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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는 아내가 문 앞에서 흘깃 내 눈치를 본다.
"오늘도 출근시켜 주지 않을 거예요? 좀 늦었는데…."
별로 기대는 하지 않는 것 같은 목소리다.

"그냥 빨리 걸어가. 뚱뚱한 마누라 살빠지는 거 되게 아까워한다고 흉보는 사람들 눈총도 좀 생각해 줘야지. 안 그려?"
거실의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아내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서운한 목소리를 떨구고 아내는 집을 나섰다. 시간에 쫓기며 10분 정도 바삐 걷는 일이 좀 어렵긴 하겠지만, 과체중인 아내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할 터였다.

그러나 내가 아내의 과체중만을 생각해서 요즘 들어 출근을 도와주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의 착각과 건망증이 가져온 최근의 카메라 분실 사건에 대한 노여움 때문이었다. 그것을 오늘 아침에도 표출을 한 셈인데, 그러면서 나는 아내의 과체중 문제까지 들먹인 것이다.

아주 없지는 않은 미안한 마음을 꾹 억누르고 심기가 불편한 가운데서도 글 쓰기 작업에 열중하려 할 때였다.

"얼라, 이 사람 또 이걸 놓고 갔네."
어머니가 문 앞에서 하는 소리다.

아내가 출근하면서 가지고 가려고 미리 문 앞에다 놓았던 계란 봉지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까닭이었다. 지난 주일에 성당에서 성전건립기금을 보태기 위해 사온 달걀이었다. 일부는 집에서 먹고, 일부는 학교에 가지고 가서 쉬는 시간에 동료 교사들과 하나씩 나누어 먹는다고 오늘 아침에 삶아서 따로 봉지에 담아놓은 것이었다. 자기 딴에는 출근할 때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일껏 궁리를 해서 잘 보이는 문 앞에다가 놓은 것인데, 그러고도 그냥 간 것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 정신 어디 갈라고. 대체 그런 정신 가지고 어떻게 선생 노릇을 하는지 몰라."
어머니는 혀를 차면서 계란 봉지를 집어들었다.

"잘 됐어요. 그 사람은 학교서 계란 하나라도, 간식이란 걸 일체 하지 말아야 하니까요. 다른 중요한 물건 같으면 내가 갖다주기라도 하겠지만, 그건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자못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아내의 그런 또 한번의 건망증 표발이 내게 불현듯 재미있는 기억 한가지를 안겨 주어서 나는 킥하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에 아내의 건망증을 소재로 콩트 하나를 쓴 적이 있었다. 거액의 보증 빚을 갚느라 허덕거리며 살 때였다. 매월 아내의 봉급을 다 빼앗기고 알량한 내 고료 수입으로 목구멍 문제를 해결하자니 여기저기 사보(社報)들의 편집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게 원고 청탁 좀 해달라는 이상한 구걸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얻은 또 하나의 콩트 청탁을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아내의 건망증에서 힌트를 얻어 가까스로 지은 것이 '업은 아이 찾았네'라는 글이었다.

<현대정유> 사보에 나온 그 글을 읽으면서 아내는 자기에 관한 글인데도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더니 한다는 소리가 걸작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내 건망증도 써먹을 데가 있었네요. 내 건망증 덕에 23만원이나 벌었으니, 내 건망증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당신, 앞으로는 내 건망증을 너무 구박하지 마세요."

그때는 나도 장당 1만원씩의 고료를 23만원이나 벌게 된 것이 그저 흐뭇해서,
"그려. 알았어. 가스 불에 냄비 올려놓고 딴전 피우다가 냄비 태워먹는 일만 저지르지 않으면, 그리고 학교서 당신 반 애들 얼굴 잊어먹는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뭐가 어떻게 되든 내 암말 안 할게."
자못 너그럽게 아내의 건망증을 관용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아내의 건망증에 의한 좀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최근에 또 하나 생기고 말았다.

성당에 무슨 일이 있어서 토요일 오후에 카메라를 가지고 간 것까지는 좋았다. 아내는 자신이 먼저 사용한 다음 동서도 사용하게 하려고 카메라를 동서의 미사가방에다가 넣어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미사가방을 놓아둔 채 자리를 떠나 있는 동서에게 가서 얘기를 해준다는 걸 그만 깜빡 잊고 그냥 먼저 성당을 나왔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아내는 한 달도 더 지난 시점에서 겨우 기억해 냈다. 그것도 스스로 기억을 한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 쓸 일이 생겨서 찾아보니 집안에 카메라가 없었다. 카메라가 없어진 사실을 그제야 알고 카메라의 행방을 쫓다가 어렵사리 그런 기억을 해낸 것이었다.

