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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려 합니다. 5월의 마지막 봄비가 도심의 먼지와 피로를 소리 없이 씻어 내립니다. 빌딩이 우거진 도심 한복판 맑은 목탁 소리에 세속의 번뇌를 지워버립니다. 비에 흠뻑 젖은 흙내음에 소나무의 숨결이 시나브로 스며들며 오염된 콧속을 정화시켜 줍니다.
스님, 이 못나고 사악한 중생 잠시 쉬어가도 되겠습니까? 어리석고 나약한 자의 하찮은 고민을 들어주시렵니까?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는 길이 어디를 향한 길인지 무엇을 위한 길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데 자꾸만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시린 바람이 가슴 한 구석을 무심히 쓸어 내립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제 심장 고동이 귓가에 아련합니다.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 새벽 4시 30분. 예불을 준비하는 도림(道林)스님의 분주한 발자욱이 새벽 공기를 힘차게 가로질러갑니다. 새만금 삼보일배로 인해 무릎이 편찮은데도 불구하고 스님의 발걸음엔 형용할 수 없는 삶의 에너지가 약동합니다.
"처음엔 저도 새벽에 일어나는게 고행이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자연스런 일상이 되었네요. 새벽은 저에게 맑음과 순수함을 전달해 줍니다. 새벽에 제가 깨어 날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부처님, 건강한 육체를 남겨주신 부모님, 예불을 드리는 신도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림 스님은 '지혜의 길, 자비의 길, 깨달음의 길' 을 걷고자 항상 정진하려 합니다. 스님에게 새벽은 참된 자아와 만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저녁에 잠이 들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잡니다. 완전한 '단절' 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단절에서 다시 깨어나 새벽에 일어나는 것 그 자체가 저에겐 그저 신비롭고 감사 할 따름입니다. 새벽에 2시간 더 빨리 일어나는 건 남보다 더 많은 26시간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이른 새벽을 남보다 빨리 연다는 것에 삶의 감동과 에너지를 느낍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온전하고 순수한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새벽 시간만큼은 그 어떤 이의 간섭 없이 참된 자신과 부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행자의 입장으로서 이른 새벽 시간은 저에게 자신을 들여다보며 반성 할 수 있는 귀중하고 유일한 시간입니다."
둥! 둥! 둥! 둥!
부처님 심장의 고동을 닮은 북 소리가 경건히 울려 퍼집니다. 숨 가쁜 시간에 찌들어 단단히 조여있던 숨통에 생기가 비집고 들어옵니다. 모처럼 간만에 평온한 서울의 공기를 있는 힘껏 크게 들이쉬고 내쉽니다. 어쩌면 잃어 버렸던 그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둥! 둥! 둥! 둥!
북이 우는지 심장이 뛰는지 새벽 공기가 진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공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어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자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다른 이면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향과 초가 타들어 가는 고요한 속삭임이 참새의 아침 인사와 어울리며 장단을 맞춥니다. 아주 오랜만에 천천히 느리게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나' 는 '우리' 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도림 스님은 유년 시절부터 키워온 현재 진행형의 이상이 하나 있습니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혜택을 덜 받는 농·어촌에 작은 학교를 짓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사라져 가는 농어촌에 서당 같은 작은 학교를 지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마구 뛰어 놀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제가 아는 '언어' 를 도구로서 어떻게 쓰는지 그 방법 또한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저는 '학인(學人)' 이라는 단어를 정말 좋아합니다. 이는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구든 살아가는 가운데 언제 어디서든 배우려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도림 스님은 서울의 조계사로 온지 1년 남짓 되었습니다. 산 속과 달리 대중과 더욱 가까이 소통 할 수 있어 삶의 문제를 더 직접적으로 느낀다는 스님은 종교를 통해 도시인들이 또 다른 희망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도시로 내려오니 할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삶의 한복판에 뛰어 들다 보니 문제들이 크게 보이고 할 일도 많고 동시에 한계도 느낍니다. 빌딩 숲 속에 위치한 조계사는 교통편이 편리하고 도심에 자리잡은 지라 많은 분들이 편하게 방문합니다. 삶에 지친 도시인들이 언제
어느 때든 자신이 편한 시간에 방문하여 참된 자아와 진정한 대화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어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새만금 삼보일배를 다녀오신 도림 스님은 문규현 신부님, 수경 스님, 이희운 목사님, 김경일 교무님 네 분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도대체 그 새만금 사업이 뭐길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치는 건지.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살아있는 자연이 경제 논리에 의해 파괴되는 걸 막기 위해 단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삼보일배를 하시는 네 분을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정말 감히 뭐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존경심이 일렁입니다.
아무리 언변이 뛰어난 사람의 가르침일지라도 네 분의 '묵언' 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뛰어난 수만 마디의 말로도 그 분들의 값진 '묵언' 을 모두 설명 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말없이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본질과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되는 것' 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네 분을 보며 '모든 생명을 끌어안고 함께 살리는 것' 이 바로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삼보일배에 대한 도림 스님의 감격은 종교의 벽을 뛰어 넘은 희열로 넘나듭니다.
"솔직히 속세에서는 종교의 벽이 두터운 것이 사실입니다. 근데 이번 새만금을 통해 네 종교의 벽을 뛰어 넘어 생명을 살리자는 데 한 마음이 모아졌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같이 느끼고 만들어 가며 살리는 것에 모든 종교의 갈등과 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기도, 설교, 전도하는 방법은 다 제 각각이어도 하나의 생명 아래 네 사람이 모여있는 모습에 벅찬 희열과 감동을 느낍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로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화합된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종교가 해야 되는 올바른 역할인 것 같습니다."
지혜의 길, 자비의 길, 깨달음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는 도림 스님은 특히 '자비' 를 강조합니다. 자비란 '생각에 따른 행동의 실천' 을 말하는 것이라며 스님은 모두 에게 '생명체' 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자비심을 당부합니다.
"사람의 삶은 '숲' 과 같습니다. 숲과 나무는 공존하는 것입니다. 나무가 없으면 숲이 없고 숲이 없으면 나무가 없습니다. 옆에 생명이 죽어 가는 데 나 혼자만 행복 할 수 있나요? 같이 공존하는 남이 행복하지 않으면 개인의 행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