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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가꾼 지 2년째에 접어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먼저 베란다로 나가 꽃들에게 아침인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 2003년 6월 베란다 정원
ⓒ 장영미
작년에 이곳으로 이사를 한 후 몇 가지 꽃모종을 사다가 작은 화분에 심었었다. 흙에 대한 기초지식도 가지지 못한 도시 촌놈이었던 나는, 작은 화분을 가꾸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겁고, 어렵게 느껴졌었다. 첫해엔 모종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틔워 줄 것인지…. 마음만 졸일 뿐이었다.

일본의 마을들을 돌아 다녀보면, 꽃을 가꾸는 집들을 많이 보게된다. 마당이 있는 집은 말할 것도 없고, 마당이 없는 집들도 현관 앞이나 담 옆을 예쁜 꽃으로 장식해 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3월에 접어들면 팬지, 비올라, 튜울립 같은 꽃들로 온 동네가 꽃 잔치라도 벌인 듯 화사하다.  

조금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배색, 조화, 강약, 고저, 화초의 성질 등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고, 보조 도구들을 이용하여 한껏 분위기를 살린 멋진 정원을 가꾼다. 그리고 계절별로 화단을 바꾸어 1년 내내 예쁜 꽃을 즐긴다. 이런 분위기에 쓰레기가 낄 자리는 없다.

화초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한국사람은 아름다운 화초를 자기 집의 울타리 안에 두고 즐기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일본사람은 남에게 보여주는 쪽에 무게를 둔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요즘 짓고 있는 일본의 주택들을 보면 엑스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2003년 6월
ⓒ 장영미
나는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남의 집 정원을 열심히 살폈다. 어떤 꽃들을 어떻게 어울리게 심었는지, 어떤 꽃이 예쁘게 잘 자라는지 유심히 살피면서 정원 주인의 센스에 점수를 매기곤했다. 그러면서 나도 예쁜 정원을 꾸미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나로 말하자면,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인 사람이다. 그다지 부지런한 타입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에, 화초나 애완동물처럼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아예 기를 생각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다. 적어도 아이를 낳기 전까진 그랬다.

그런데 살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나도 취미가 필요하게 되었고,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내가 귀찮게만 여겼던 그런 일들이, 점점 아이를 위해 해주고 싶은 일들로 바뀌어갔다.

지금은 나를 위한 것은 물론이고, 아이를 위해 꽃도 가꾸고, 금붕어도 기른다. 또 아이를 위해, 우리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도 기른다.

유치원의 출석노트를 넣어 다니는 가방도 만들었고, 멜로디언을 넣고 다니는 가방도 만들었다. 아이를 위해 쿠키를 굽고, 빵을 굽고, 피자를 굽고, 케이크를 굽는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영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다가도 아이가 “엄마가 만들어 주세요”하면 마법에라도 걸린 듯 뚝딱뚝딱 해낸다. 내가 아이를 기르기도 하지만 아이가 나를 자라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

아직 이삿짐이 작은 방 가득 쌓여있던 때였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일의 순서를 뒤바꿔서라도 하고야 마는 성격이란 걸 그때야 알았다.) 당장에 내가 즐겨 찾는 ‘만물도매상’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집에 관련된 것, 생활에 필요한 것이라면 없는 것이 없다할 정도로 모든 것이 있었다. (거기에 있는 재료들만을 가지고도 DIY로 집 한 채는 거뜬히 지을 수 있을 거다). 나같이 자동차도 없고, 어느 곳에 가야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을 지 전혀 알 수 없는 이방인에게 그곳은 ‘마법사의 집’과도 같았다.

급한대로 맘에 드는 꽃모종 몇 그루와 화분, 배양토, 화분 밑에 까는 돌(배수용), 부엽토, 추비(追肥)를 사왔다. 그리고 ‘초보자를 위한 정원 가꾸기’라는 책도 한 권 샀다.

