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느릿느릿 박철
무슨 생각? 닭다리 뜯어 먹는 생각

작년부터 아내와 은빈이가 내 방 서재에서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 안방을 놔두고 슬그머니 내 방으로 건너옵니다. 그래야 부부금술이 좋아진다나? 내 방에서 은빈이가 자는데 자는 걸 건드리면 신경질을 박박 내기 때문에 얼마동안은 그냥 내버려둡니다. 7시30분이 지나면 아무래도 씻고 아침밥 먹고 하다보면 학교에 늦겠다 싶어 은빈이를 흔들어 깨웁니다.


관련
기사
"나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어요!"



"은빈아! 얼른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아이구, 착하다. 얼른 일어나야지. 학교 늦겠다…."
어떤 때는 김광석의 '일어나' 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럼 은빈이가 대뜸,

"아빠 미워, 무슨 아빠가 사랑하는 딸을 못살게 굴어. 내 잠 물어내. 아빠 때문에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거 다 잊어 버렸잖아?"
"그래 미안하다. 그래 지금 무슨 생각했는데?"
"아빠 말하지 말래니까 또 말 시킨다.”


ⓒ 느릿느릿 박철
그렇게 옥신각신 한 다음에 은빈이를 기어코 깨워놓고 은빈이에게 묻습니다.
"은빈아! 너 그래 무슨 생각을 했는데, 아빠가 깨웠다고 신경질 부렸니?"
"그냥 생각했어."
"무슨 생각인데?"
"통닭 닭다리, 뜯어먹는 생각!"


아뿔싸! 닭다리가 날아갔으니 억울할 만도 합니다. 우리 집 은빈이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잘 때만 그런 게 아니라 차타고 갈 때도, 집에서 놀 때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란 것이 “어떻게 하면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들을까?”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하고 예쁜 딸이 될까?” 그런 생각이 아니라, 맨 날 먹는 생각, 어느 때는 통닭 먹는 생각, 어느 때는 돼지고기 구워먹는 생각, 어느 때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먹는 생각. 생각이란 게 전부 먹는 생각만 하니 얼굴은 동그래지고, 엉덩이는 불룩 나오고 배도 만만치 않습니다.

ⓒ 느릿느릿 박철
ⓒ 느릿느릿 박철
생각은 자유라지만 전부 먹는 것뿐이니? 그런데 우리 은빈이나 어른들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 은빈이는 먹는 생각만 하지만, 어른들은 돈을 먹을 생각만 합니다. 은빈이는 닭다리 한쪽이면 만족하지만, 어른들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돈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거 아닙니까?

인생을 바르게(正)

우리 집 은빈이가, 자기가 우리 집에서 귀염받는 공주라는 걸 알고 어리광을 부립니다. 엄마 아빠가 어떤 말을 듣기 좋아하는 줄, 요 앙큼한 것이 다 압니다. 그런데 자기가 기분 좋으면 애교라는 애교는 다 동원하여 여우짓을 하고, 엄마 아빠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또 어느 때에는 얼마나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는지 초등학교 학생 티가 나고 제법 의젓합니다.

ⓒ 느릿느릿 박철
ⓒ 느릿느릿 박철
“아빠. 저녁진지 잡수세요.”
“응. 먼저 먹어라. 아빠 이것 좀 마저 하고 먹을 게.”
“아빠, 어떻게 우리가 먼저 먹어요. 어른부터 잡수셔야죠.”

이쯤 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손하고 예의바른 은빈이가 깡짜를 부리며 아주 막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 아빠 싫어 싫어. 무슨 목사가 딸을 괴롭히냐? 아빠 미워 미워!”

어젯밤 이부자리에서 은빈이를 꼭 껴안고 물어보았습니다.
“은빈아! 네가 어떤 때는 엄마 아빠에게 존댓말을 쓰고, 또 어떤 때는 반말을 쓰고 도대체 왜 그러니?”
“응, 아빠. 학교 선생님이 엄마 아빠에게 꼭 존댓말 쓰라고 하신 게 생각날 때에는 존댓말 쓰고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지 않을 때에는 반말 쓰고 그러는 거야!”

ⓒ 느릿느릿 박철
“그럼 지금은 선생님 말씀이 생각 안 나는 중이냐?”
“지금은 아빠하고 단 둘이 이불 속에서 있는 시간이니까 반말해도 괜찮지?”

완전 여우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말씀이나 가르침이 생각나서 인생을 바르게(正)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은빈이처럼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아서, 아니 잊어버려서 아무렇게나 함부로 정함이 없이 살아가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는데, 설교에 밥을 말아 먹을 정도로, 설교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아직도 삶의 아무런 변함이 없다면,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사람에게 하듯 말고 하느님께 하듯 하라.”
성경 어디에 나오는 말씀인가요?

ⓒ 느릿느릿 박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