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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총경)이 대전고법 결심 재판부에 지난 4월 23일 제출한 법정최후 진술서와 대법원 판결문.
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총경)이 대전고법 결심 재판부에 지난 4월 23일 제출한 법정최후 진술서와 대법원 판결문.

다음은 박용운 전 옥천경찰서장(총경)이 대전고법 결심 재판부에 지난 4월 23일 제출한 법정최후 진술서의 요약한 것이다. 박씨의 최후진술서 원본은 A4용지 77매 분량이다. - 편집자 주


본 피고인은 검찰이 '조작한 범죄혐의'와 '짜맞추기 수사'로 인해 '오락실 비호세력의 원흉'이라는 누명을 쓰고 형사처벌을 받은 지 2년여만에 결심공판의 법정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본 피고인은 충북 옥천 지방에 경찰서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2001년 4월 7일 갑자기 집무실로 들이닥친 대전 검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끌려가서 '오락실 관련 뇌물수수 범죄자'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며 진실확인과 증거조사를 줄기차게 호소하였으나, 결정적 대질조사마저 거부당한 채 구속 기소되어 8개월 동안 참혹한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후 지난 2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언도 받고 즉시 상고하였고, 지난 2002년 5월 10일 대법원의 추상같은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 오늘에 이르게된 것입니다.

본 건은 이 나라 최고의 수사기관인 검찰이 고의적으로 사실을 조작하여 한 무고한 국민에게 죄를 덮어씌워 인권을 유린하고 형사처벌을 가한 희대의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행위로서, 이 사건의 진실과 정의가 신성한 재판부에 의해 파해쳐져 더 이상 본 피고인과 같은 억울한 희생자가 양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에서 본 건의 구체적인 진상을 법정최후진술에 담아보았습니다.

사건의 정황에 대해서

이번 사건에서 검찰 수사는 미리 희생양을 정해 놓은 후 직장 동료, 부하, 대상업소 업주들을 마구 불러 백지상태에서 '비리캐기'를 시도하는 '짜 맞추기 수사기법'을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즉 아무런 혐의점이나 단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하 또는 동료 십 수명, 오락실 업주들을 불러 "본 피고인에게 돈 준 것을 대라"며 윽박지르며 뇌물수수 여부를 캐내려고 한 것입니다.

검찰은 오락실 업주 수십 명에게 본 피고인과 관련된 유착관계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지만, 본 피고인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한 업주는 결국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회유, 협박, 강압으로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은 구모(부하직원)씨를 상대로 개인적 차용 변제금까지 "업주한테 받은 뇌물을 상납한 것"으로 꾸미고 집행유예 중이었던 이모(부하직원)씨를 상대로 "오락실 업주에게 뇌물을 받아 오락실 업무를 잘 봐달라며 상납했다"는 어불성설의 정황을 만들어 저에게 '뇌물수수자'라는 혐의를 덮어 씌웠던 것입니다.

본 피고인이 경험한 검찰 수사관행의 문제점에 대해서

본 피고인은 형사소송법 상 긴급체포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강제연행 당하고 검찰에 감금당했습니다.

수사기관에서 추상적으로 범죄의 혐의를 받고 있을 뿐인 구속 전의 피의자 단계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 받아야 하고, 변호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받아야할 시기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구속되기 전 3일 동안 변호사의 접견을 철저히 막았습니다. 이는 엄연한 헌법위반이고 형사소송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불법 수사였습니다.

피의자 신문조서도 검찰의 입맛에 맞게 허위로 작성되었습니다. 본 피고인은 검찰 수사단계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총 일곱 번 받았는데, 구속 전 두 번은 검찰주사로부터 검사의 입회없이 단독 조사를 받았고, 구속 후 네 번도 검찰 주사보로부터 검사 입회 없이 단독조사를 받았습니다.

또 사건 주임 검사로부터 한차례 조사 받을 때는 입회 서기의 참여 없이 단독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러함에도 신문조사는 항상 검사가 입회서기를 참여시키고 조서를 작성한 양 허위공문서로 수사서류를 꾸몄는데 이는 형사소송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 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러한 서류들의 증거능력은 마땅히 배척되어야 합니다. 또한 본 피고인에 대해 무고를 한 또 부하직원 이모씨와 대질 신문 내용을 담은 조서는 내용이 조작되어 대법원도 이를 허위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강압 수사입니다. 검찰은 조사과정에서 피고인들에게 잠을 재우지 않은 것은 물론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협박하고 때론 감언이설로 회유하여 피의자들이 거짓 자백을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거짓 자백을 한 피의자들도 대부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고 대법원도 "피의자들의 강압에 의한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 하였습니다.

구속수사를 남발하는 검찰의 수사관행도 억울한 피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2심 판결에서 신병이 풀린 후 1,2심 때 제시하지 못했던 결정적이고 다양한 증거 자료들을 수집,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구속이라는 상황 때문에 밝혀내지 못하다 새롭게 찾아낸 증거들은 대법원의 파기환송판결을 받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본 피고인의 경우에서 보듯이 피고인들에게 구속 수사를 남발하는 것은 '도망 또는 증거인멸'을 방지하기보다, 형법 정신상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진실하고 정당한 증거'의 보존과 발굴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재판부의 정확한 심리와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녹취록에 드러난 주임검사의 불법행위

한편 주임 검사가 피의자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회유, 협박하는 과정이 고스란이 담긴 녹취록은 그가 범죄사실을 조작하기 위해 위증을 교사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녹취록은 구모씨의 동생이 검사와 대면한 자리에서 녹음해 2심 재판부에 제출된 것으로 그 법정에서 주임검사는 이미 "이 녹취록을 사실로 인정한다"고 시인했습니다.

이 녹취록의 내용을 보면 주임 검사는 구씨를 회유하기 위해 "업주로부터 받은 것으로 되어있는 5000만원에 대해서는 특가법 상 뇌물수수죄로 하지 않고 법정형이 약한 알선수재로 엮어 형을 적게 할테니 나를 믿으라"며 설득하고 구씨가 추징금을 걱정하자 "추징금은 내가 배려하여 빼준다"고 말하는 등 신성한 재판부의 영역까지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녹취록에서 구씨가 업주로부터 뇌물을 받지 않았음을 분명히 인정하였고 구씨가 본 피고인에게 빌린 돈을 갚았을 뿐 뇌물을 주고받지 않았음도 분명히 밝혔음에도, 구씨에 대해서는 '뇌물 공여죄'로 축소조작하고 본 피고인에 대해서는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로 조작하여 처벌하였음을 자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 권력의 맛에 빠진 검찰

오늘날 우리나라 검찰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그들이 가진 절대권력과 그 무소불위의 권력에 도취한 일부 검사들이 부른 필연적인 참화입니다. 특히 본 건에서와 같이 위증을 교사하고 범죄를 은폐할 뿐만 아니라 협박과 거래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기소권은 피의자들에겐 공포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현행 법제 하에서 견제 수단은 미미할 뿐이어서 이를 악용해서 생기는 피해는 고스란히 저와 같은 무고한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비록 본 피고인은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였지만 이는 단순히 개인의 불행으로 돌려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잘못된 제도를 고치는 계기로 삼아 또 다른 불행을 막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재판장님과 재판부가 충분한 심리와 증거조사를 기하여 주신데 대하여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최후진술을 마감합니다.

피고인 박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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