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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은사터에 서다
ⓒ 권기봉
서울로 떠나기 전에 씁니다.

제가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습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오면서 잠깐 거쳐 간 곳이었지요. 물론 그땐 '이런 곳에 뭐 볼 게 있나?'하고 의아해 했답니다. 아직은 어린 나이, 좀더 시끌벅적하고 재미난 곳을 찾고 있었던 게지요.

대구에 살던 당신은 이미 고등학교 때도 자주 이곳을 찾았다지요? 자율학습을 하다 말고 가슴이 답답할 때면 찾았다지요? 그리고는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러나 당신은 이번 여행에 동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출발하기 며칠 전에야 '통보'를 받고 못내 아쉬웠습니다.

▲ 금당의 흔적
ⓒ 권기봉


▲ 감은사 탑 중 서탑
ⓒ 권기봉
"이런 마음 상태로는 그곳에 갈 수 없어요."

당신의 말은 그러했습니다. 항상 부푼 기대와 설렘을 안고 찾았던 곳, 가녀리지만 의미 있는 의욕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을 지금처럼 복잡한 심사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고. 아름다운 추억만을 간직한 곳에 이런 슬픔을 안고 갈 수는 없다고.

어제는 이른 아침부터 남산의 불적(佛蹟)을 돌아보고 한 시인이 운영하는 폐교에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밤새 술자리가 이어진 것은 물론이지만 항시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더군요.

미지에의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찬 기운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제 마음 한구석은 시렸습니다. 제 마음은 답답했습니다. 마치 덕동호 물 아래 잠겨버린 고선사(高仙寺)의 애절함처럼.

오늘, 감은사를 찾았습니다.

오늘 감은사(感恩寺)터를 찾았습니다. 바다가 그리워 가슴이 너무 답답해 대왕암을 먼저 보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당신과 함께 오지 못해 마음 한구석 여전히 허전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나마 이곳을 찾았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그 말 때문에 더 오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씻김굿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 권기봉
폐사지가 그러하듯 이곳 역시 쓸쓸하기만 합니다. 제 마음이 쓸쓸해서 일까요? 이 낯설음은 무엇입니까?

멀리 동해의 너른 바다가 눈에 들어오지만 그래서 더 허무한 이 느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당신의 경험과는 달리 감은사터는 제게 허무함과 사무친 감정 따위로 기억될 것만 같습니다.

벌써 나뭇잎이 무성하고 부끄러운지 붉은 흙은 짙은 녹색의 잔디를 덮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은사는 하객들이 다 돌아간 잔치집 같기만 합니다. 관광객이 아무리 붐벼도 이 느낌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때는 온갖 희망과 기쁨, 환희만이 이곳에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쓸쓸한 유해만이 있을 뿐입니다. 거대한 두 삼층석탑과 애잔함만을 더해주는 금당터의 주춧돌.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석재들.

인간의 고운 심성이 서려 있는 절이라지요

오늘 답답한 마음은 잠시 잊고 싶습니다. 비록 잠시일지라도 이곳 감은사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고 싶습니다. 물론 얼마 안 가 당신 생각을 하겠지만 말이에요.

당신도 알지 모르지만 감은사의 원래 이름은 진국사(鎭國寺)였다고 합니다. 미술사학자 황수영의 이야기로는 진국(鎭國)은 '진호국가(鎭護國家)'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문무왕이 이 사찰 창건을 지시한 것도 왜병을 진압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그 뜻에 잘 맞는 이름일지도 모르겠군요.

실제로 <삼국유사>에 인용된 감은사 <사중기(寺中記)>에 '욕진왜병(欲鎭倭兵)', 결국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니 말이에요.

감은사는 저 같이 가슴이 피폐한 이나 찾는 황량한 폐사지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한때는 인간의 고운 심성과 아름다운 전설을 전해주던 절이라고 합니다.

문무왕이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자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역사(役事)를 끝냈는데, 신라의 왕들은 이 절을 찾아 자신의 조상에 대한 예를 올렸다지요. 이곳에서 선왕들의 유해를 흩뿌린 바다가 보였으니 그랬을 테지요. 실제로 혜공왕 12년(776)과 경문왕 4년(867) 춘이월(春二月)의 <삼국사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는군요.

"왕이 감은사에 행행하여 바다를 바라보았다."

<삼국유사> 권(卷) 제2 '만파식적(萬波息笛)'조의 '사중기'에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려 하여 이 절을 처음 지었으나, 역사를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자 바다의 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개요 2년(682)에 역사를 마쳤는데, 금당의 섬돌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 하나를 뚫어 두었다. 이것은 용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 주춧돌만이 남아.
ⓒ 권기봉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은사에 집중하려고만 하면 자꾸만 쓸데없는 기억들이 떠올라 정취에 물드는 것을 방해하는군요. 슬픈 것들이랑 잠시 접어두고 싶은데 말이지요.

신라 초기 특징을 나타낸다는 두 탑은 3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서 있습니다. 마치 시골 아저씨와 아낙네처럼 서로 관심이 없는 듯 등 돌리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힐끗 한번씩 쳐다보는 눈치입니다. 그 둘은 서로를 싫어하지 않는 듯합니다. 아니 좋아하고 또 그리워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더 다가서지는 않지요.

이 육중한 탑은 지금으로부터 1300백여 년이나 더 전인 682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 긴 세월동안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마주보고 있어야만 했다니.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서로 만져주고 보듬어 주지도 못한 채 서 있어야만 했다니. 그 기다림과 인내, 혹은 체념이 대단할 뿐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것이 더 현명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조금씩 들기 시작합니다.

당신과 저를 생각하니 더욱 그러합니다. 당신을 알게 된 것은 한 달 하고도 보름 전.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이런 저런 일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감은사터의 두 탑처럼 사람 사이에도 어떤 인위적인 접근이나 조바심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것은 우리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 유유히 이 관계를 내맡겨 함께 흘러야 했거늘. 제 욕심이 지나쳤던 게지요. 인간의 의지로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으니. 그런 건방진 생각을 했던 때가 있습니다. 유랑하는 작가 윤대녕이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에서 이런 말을 했다지요.

"모르시는군요. 식물도 저마다 꿈을 꿉니다. 음악을 들을 줄도 압니다. 그러니 꽃이 피나 안 피나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관계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없었거늘, 저는 그때 몰랐습니다. 현재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거늘.

'Fly Me To The Moon'을 듣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삶의 유의미와 무의미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지요. 그저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탑 그리고 질서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흩어져 있는 돌무더기. 아직 철없는 저이지만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신이 무얼 이야기하려 했는지를.

▲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태극 문양.
ⓒ 권기봉
단체 관광을 왔는지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전세 버스 두 대분의 사람들이 감은사터를 메우기 시작합니다. 함께 온 일행도 어서 내려오라고 저 아래 주차장에서 손을 흔듭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인가 봅니다.

당분간 감은사터에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신과의 소중했던 만남과 오늘의 이 기억이 한낱 치기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기억될 날까지 다시 감은사터를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서울 자취방에 닿는 대로 토니 베넷이 부르는 'Fly Me To The Moon'을 들으며 캔 맥주를 마시고 싶습니다. 아, 마지막 편지도 부쳐야겠군요.

▲ 감은사터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해방 전 일본인 후지시마(藤島亥治郞)에 의해 특수성이 지적된 후 1959년 1차 발굴과 1979~1980년 2차 발굴에서 드러난 금당 섬돌 아래 구멍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 권기봉

▲ 1959년 감은사 발굴조사 당시 서탑에서 나온 사리장치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보물 제366호.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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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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