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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을 들고 태자의 처소로 달려온 순시병들은 참혹한 광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방안은 온통 피로 가득 차 있었으며 태자의 복색을 한 이가 핏속에 엎어져 있었다. 그는 바로 옥지였다. 유리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칼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구추를 안고 있었다.

"뭣 들 하느냐! 빨리 손을 쓰지 않고!"

순시병들은 부랴부랴 숨이 끊어진 옥지를 밖으로 들어내고 유리를 부축하려 했지만 유리는 이를 뿌리쳤다.

"난 괜찮다. 어서 구추나 돌봐주게. 그리고 병사들을 새벽에 이리로 집결시키게나."

아침이 밝아온 후 오간은 마려와 함께 사람들을 모아서 허겁지겁 두 왕자의 처소를 방문했다.

"태자는 죽었습니다. 어서 폐하의 처소로 찾아갑시다."

"하지만 폐하께서 뭐라고 하실지......"

오간은 온조의 걱정에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듯 재촉했다.

"이미 내친 일이니 망설이면 일을 그르칩니다. 어서 갑시다!"

비류와 온조가 앞에선 채 그들이 문밖을 나서려는 찰나 유리가 직접 거느린 병사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유리를 본 오간은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설 정도였다.

"이른 아침부터 어디를 그리 몰려가시오?"

서로들 눈치를 보며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자 유리는 잔뜩 비웃음을 머금은 채 병사들에게 명했다.

"저것들을 당장 포박하라!"

삽시간에 꽁꽁 묶인 비류, 온조, 오간, 마려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유리에게 발악하듯이 소리쳤다.

"이 무슨 짓이오! 일의 전후를 따져 처리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오!"

"너희들이 몰라서 내게 묻는 것이냐? 당장 여기서 목을 베고 싶지만 일단 폐하께 알리기 위해 놔두는 것이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주몽은 급히 두 왕자의 처소로 향했다. 주몽은 묶여있는 두 왕자들을 보며 물었다.

"너희들이 정녕 태자를 해치려고 했느냐? 이 또한 후비가 시킨 일이 아니더냐?"

비류는 주몽의 말을 듣고선 솔직히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어마마마는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았사옵니다. 전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 죽여주시옵소서."

주몽은 기가 막힌 한편 어쩌다 일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한탄스럽기만 했다. 멀리서부터 월군녀가 쏜살같이 달려와 주몽의 다리를 부여잡으며 애원했다.

"이 일은 제가 시킨 것입니다. 벌하시려거든 이 미련한 것을 죽여주시옵소서. 왕자들은 아무런 죄도 없나이다."

두 왕자는 왕자들대로 월군녀가 이 일과는 무관함을 주장하였다. 주몽은 눈을 질끈 감고 짧게나마 생각에 잠겼다.

"태자는 듣거라. 이 일이 비록 중죄에 속한다 하나 용서할 수는 없겠느냐?"

유리는 주몽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얘기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폐하, 저들은 제 목숨을 노리려다 제 친 동생이나 다름없는 옥지를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국법에 의하면 살인한 자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유리의 분노는 대단한 것이었다. 주몽은 그런 태자의 모습에서 묵거가 그렇게 염려하던 미움이 가득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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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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