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함께 자리하신 분은 강화 교동에서 지석교회를 섬기고 있는 박철 목사이십니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지석교회가 강화도에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습니까?
“강화에는 와보셨나요? 강화 맨 끝자락에 ‘창후리’라는 선착장이 있습니다. 거기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건너면 교동이라는 섬이 나오지요. 교동 섬 가장 북쪽 북한 연백을 빤히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지석교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 거기서 북한이 바로 보이나요?
“네 교회 마당에 서서 보면 바로 보입니다.”
-그러면 오늘 나오실 때 배를 타고 오셨나요?
“네. 물론이지요. 섬에서 비행기를 타고 건널 수도 없고, 차를 타고 건널 수도 없고, 일단 배를 타고 건넌 후에 차를 이용해서 왔습니다.(웃음)
-서울 시내에 들어오시는 날이 별로 많지 않은가 봐요.
“네. 아주 드물죠.”
- 네. 오늘 어려운 걸음을 하셨군요.
“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상당히 유명하신 분이라고 하더군요. 무엇으로 유명하신지 한번 소개 좀 해주시지요.
“전혀 유명하지 않습니다. 제 이름이 있으니 무명하지도 않고요. 제 이름으로 두 사람의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탤런트이고, 한 사람은 CBS 시사쟈키 PD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그러더군요. 그러나 저는 별로 유명하지 않습니다.” (웃음)
-그래도 지역사회에서 홈페이지를 통해서 인정받는 분이시고, 또 시인이시고 인터넷 신문 기자로서도 활약이 크신데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그래도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방금 기자라고 하셨는데 기자는 무슨 쥐뿔도 아니고요. 또 ‘시’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습작은 오래했어요. 한 20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잡지에서 청탁이 있으면 원고를 쓰기도 하고 정해진 인터넷 신문에 연재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지석교회 가신 지는 얼마나 오래되셨나요?
“만 6년 지났고요. 올해 7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네. 지금 말씀하신 교동에는 가본 적이 없는 데 상상컨대 배를 타고 들어가서 7년 동안 사셨으면 시라든가 글이라든가 그곳의 풍경이 담아지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그렇죠. 굉장히 영감을 많이 받죠. 섬지역이기도 하고 교동 섬, 그러면 사람들이 다 고기 잡아먹고 사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고 대부분 논농사를 위주로 하고 있어요. 농촌지역이기도 하고, 또 섬이고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섬이 가져다주는 깊은 느낌,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정서라든지 고요함이라든지 많은 영적인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영성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곳에 사시는군요.
“네.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쓰시는 시나 글도 서정적인 것들을 쓰실 것 같고, 주로 어떤 내용의 글들을 쓰시는지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쓰지요. 주로 인터넷 신문에 올리는 글들은, 저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면서 어린시절 가졌던 짧은 생각, 느낌, 내가 만났던 사람들,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소재는 다양합니다. 우리 가족들 이야기를 쓰기도 하는데요. 제가 결혼을 좀 늦게 해서 아이들이 늦은 편이지요.
큰 아이가 중3 둘째가 중1 막내딸이 초등학교 1학년인데 이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얘기들을 쓰기도 하고요. 어떤 때는 제 집사람 얘기를 쓰는데 심지어 부부싸움 했던 얘기도 솔직하게 담아냅니다. 또 우리교회 교인들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들, 또 교동이 섬이지만, 대부분 논농사를 하시는데 평생 땅을 일구며 땅과 함께 정직하게 살아오신 사람들의 투박하지만 정을 느낄 수 있는 진솔한 얘기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 들어보면서 느끼는 것은, 주위의 여러 가지를 깊이 느끼고 또 표현하고 또 이런 것을 일상적으로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못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목사님은 그걸 실천에 옮기시고, 그런 느낌들을 듬뿍 마음에 담아 가시면서 사시는데 홈페이지가 slowslow ‘천천히, 느리게 살기’도 하나의 운동으로 펼치시는 건가요?
“그렇지요.”
-네.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느릿느릿 살기는 어떤 형태의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생긴 것도 그렇고 굉장히 성격이 급해요. 평소부터 좀 천천히 가자, 느리게 가자 그런 생각을 해 왔어요. 제가 교동에 들어와서 산지가 7년째 되었는데요. 해마다 가을이면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가 열리지요. 아이들 사진 찍어주기 위해서 운동회에 매번 참석했어요. 그런데 운동회 경기 종목 가운데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누가 목적지까지 느리게 가는가 하는 경기가 있어요. 아주 재미난 경기인데요. 아이들 자전거를 타고 빨리 가는 데는 익숙한데 느리게 가는 건 안 해보았거든요.
아이들이 느리게 가려고 하지 엉덩이를 씰룩씰룩하면서 가급적 페달을 밟지 않고 몸의 균형을 잡지요. 넘어지면 안 되니까 참 우스꽝스런 모습이 연출되는데, 그걸 보고 바로 저것이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현대인들이 대부분 삶의 편리와 속도만 추구하며 살다보니까 여러 가지 병폐나 부작용들이 많이 생겨나잖아요.
