도 팔 수가 없다. 얼마나 힘들게 해서 만든 녹말가루인데…. 동생들, 장모님 네, 친구들에게 한 되씩 담아 택배로 보내주었더니, 반 밖에 남지 않았다. 상수리 녹말가루로 묵이나 쑬 줄 아는지 모르겠다.

상수리 녹말가루는 절대 변질이 안 된다. 바구미도 쓸지 않는다.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대단히 우수한 식품이다. 요즘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는 다고 한다. 가끔 상수리 묵이 밥상에 오르면 온 식구가 서로 먼저 먹으려고 젓가락이 간다. 중국에서 수입해 들여온 상수리 녹말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상수리 숲. 숲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상수리 숲. 숲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 느릿느릿 박철
어제 텃밭에 가서 김을 매고 들어왔는데, 밖에 빨래를 널러 나갔던 아내가 ‘여보!’하고 소리를 지르며 내 방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나는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아내가 큰 소리로 말한다.

“여보, 이것 봐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 작년에 우리가 상수리 껍질을 까다가 상수리 알을 흘렸나 본데, 그게 싹이 났어요. 얼마나 신기해요. 풀씨나 꽃씨도 아니고, 나무 싹인데, 그것도 우리가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아내가 말한 대로 집 마당 나무 밑에 상수리 파란 싹이 올라와 있었다. 참 예쁘다. 나무 밑에서 제대로 자랄 수가 없는 것 같아 넓은 데로 옮겨 심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상수리 싹이 난 게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아내 말대로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가 상수리 알을 심은 적이 없었다. 또 심었다 해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일도 말처럼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하느님의 생명의 신비를 상수리 싹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느끼고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부디 이 상수리 싹이 잘 자라 큰 상수리나무가 되게 해달라고.’

무릇 자연의 섭리는 인간이 감히 간섭할 수 없는 신(神)만의 영역이다. 다만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바짝 몸을 낮추고 살아야 한다. 그 작은 상수리 싹을 보면서 세상이 아무리 요란하고 사나운 말이 오가고 살풍경해도 하느님의 생명은 소리 없이 움직이고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은 상수리 싹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참 아름답다.”

고운 마음으로 밝은 세상을 보면 모든 세상이 밝고 아름답게 보이게 될 것이다. 상수리 여린 싹이, 아니 자연이 주는 설교를 더 가까이, 더 겸손히 경청해야 하겠다.

오늘의 삶의 화두는 “신에게 더 가까이, 자연에게 더 겸손히”

교동은 숲 전체가 상수리나무이다.
교동은 숲 전체가 상수리나무이다. ⓒ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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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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