아내는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번에 성당에서 아이들 사진 찍어줄 때 내가 동서 미사가방에다가 카메라를 넣어두었는데, 카메라 지금 집에 있어?"
"카메라요? 그때 내 미사가방 안에 카메라가 없었는데요. 그때가 벌써 한 달 전인데…."
"그려? 그럼, 내가 동서 미사가방인 줄 알고 다른 사람 가방에다가 카메라를 넣었나보다."

곧바로 그것은 기정 사실이 되어 버렸다. 아내는 다른 사람의 가방에다가 카메라를 잘못 넣은 것으로 단정했다. 그 단계에서는 나도 그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성당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사무장님, 우리 카메라 내놔요. 25만원이나 주고 사서 일년도 안 쓴 거예요."였으니, 아무리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해도 사무장님이 어리둥절해 할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나한테 언제 카메라 맡겼나요?"
"그게 아니라요, 지난번 주일학교 아이들 행사 때 내가 카메라를 쓰고 나서 우리 동서한테 준다고, 동서 미사가방에다 넣는다고 넣었는데 그만 남의 가방에다 넣었지 뭐예요. 그래서, 그 카메라가 사무장님한테 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랬으면 내가 진작에 임자를 찾아주었지요. 그때가 벌써 언젠데…."
"그래요? 그럼, 내가 신자가 아닌 사람의 가방에다가 카메라를 넣었나…. 그 날은 신자가 아닌 사람은 성당에 오지를 않았을 텐데…."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아내는 상심 어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동서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가방에다가 카메라를 넣어서 빚어진 카메라 분실 사건은 결국 동서와 성당 사무장의 기분을 언짢게 하고, 누군지 모를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만든 셈이었다.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동생네 가족과 성당 사무장까지도 '천주교 신자 중에도 양심 없는 사람이 있다'는 인식 속에서 불유쾌한 기분을 갖게 하는 일이 되고 만 셈이었다.

하여간 그런 식으로 카메라를 잃어버리고도, 그런 사실을 한 달이 지나도록 잊고 산 것은 또 뭔가!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심사여서 나는 벌써 열흘 가까이 아내의 출근을 도와주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그런 태도가 아내로 하여금 자신의 건망증을 노상 자각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내가 몇 년 전에 아내의 건망증을 소재로 재미있는 콩트 하나 써서 23만원을 번 생각을 하며 킥 웃음을 머금었을 때였다. 매월 200만원씩 빚잔치를 하며 어렵게 살 때 아내의 느긋한 성격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었던가! 그런 생각도 하며 고마운 마음까지 머금고 있을 때 어머니가 내게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손에는 계란 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잠깐 이것 좀 갖다 주구 오면 안 될라나?"
"그러지요, 뭐. 지금 잠깐 쉬는 중이니까."
나는 선뜻 몸을 일으켰다.

차를 몰고 학교에 가니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교실에 있다가 나를 본 아내는 아까 출근할 때의 표정과는 달리 왠지 밝은 기색이었다. 나에게서 계란 봉지를 받아들고 활짝 웃더니 이상한 말을 했다.

"내 9일기도 보람이 정말 크네요. 당신이 이 계란도 갖다 주시고…."
"9일기도?"
"카메라 잃어버린 것을 안 날부터 9일기도를 시작했어요. 오늘이 9일기도 끝나는 날이에요. 아까 학교에 걸어오면서 기도를 마쳤어요. 기도문을 다 외운 덕에…."
"무슨 기도를 했길래…."

"본의 아니게 카메라를 습득한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나 같은 건망증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요. 임자에게 카메라 돌려주는 일을 그 사람이 자꾸 잊어먹지 않게 해달라고요. 그런 내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다니까요."
"어떻게?"

"우리 반 아이 엄마 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빌려준 걸 갖다가, 그걸 까맣게 잊고 엉뚱하게…. 그 엄마도 글쎄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가져왔다지 뭐예요. 나랑 똑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 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배꼽을 잡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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