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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려는 오간을 뒤로 한 채 주몽을 힘들게 찾아 가 자신이 본 바를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불호령이었다.

"그대는 나와 태자의 사이를 이간질 하려함이냐! 천자나 다름없는 태자를 내게 참소하려 하다니 어찌 이리 무엄할 수 있단 말이냐. 내 이번만은 잘못을 눈감아 줄 터이나 추후 다시 이런 일이 있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라!"

마려는 머리를 감싸쥔 채 주몽 앞에서 물러났다. 주몽은 시종에게 술상을 가져오라 일렀다. 잠시 후 직접 술상을 가져온 이는 태후인 예주였다.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대낮부터 술상을 찾다니요?"

주몽은 예주가 권하는 술을 받아 죽 들이키고선 심정을 토로했다.

"이 나라를 세운 나를 뭘로 보기에 사람들이 태자를 책봉한 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은지 모르겠소. 후비가 함부로 음모를 꾸미다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사람들은 그에 대해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모양이오."

예주는 자신도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얘기했다.

"세상사람들에게 폐하께서 태자에게 과분한 대접을 하는 듯 하나 제가 보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짐을 지워주신 듯 합니다. 더구나 지금의 태자는 자신이 가진 지위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한 느낌조차 없습니다. 국정은 폐하께서 직접 맡으시고 태자는 좀 더 소양을 쌓도록 시간을 주시옵소서."

주몽은 고개를 조용히 가로 저었다.

"후비의 일로 인해 난 이미 천자라는 지위에 정나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요. 게다가 이렇게 당신을 다시 만난 판국에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며 보내기에는 싫소. 나 역시 지금의 태자와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지위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한 느낌이 없었고 여기서 모든 것을 이루어 내었소. 태자가 뒤늦게 고구려로 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나 이는 내가 가진 초심과도 같은 것이오. 지금 내가 보고 느낀 바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야말로 가혹한 짐이 될 뿐이오."

예주는 주몽을 보며 한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구나. 예전처럼 자신의 야망과 사랑을 맞바꾸기 싫은 모양이구나.' 그러나 예주는 자신으로 인해 주몽이 모든 것을 그만 둔다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도대체 폐하께서 보고 느낀 바가 무엇이기에 그런 것입니까?"

주몽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미움이오. 자고로 일국의 왕이란 스스로 물러날 때 물러나야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물러난 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오. 내가 느낀 바로는 물러날 때란 바로 미움을 가졌을 때라고 여기고 있소. 이제 태자로 인해 내가 미움을 가졌던 사람들은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렇게 라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소."

예주는 주몽의 품에 살며시 기대었다. 주몽은 이제 모든 것을 접고만 싶었다.

주몽 앞에서 꾸지람만 듣고 쫓겨난 마려는 상기된 얼굴로 다시 오간과 두 왕자를 찾아갔다.

"그것 보시오. 내가 뭐라고 그랬소?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라오."

오간의 말에 마려는 고개를 숙였고 온조는 한숨을 쉴 뿐이었다. 다만 비류만이 크게 화를 내며 주몽을 원망했다.

"아무리 폐하의 자식이라고는 하나 잘못된 것은 꾸짖어 바로 잡아야 하거늘 어찌 충직한 신하의 직언을 참소로 여기시는 것이오! 폐하께서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구려!"

오간이 깜짝 놀라 비류를 만류했다.

"목소리가 너무 크십니다. 누가 들을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비류는 아랑곳하지 않고 결의를 다진 듯 굳은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으로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한가지 방법 밖에 없소. 폐하의 눈을 가로막는 태자를 없애는 것이오!"

오간, 마려, 온조는 아연 질색하여 비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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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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