대신 천천히 느리게 가면 그만큼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더 자세히 보게 되고, 더 깊이 느끼게 되고 여러 가지 이점이 있지요. 우리 막내딸, 은빈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어느 날 학교 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어요. 집에서 학교까지 15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데 천천히 걸어서 30분 이상 걸리는 거예요.(웃음)
애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 “은빈아, 너. 왜 그렇게 학교를 천천히 가냐?”고 물어 봤지요. 그랬더니 우리 딸네미가 “아빠, 내가 느리게 가니까 가다가 꽃도 보고, 나비도 보고, 벌레도 보고, 벌레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움직이는 것도 보고, 또 가다가 구름도 보고, 나무도 보고,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그러니까 참 좋아!” 그렇게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그런 것을 착상으로 해서 홈페이지 이름을 ‘느릿느릿 함께 가는 이야기’로 정했지요.”
(내 얘기가 길다고 PD가 사인을 보낸다. 본래 내 얘기가 느릿느릿 아닌가?)
-네 지금 목사님이 사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까 저 같은 사람은 ‘헛 살고 있다’ 그런 생각도 드는 걸요. 사실 현대사회 또는 자본주의 사회가 주로 속도감으로 경쟁을 하고, 그 속도의 시간에 의해서 능력을 증가시키는 연속 속에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 말이죠.
19세기 때부터 구라파에서 느릿느릿 살기 운동을 주창한 사람도 있었어요. 근데 제가 들으면서 따님이 두 배로 느리게 가면서 더 많은 것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빨리 사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꺼꾸로’라는 것이지요.
“네. 빨리 빨리 무엇이든 빨리 빨리인데 그런데 왜 빨리 사는가? 그 이유를 모르는 거지요.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지요. 빨리 어디를 가느냐? 빨리 가는 것보다도 그 목적지가 어디냐? 내가 지금 어느 길로 가느냐? 에 대해선 깊은 고민이라든지 개인적인 삶의 성찰이 부족한 것이지요.”
-목적지향적인 것이 바로 핵심인 것 같아요. 과정을 놓치고 과정을 소홀히 하는 거. 그럼 교동 마을은 지금 어떻습니까? 어떤 동네인가요?
“교동이 과거 6,70년대까지는 인구가 2만명 가까이 살았다고 해요. 그런데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소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격한 이농 현상이 벌어졌지요. 그래서 2만명 살던 지역이 지금은 4천명도 채 안되는 사람이 살고 있지요.”
-거의 5분의 1로 줄어들었군요. 지석교회도 오래되었나요?
“교회 역사가 52년 되었습니다. 역사가 아주 오래된 교회는 아니지만, 그래도 목사를 24분 배출한 교회이고, 굵직굵직한 목사님들을 여럿 배출한 교회이지요. 현재 예장 합동 총회장이신 한명수 목사도 우리 교회에서 배출한 분이지요.”
-그럼 마을 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우리 마을 자랑할 게 참 많아요. 우선 사람 좋고, 인심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쌀 좋고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또 한 가지 자랑하고 싶은 것은 교회와 지역사회간에 교회와 주민들이 깊은 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현재 우리교회 예배당이 12년 전 새로 지었는데, 예배당을 지을 때 우리 교인들뿐만 아니라, 온 동네사람들이 동원되어서 지었다는 것이지요.
애들부터 시작해서, 여자 남자 어른 노인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그 뜨거운 여름철에 기계나 다른 장비가 없이 돌은 손으로 나르고 등짐을 지고 콘크리트를 비비고 여자들은 밥을 해서 나르고 그걸 하루도 쉬지 않고 여러 달에 걸쳐서 지었어요. 그래서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자기들 손으로 예배당을 지었다고 해서 깊은 자부심은 갖고 계시고 교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계시고, 또 교회도 역시 지역사회와 주민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서로 협력하고 상부상조하는 좋은 마을 전통 교회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지석교회 자체가 공동체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군요. 네. 참 아름다운 이야기로군요.
“예배당도 참 아름답게 자연 경관과 어우러지게 지어졌습니다.”
-인터넷 신문에 이장님을 소개해서 화제가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최근 인터넷 신문에 이장님 이야기를 썼는데 사실 잘 못 썼어요. 그런데 메인 탑에 올라서 졸지에 우리 이장님이 스타가 되셨어요. 사방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고, 이미 모 라디오 방송에 출연도 하시고, 다음주에 그것 계기가 되어서 모 TV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오기로 확정이 되었어요.
우리 이장님 잠깐 소개를 할까요? 대단히 성실한 분이고, 부지런한 분이에요. 제가 인터넷 신문에 이장님 아침 마을 방송하는 얘기를 썼거든요. 이 분이 아침 6시에 마을 방송을 하는데 시골에서는 마을 방송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아침방송을 하기 전에 꼭 시그널음악을 틀어준 다음 주위를 환기시키고 방송을 하지요.
