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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보일배 57일째인 23일 오전 서울입성을 앞두고 수행자들이 남태령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64일째 이어온 삼보일배 행렬이 30일 조계사 품에 안겼다. 부안에서부터 서울까지 아스팔트 고행길에 나섰던 네명의 성직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들의 얼굴은 그간의 고행으로 까칠해졌지만, 고통의 힘겨움 대신 깊은 미소가 머문다.

30일 조계사에서 만난 진행요원들이 풀어놓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서 삼보일배 대장정을 스케치해 보았다...<필자 주>


▲ 조계사 무대에 선 자원봉사팀. 이들도 당당한 주인공이다
ⓒ 류종수
지난 3월 28일. 드넓은 해창갯벌에서 시작한 참회의 기도수행, 삼보일배는 어머니의 자궁이자 인간의 콩팥을 '죽음의 개발'로부터 살려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험난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길에 많은 환경운동가와 시민들이 순례의 동반자로 동참했다.

깃발을 든 사람, 선발대로 나서 도로를 점거하고 천막을 친 사람, 네 분 성직자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사람, '역사'를 기록하고 알리는 사람. 생명이 그 무엇보다 조화롭듯이 생명을 지켜간 이들의 '대동단결'도 최상의 팀워크를 일궈냈다. 그 증거가 31일에 환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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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의 상징인 깃발을 들고 걷는다는 자부심 하나로 해창갯벌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다는 신권(57)씨 지난 64일을 '울면서 왔다'고 술회했다.

ⓒ 박재동
"천둥치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씨 속에 이어진 삼보일배를 보면서 울었습니다. 우리를 보고 심하게 욕하시며 원망하던 군산 시민들을 보고 울었습니다. 계란이며 쌀 가져다주시던 형제자매들보고 울었습니다. 연로하신 할머니가 하루종일 삼보일배 하시던 모습보고 울었습니다. 아이들이 '신부님, 스님 사랑해요'하고 외치는 것을 보고 울었습니다. 삼보일배 반나절 해보고 너무 힘들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왜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가. 얽히고 설킨 정치인과 관료, 농업기반공사, 재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가장 평화적이고 용기있는 수행, 이 마땅한 주장을 들어주지 않으면 다시 싸운다', '내일은 흩어지지만 더 큰 힘으로 다시 저항할 것이다', '종교인, 지성인,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강철같은 투쟁으로 새만금갯벌 살리고야 말 것이다'"


▲ 이날 상영된 삼보일배 동영상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만감이 교차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 류종수
'이건 비밀인데 깃발이 생각보다 가볍다'고 살짝 밝힌 그는 "원래 부끄럼이 많았는데 훌륭한 분들과 몇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같이 하면서 내 자신이 대견스러울 때가 많았다"면서 "또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하겠다는 각오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감동하고 전율하며 사는 '할아버지'였다.

곳곳에서 벌어진 시민마당은 용기를 길어 마시는 오아시스

삼보일배 행렬이 멈추지 않고 서울로 올라가면서 많은 곳에서 '시민마당'이 차려졌다. 부안, 군산, 천안, 평택, 수원에서 시민들이 만든 감격과 환영의 한바탕 잔치가 벌어져 목마른 삼보일배 행렬에게 힘을 주었다.

▲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며 사진과 글을 삼보일배 홈페이지에 올린 마용운씨
ⓒ 류종수
가는 길에 소설가 박경리씨의 격려 편지가 도착했고, 장선우 감독, 명계남, 예지원씨의 응원방문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마용운씨. 누구보다 많은 장면들을 렌즈에 담았을 그의 지금 마음은 무척이나 무겁다.

"두 달 넘게 목숨걸고 온 몸 던져서 왔는데 정부에서는 귀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서"란다. 그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적은 시민들의 매몰찬 반응을 보아야할 때였다.

"네 분의 성직자가 개인의 영달이나 명예, 부귀를 노리고 이런 고생을 한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 할 때 가장 슬펐다. 새만금을 찬성하는 전북시민들이 확성기로 '삼보일배는 물러가라'고 외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한두 명의 운전자들이 몇 분이면 지나갈 행렬을 못 기다리고 험한 말을 내뱉을 때가 정말 힘들었다."

마용운씨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직접 쓴 글을 삼보일배 인터넷 홈페이지(http://3bo1bae.or.kr) '하루소식'면에 올리고 있다. 그는 최근 '하루소식보고 감동했다'는 글이 연일 오르는 등 서울에 가까워지면서 삼보일배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이 올라와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강행군을 계속하던 네 성직자들도 어느 땐 힘에 부쳐서 예정지보다 못 미친 곳에서 점심 휴식을 취하자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미리 쳐놨던 천막을 걷고 다시 옮기느라 부산을 떨어야했던 적도 있었다.

삼보일배에 30일 동안 선발대 진행요원으로 활동했다는 황형원(25)씨도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다.

험난했던 길을 이제 접어야하는 상황에서 그는 '많이 아쉽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처음부터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면서 "이런 역사적인 장소에 내가 지금 서있다는 것이 내 인생에 영원히 기억될 만큼 뿌듯하기도 하지만 끝난다고 하니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 일명 천막요원이었던 황형원씨. 진지하게 환경활동가를 꿈꾸고 있다
ⓒ 류종수
이 감격과 아쉬움은 그의 꿈도 바꿔놨다. 그는 "환경운동단체 간사들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또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진지하게 환경운동가의 길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삼보일배 순례단 맨 앞에서 행렬을 인솔하던 박인영 간사(녹색연합)도 참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고행을 말리고 싶었다. 네 분이 대단한 일들을 하고 계시는구나. 이번 삼보일배는 또다시 새만금 간척사업의 문제를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고 고행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뭇 생명들의 떼죽음을 막아보자는 기도수행이었는데 전북에서 올라와 우리의 반대편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욕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온 몸을 감싸는 더위나 매연보다 더 힘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덧붙였다.

