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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까 민둥머리의 남궁연, 그는 여태 10대의 청순함을 잃지 않고 있다.
ⓒ <전원생활> 김윤석
'늘 받으면서도 미운 놈이 있나하면, 늘 주면서도 예쁜 놈이 있다'고 한다. 남궁연, 아무튼 그는 언제 봐도 밉지 않은 녀석이다.

그는 그제나 이제나 변함없이 까까 민둥 머리에 수수한 차림새다. 나는 그를 신문 전면광고나 TV 화면을 통해 자주 만나지만, 그럴 때마다 그가 여태 우리 학교에 재학중일 거라고 착각한다.

그의 외모나 말솜씨는 고교시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를 만나는 빈도가 잦아졌다. 반가운 일이다. 그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나나 보다. 문득 그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 자네가 보고 싶어서 그래. 바쁠 테니 방송국 근처 어느 찻집에서 만날까?
"아닙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제가 마땅히 선생님을 찾아봬야지요."

마침 다음 월요일 선생님 퇴근 무렵이 좋겠다면서 그날 학교로 달려왔다.

그가 교정에 나타나자 하교 시간이 지났는데도 교내에 있던 20여명의 후배들이 그를 알아보고 몰려들어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사진 촬영도 응해주었다.

▲ 후배들의 사인 공세에 즐거워하는 남궁연.
그는 1층 회의실 자리에 앉자마자 모교에 온 감회부터 늘어놓았다.

"차가 봉원동을 들어서자 갑자기 부모님 얼굴이 앞을 가렸어요."

- 그랬어. 왜?

나는 짐작은 하면서도 일부러 시침을 떼었다.

"선생님도 잘 아시면서…, 저 때문에 걸핏하면 학교에 불려오셨잖아요. 어머님은 1996년에, 아버님은 2000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더욱…."

-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제야 운다는 '청개구리 우화'는 영원히 계속되겠지?
"그럼요, 저도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를 들을 때는 '왜 저런 노래가 나왔나?' '내 이야기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그 주인공일 줄은 몰랐습니다.

차라리 부모님 생각이 제삿날이나, 생신날이나, 어버이 날 등 일정한 날만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시도 때도 장소도 안 가리고 두 분이 문득문득 떠올라서 그때마다 저를 울립니다. 아마 불효자에게 내린 천형(天刑)인가 봅니다."

- 사실 나도 그래. 자식치고 자신의 불효를 뉘우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거의 없을 거야.
"크게 성공해서 한 방에 효도하겠다는 자식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 네가 오늘 아주 명언만 하는구나.
"공자 앞에 문자 써서 죄송해요."

- 아니야, 체험에서 우러나온 얘기처럼 귀중한 게 없어. 그래서 '풍수지탄(風樹之嘆)'이란 말도 생겨났지.
"'자식이 효도하려고 해도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란 뜻이지요.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오랜만에 고교시절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 너 아직도 그 고사 성어를 기억하고 있구나.
"그럼요, 저 고1 첫 시간 선생님 말씀도 또렷이 기억하고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중국어 잘 하는 사람이, 일어 잘 하는 사람이, 영어 잘 하는 사람이 행세하지만, 언젠가는 국어 잘 하는 사람의 시대가 온다'는 말씀과 함께 '국어는 모든 교과의 기초'라는 말씀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실 제가 입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것도 다 선생님들 덕분이지요. 요즘도 후배들에게 시골 이야기, 막걸리 담그는 방법을 들려주세요?"

- 그럼. 내 레퍼토리가 어디 가겠어.
"풋풋한 시골 얘기나 사람사는 훈훈한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그게 교과 내용보다 더 남아요. 요즘도 후배들에게 선생님 작품 읽어주세요?"

- 요즘은 그러지 않아. 내 작품집을 소개하든가, 아니면 인터넷 신문에 올린 기사를 보라고 하지.

▲ 16년만에 모교 뜰에서.
ⓒ 김윤석
마침 그의 방문 기념으로 최근에 펴낸 <아버지의 목소리>에 서명해 주었다.

"몇 번째 작품집입니까?"

- 열 한 번째야.
"정말 대단하십니다. '꿈☆은 이루진다'라는 말을 써주셨네요. 정말 좋은 말입니다. 제가 지금도 선생님에게 배울 점은 바로 이 점이에요. 회갑을 앞둔 선생님이 아직도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시는 걸 보면 새파란 저희는 더욱 용기가 솟아요."