보통 다른 동네 같으면 뽕짝 음악을 메들리로 틀어주는데, 뭡니까? 김종환이라는 가수의 ‘사랑을 위하여’ 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런데 그 가사가 아침에 맞아떨어지고 가사가 절절한 데, 제가 아는 데로 가사를 소개해 드릴까요?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그러니까 이 노래를 사람들이 들으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거지요. 그 이야기를 써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장님이 저를 보면 글을 잘 써주어서 고맙다고 볼 적마다 인사를 하지요. 그러면 이장님 마을 방송한번 들어볼까요? (방송이 흘러나온다)
-네 지금 이장님의 말씀을 조금 들어보았는데요. 상상이 갑니다. 매일 아침 저런 목소리로 방송도 하시고 음악도 틀어주시고 홈페이지와 인터넷신문이 톡톡히 역할을 했네요. 강화 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적, 세계적으로 교동을 알리는 역할을 하신 것 같네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홈페이지 컨셉이 ‘느릿느릿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어떨까요? 일상생활에서 느릿느릿 사는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시지요?
“요즘 현대인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조급한 것 같아요. 다 빨리 빨리 하다 보니까 삶의 질이라든지, 삶의 내용하고 관계없이 그저 빨리만 가려고 하고, 천천히 생각해 본다든지 삶의 여유를 가져본다든지, 그런 것이 매우 부족한 것 같아요.
저 자신부터 제가 한 사람 이전에 목회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 삶은 깊은 성찰을 해보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릿느릿 이야기’가 가족 홈페이지거든요. 또 가족 홈페이지 느릿느릿 이야기를 만든 것은, 가족들 간에 대화를 좀 하자 그런 의도가 있었고 제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닌데. 아들 일기를 보니까는 아빠를 무서운 아빠로 적어 놓았더라고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걸 보고 이러면 안 되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아이들을 홈페이지를 통해 대화의 창구로 생각한 것인데, 그런데 정작 아이들이 ‘느릿느릿 이야기’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컴퓨터 게임은 열심히 하는데. ‘야, 글 좀 남겨라’ 하면 마지못해 들어와 몇 줄 남기는 게 고작이지요.(웃음)
-그런데 다른 외부에 계신 분들이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시면서 느릿느릿 사는 거에 대해서 어떤 말씀들을 하시나요.
“일단 재미있다고 그래요. 어떤 사람은 신선하다고 그러고, 어떤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파격적이다 그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목회활동 하면서 ‘느릿느릿 사는 삶’을 어떤 형태로 담아내고 있는지요?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소위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살면서 무엇이든지 물적인 토대로, 물량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사람들이 젖어 있고, 길들여져 있고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굉장히 자기가 손해 보는 줄 알고, 자기 삶이 굉장히 불행하다고 느끼지요. 그런데 ‘느릿느릿 이야기’를 쓰면서 저부터 깊이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더 고민하게 되니까 목회에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특히 제가 목회자이고 설교자이기 때문에 설교에 많은 도움이 되지요. 강단에서 일방적으로 딱딱한 설교를 전해주는 것보다, 일단 한번 걸러진 얘기이니까 좋은 예화 거리가 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지요.
-그럼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실천되는지요? 목사님 삶 자체는 변한 게 어떤 것이 있어요?
“여전히 급하지요.”(웃음)
-말씀만 하시고 행동으로 못 옮기셨군요.
“행동이나 사고방식은 게으르면서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느릿느릿 살자고 그런다고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요.”(웃음)
-그렇게 따님은 벌써 그것을 실천에 옮겨서 두 배의 시간을 걸려서 학교를 가는데 아버님이 좀 진도가 안 나가셨네요?
“많이 배워야지요.”
(이 부분은 시간이 오버되어 편집에서 잘린 부분임)
-좀더 큰 교회에서 더 많은 교인들을 불러모으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적한 곳에서 글로 쓰고, 사진도 찍고 느릿느릿 사시고, 목사님의 목회철학을 듣고 싶은데요?
“큰 교회에서 저를 불러주지 않네요.(웃음) 다른 목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 성장에 관심이 왜 없겠어요? 교회가 두 가지 큰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기능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기능이 있지요.
지금의 한국교회는 모이는 교회에만 관심을 갖고 거기에만 집착한 것 같아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교회기능도 중요하지요,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농촌 목회자이기 때문에 모이는 교회로서의 교회기능에 강조점을 두기보다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교회기능에 더 관심을 갖고 있어요. 농촌 지역이므로 인구 이동도 없고 특별한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
한 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주체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역사의식을 갖고 살도록 인도하고,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실현하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를 만드는 일에 더 큰 관심과 노력을 하고 있지요.”
-좋은 지적을 해주셨군요. 맞아요.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모이는 교회에만 집착해서 많은 부작용이 있었지요.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네, 좋습니다. 지금까지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행 이영자 교수(카톨릭대 사회학과).
-PD 김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