박인영 간사, 그는 65일 동안 걸어오면서 많은 마음이 모아진 것을 느꼈단다. 갑자기 트럭 한대가 서면서 아저씨가 딸기 상자를 내려주신 적도 있고, 서천을 넘어왔을 때 TV에서 봤다며 덧댄 바지를 준 사람도 있었다고. 그는 “모두 따뜻한 마음이었다"며 "삼보일배 순례단과 함께 하면서 이 마음들이 모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말릴 수 도 없어서 차라리 내가 했으면 하는 생각도…"

송정희(26)씨는 네 분 성직자의 '최측근'으로 이들의 수발을 들었다. 매 끼니마다 음식을 차려 주면서 잠시 쉴 때는 물수건으로 흥건히 젖은 얼굴을 닦아주고 다리 마사지로 피로도 풀어주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극복하는 네 분 성직자들을 보아야했던 그녀의 지금 감회는 또 남달랐다.

"무더운 날씨에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땐 시원한 바람 한 줄기와 그늘이 정말 그리웠다. 많은 의사 분들이 다녀가면서 20여가지가 넘는 치료법을 제시해줬지만 나중에는 온전히 혼자서 기도와 정신력으로 삼보일배를 이어갔다.

장대비에 천둥치는 날에도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말릴 수도 없어서 차라리 내가 했으면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수경스님이 쓰러져서 옆에서 병간호를 했는데 수경스님이 의료진의 만류에도 다음날 새벽 병원을 몰래 빠져 나왔을 때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일전에 '지리산 살리기 도보순례'에 참석하면서 수경스님을 알게됐다는 송정희씨는 "이라크전이 터지고 새만금을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내 개인 일은 언젠가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은 정말 절박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 일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 송정희씨와 함께 네 분 성직자 '뒷바라지'를 담당했던 홍숙경씨.
ⓒ 류종수
길 위에 절을 하면 담배꽁초가 이마에 닿기도 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한없이 자기를 낮추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내가 어떻게, 무슨 욕심으로 살아왔는가',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가'를 하루에도 수십번 생각한단다.

함께 함으로써 모두가 성장했던 이들 진행요원들. 처절하게 아름다운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쌓여간, 이들의 각기 남다른 기억들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삼보일배, 그 대장정의 화면들이 우리 가슴에 영사되는 것만 같다.

31일, 4명의 성직자의 삼보일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새만금갯벌이 고기들의 산란장으로, 천혜의 정화조로 되살아날 때까지 이 고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이들은 힘주어 말한다.

"이제 그 몫은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시민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해창갯벌에서 서울시청까지
800여리 길을 '온몸으로' 걸어왔다
전무후무한 대장정이 남긴 이야기들

▲ 문규현 신부 일행이 삼보일배를 하는 가운데 대형차량이 굉음을 내며 이들 옆을 지나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생명과 조화의 땅 새만금갯벌을 파괴하는 방조제공사를 즉각 중단하라"는 고요한 외침을 토해내며 이어온 삼보일배 행렬이 31일 드디어 최종 목적지 서울 시청에 당도한다.

문규현 신부(58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와 수경 스님(55세,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연대 상임대표)가 '의기투합'하고 이희운 목사(42세, 기독교생명연대 공동대표)와 김경일 교무(새만금 생명살리기 원불교사람들 대표)가 뒤를 이어 합세한 이 행렬은 지나오는 곳곳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해창갯벌에서 서울 시청까지 3백Km, 800리 길은 3월 28일에 시작됐다. 정확히 65일 동안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극복하는 세 걸음으로, 한 번 사죄의 엎드림으로 걸어온 '전무후무한' 이 대장정이 남긴 기록들도 엄청나다.

5월 22일에는 삼보일배 행렬이 기어이 과천종합청사에 도착하자 환경부 한명수 장관과 농림부 김영진 장관도 이들을 마중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인 23일에는 가수 정태춘씨가 현장으로 달려와 직접 작사작곡한 <갯벌의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고, 동자승이 찾아와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했다. 박원순 변호사,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이영희 교수, 김지하 시인들이 삼보일배 행렬에 직접 동참하면서 '국민의 염원'으로 만들어 나갔다.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달려올 길을 '온몸으로' 걸어온 삼보일배. 하루 평균 6시간 진행된 강행군은 수경 스님의 눈까지 아프게 했다. 아스팔트 위에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 때문에 어울리지 않게 선글라스를 착용하기까지도 했다.

손에 낀 장갑은 거친 아스팔트의 표면에 하루에도 서너 켤레를 소모하게 했다. 무릎이 맞닿은 바지에는 솜으로, 보호대로 덧대어도 구멍이 나기 일쑤였다. 수경 스님은 때론 무릎에 찬 물을 빼내면서 고행길을 이어갔다.

4대 종단이 어울러진 삼보일배는 특정 종교의 날을 두기도 했다. 5월 19일에는 기독교 참가일 등을 두면서 생명을 사랑하는데 교파의 벽이 있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긴 행렬에는 각지에서 올라온 불교신자들과 흰 한복을 입을 원불교 교무들, 십자가를 목에 찬 기독교, 카톨릭 신자들이 항상 같이 했다.

이제는 지역을 넘어 생명 사랑의 대동마당을 만드는 것만이 남았다.
/ 류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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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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