- 고맙네. 아무쪼록 자네의 큰 꿈이 이루어지도록 빌겠네.
"고맙습니다. '꿈을 가진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선생님 책에 나온 소제목을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 자네의 꿈을 들려주게나.
"저는 인생은 40부터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준비 단계이지요. 언젠가 꼭 청소년을 위한 전문 음악학교를 세우고 싶어요. 축구는 어릴 때부터 기초를 가르쳐야 한다고 해외로 유학을 보내면서 왜 음악은 어릴 때부터 가르치지 않나요.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늦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오로지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청소년을 위한 음악전문학교를 세우려고 해요. 저 고교시절에 얼마나 갈등 많았습니까?"

- 아버님이 자네보고 공학도가 되라고 했으니….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아버님이 '좋다, 드럼 치라'하시면서 팍팍 밀어주셨다면 학교생활이 뒤틀리지는 않았을 테지요."

- 글쎄, 아버님이 반대하셨으니까 오히려 거기에 대한 반발로 드럼을 더 열심히 두드리지 않았을까?
"그 말씀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무언가 미친 듯이 두드려야지 제 마음이 가라앉았거든요."

- 예술은 말이야, 미쳐야 미치거든.
"'미쳐야 미친다.' 저도 이 말에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없지요. 근데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드럼은 시작은 쉬운 듯한데 끝은 한이 없어요. 보이지도 않고요."

- 그럼, 예술의 길은 끝이 있을 수 없지. 다만 늘 최선을 다할 뿐이지.
"다시 고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 재미있게, 더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 요즘 방송을 하면서 제 실력이 부족함을 많이 느껴요. 영어, 한문을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게 후회돼요. 그때는 목적 없이 공부했고, 솔직히 앞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건성으로 했지요."

그새 사제간이 역전된 듯, 그의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얘기에 내가 더듬으며 넋을 잃었다. 내가 화제를 바꿀 양 가족 얘기로 돌렸다.

- 아이가 몇이야?
"저 아직 없어요."

- 웬일이야?
"저나 제 집사람 신체에는 전혀 이상 없어요.(웃음) 다만 그 동안 집 사람이 부모님 간병하고 봉양하느라, 그 일 끝나자 제 막내동생 유학시킨다고 학비조달에 허덕였는데, 거기다가 제가 우리 아이 갖자고 그러지 못하겠더라고요. 게다가 우리 두 사람은 애정 결핍증이 있는지, 서로 사랑하다가 죽기로 했어요."

- 그래도 아이가 없다면 노후가 쓸쓸하지 않을까?
"글쎄요? 만일 아이가 있으면 걔에게 제 인생을 다 바칠 것 같아요. 그 점이 두렵기도 하고요."

- 하지만, 자식에게 내 모든 걸 바치고, 자식 때문에 속을 폭폭 썩이는 게 인생이야.
"이제 이 달로 막내 공부가 끝났으니 집사람과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 자네 정말 장하네. 하늘에 계시는 부모님이 얼마나 대견해 하셨을까? 막내가 미국에서 로스쿨(Law school)까지 마치는 그 힘든 뒷바라지까지 다 했다니 그보다 더 큰 효도가 없네. 요즘 어느 형이 그러겠는가? 아마 하늘에 계신 자네 아버님은 고맙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을 거야.
▲ 꿈을 가진 사제는 아름답다. 서로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면서.
ⓒ 김윤석
"뭘요. 걔 복이지요 뭐. 제가 자식이 없으니까 또 다른 애물단지를 돌본 것뿐이에요."

- 자네 정말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군. 정말 괜찮은 사람다운 사람이야. 그래 결혼은 언제 했나?
"벌써 13년이나 됐습니다. 외로워서 일찍 했어요."

자기는 올해 37세라 했고, 집 사람은 두 살 연상이라고 했다.

- 자네는 선견지명이 있었군. 내가 수업시간에 늘 아내의 사랑을 받으려면, 과부의 기간을 줄이려면, 연상의 여인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라고 했었지.
"요즘 그런 친구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어요."

저녁 방송이 있다기에 더 잡을 수 없어서 우리 두 사람은 현관에서 굳게 포옹을 나누고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 우리 서로 열심히 사세. 그러면 다시 만날 때 더 반가워.
"그럼요, 선생님. 선생님도 좋은 작품 많이 쓰세요."

그 새 땅거미가 지는 교정을 그의 새하얀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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