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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 줄넘기를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왕복 30리 길을 통학을 해서 걷는데는 자신 있었는데, 줄넘기는 낙제였습니다.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자주 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청백으로 갈라 줄넘기를 하면서 반환점 돌아오기 릴레이를 시켰습니다. 친구 녀석들은 내가 자기네 편이 안 되기를 바랐고, 따돌렸습니다. 제자리에서도 못 하는데 달리면서 줄넘기를 한다는 건 나로서는 무리였습니다.
내 뒤에서 아이들이 ‘바보’하는 소리가 다 들립니다. 가뜩이나 숫기 없는 나로서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체육시간이 제일 싫었습니다. 줄넘기를 못하는 것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나, 유년시절 줄넘기를 못하는 것 때문에 나는 점점 더 위축되어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줄넘기를 못했을까 이해가 잘 안되지만, 아마 요령이 없었을 테고, 못한다는 생각이 내 몸에 인식되어서 징크스처럼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리에서 줄넘기를 하면 네 번에서 꼭 걸렸습니다. 그것도 땅이 흔들릴 정도로 쾅쾅 뛰면서 줄넘기를 하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던지 아이들이 깔깔 웃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서 태권도를 배우면서 줄넘기를 잘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아저씨가 태권도 도장의 사범이셨는데, 줄넘기하는 요령을 자세히 가르쳐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철아, 너무 쾅쾅 뛰지 말고 사뿐사뿐 뛰어봐. 그리고 줄을 조금 빠른 속도로 해봐.”
그랬더니 신기하게 줄넘기가 잘 되는 것이었습니다. 훌라후프를 하나도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잘하게 된 것처럼, 줄넘기가 잘 되니 신기하고 재미가 났습니다. 태권도장에 도착하면 땀이 날 때까지 줄넘기를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큰 신작로를 건너면 중학교가 있었는데, 이따금 학교 운동장에 가서 나 혼자 반환 점 돌아오기 줄넘기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줄넘기를 못해서 망신당한 걸 다 보상받고 싶은 심정으로 줄넘기를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내게 줄넘기를 가르쳐주셨던 태권도 사범님은 내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입니다. 그 분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영영 줄넘기를 못했을지 모릅니다.
요즘 우리 동네 사람들이 6월 13일 ‘교동 면민의 날 체육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우리교회 운동장에 모여 연습을 합니다. 우리 동네가 제일 잘하는 종목이 ‘단체줄넘기’입니다. 줄을 326번을 넘어 강화군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아마 이 기록은 깰 수 없을 듯합니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 여자들이 단체 줄넘기를 합니다. 기춘이 엄마가 큰 목소리로 구령을 붙여줍니다. 그 목소리에 깊은 애정과 격려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줄 돌리기는 오봉섭, 한기붕씨가 맡았습니다.
줄을 돌리고 나서 오봉섭씨가 한마디합니다.
“매일 수백 번씩 돌리니까 팔이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내가 엄살 좀 부리지 말라고 하니까,
“그럼 목사님이 한번 돌려보세요. 그게 어디 쉬운가, 한번 해보세요” 라고 대답합니다.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물들고 교회 운동장에서 여자들이 하나 둘 구령 소리에 발을 맞춰 줄넘기를 하면 흙먼지가 납니다. 연습이지만 실전처럼 한다고 이를 악물고 줄을 넘습니다.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연습을 마치고 돼지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동네사람이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로 일체감을 갖습니다.
지난번‘감칠맛 나는 우리 동네 마을 방송’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톱으로 오른 것이 계기가 되어 MBC TV 화제집중에서 내일 우리 동네를 촬영 온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운동 연습하는 장면을, 특히 단체 줄넘기하는 모습을 꼭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줄넘기 못한다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지만, 줄넘기를 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포기하고 싶지만 이를 앙당물고 하나라도 더 하려고 줄을 넘습니다. 줄넘기 선수는 일곱 명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온 동네 사람들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 | | 줄넘기에서 인생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견하다. | | | |
| | ▲ 세나 아빠 팔 떨어지겠다. | |
줄넘기를 지겹게 못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체육시간만 되면 이 소년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아이들 앞에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소년이 줄넘기를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작은 동정심도 보이지 않고, 짓궂게 그 괴상한 줄넘기 동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또 반환점을 돌아오기라도 할라치면, 아이들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놀려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서로가 이 소년과 같은 편이 안 되려고 선생님에게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소년은 잔뜩 기가 죽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평소에 좋은 느낌을 갖고 있는 여학생이 그 우스꽝스런 동작을 보고 다른 애들 틈에 끼어 웃는 모습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그때 소년은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 세상에 어떤 하릴없는 놈이 줄넘기라는 걸 만들어서 이렇게 망신을 주는 거야?’
소년이 전혀 줄넘기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간신히 세 번 정도는 했습니다. 줄넘기를 할 때는 땅이 패이고, 키가 큰 사람이 작은 줄을 가지고 줄넘기를 하는 모습처럼 키를 잔뜩 수그려 좀 우스꽝스런 동작이었습니다. 연속동작이 안되었던 것이죠. 그 소년이 중학교 진학할 때까지도 줄넘기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풋 냄새나는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소년이 다 자라 어른이 되어 운동장에 다시 섰습니다. 줄넘기를 하기 위해 운동장에 선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줄넘기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의 협동줄넘기가 해마다 군 체육대회에서 일등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기에, 조금은 으쓱해져서 둥글게 원을 그리고 둘러싸인 사람들 틈에 끼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떨지 말고 천천히 해!” “좀 간격을 벌려.” “어이구, 그래 잘한다.”
줄넘기 선수들은 이를 앙당 물고 최선을 다해 줄넘기를 했습니다. 선수들과 응원 차 나온 동네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20대와 40대가 한데 어우러져 땀을 뻘뻘 흘리며, 흙먼지 바람을 날리며, 줄을 넘는 선수들을 보면서 결코 인생은 적당히 살 수 없는 것임을 느낍니다. 그렇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이 되겠습니까? 운동장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선수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마 또 다시 줄넘기에 재주가 없었던 소년에게 또 다시 기회가 온다면 소년은 누구보다 능숙한 줄넘기 솜씨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6년 전, 강화군 체육대회에 다녀와서 썼던 글입니다.) / 박철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