▲ 2002년 여름 베란다 정원
ⓒ 장영미
첫해인 작년 봄에는 분홍, 하양, 보라의 페츄니아와 하양, 진분홍의 일일초, 이소토마, 담쟁이, 그 밖의 다른 몇 그루를 샀다. 일년초인지, 다년초인지, 심지어 어느 것은 이름조차도 모르는 채로 좀 싸고 (처음이니 잘 못 키워서 실패하더라도 아깝지 않게) 색깔이 맘에 드는 모종을 골랐다. 머릿속에는 다른 집 정원처럼, 그리고 책에서 본 것처럼 근사한 나의 정원을 꿈꾸면서… .

4층 짜리 맨션의 4층에 사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멋진 정원을 꾸밀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베란다를 이용하여 화분을 조금 가꾸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한국의 아파트들은 베란다에도 유리창을 달고, 어떤 집은 턱을 높여 거실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본의 베란다는 그저 베란다로 사용한다.

이불을 난간에 널어 말리기도 하고, 빨래를 널어 말리는 공간이자, 비상시 대피하는 공간이다. 옆집과의 사이에 있는 칸막이는 비상시 부수고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게 되어있고, 요즘 지은 맨션 중엔 아랫 층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베란다에 구멍을 뚫고 사다리를 설치해 놓은 것도 있다.

그 베란다에 화분 몇 개를 만들어 꽃을 심었다. 그다지 보잘 것은 없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꽃들이 잘 자라주어 봄에 심은 꽃을 가을까지 즐길 수 있었다. 특히 페츄니아는 10월말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웠다. 꽃을 가꾸는 일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도 흡사했다. 매일 물을 주고 돌봐줘야 하는 것이 그랬고, 기대이상으로 예쁜 꽃을 피워 기쁨을 주는 것도 그랬고, 생명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는 것도 그랬다.

▲ 2002년 여름 페츄니아
ⓒ 장영미
가을까지 기쁨을 얻었던 화분들이었으나 지난겨울엔 거의 한국에 가있었기 때문에 정리도 못한 채로 해를 넘겼다. 1월이 되어서야 시들어빠진 화분을 정리했다. 담쟁이와 몇몇 관엽식물을 빼곤 모두 일년초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 1년만에 정 들여 키운 녀석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마음도 아팠다. 때문에 작년의 화분을 정리하면서 다시는 꽃을 심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관엽 식물만 키우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생명의 힘은 놀랍기만 했다. 올 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일년초 페츄니아의 마른 가지에서 파란 싹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년초인 줄 알았던 이소토마는 다년초였고, 역시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실내에 잘 두어 이제 막 꽃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하던 화분 하나는, 2월의 따뜻한 햇살에 속아 밖에 내놓았다가 얼려 죽였었다. 어찌나 속상하던지…. 마치 결혼식을 앞둔 자식을 잃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도 4월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살아 돌아왔다.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 온 것이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고맙다, 고마워”를 연발했었다.

다시는 꽃을 키우지 않겠다던 나의 다짐은 봄의 따뜻한 햇살 아래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새롭게 살아 돌아오는 녀석들 앞에서 다짐을 지킬 힘이 사라져 버렸다. 2월부터 벌써 동네의 다른 집 정원은 봄꽃들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급기야 4월엔 봄꽃들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꽃모종과 배양토를 한아름 사 가지고 왔다. 딸아이를 위해 방울토마토의 모종도 세 그루나 샀다.

▲ 2003년 6월 방울 토마토
ⓒ 장영미
그리고 작년의 경험을 살려 올해엔 여러 종류를 어울리게 한 화분에 심는 모듬 심기에도 도전을 하였다. 일년초보다 다년초를 중심으로 골랐고, 덩굴성의 클레마티스도 두 그루, 나팔꽃 한 그루도 심었다. 이 녀석들 덕에 앞집의 시선도 차단하고, 여름의 따가운 햇살도 가릴 수 있을 것 같다.

▲ 2003년 6월 모듬심기
ⓒ 장영미
이곳은 벌써 장마가 시작되었다. 이 지리한 장마와, 8월의 뜨거운 햇볕과 이어 올 태풍을 다 이겨내고 잘 자라 주어야 하는데…. 8월에 한국에 다니러가야 하는 게 영 맘에 걸린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이 녀석들이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한국에 간다는 즐거운 마음이 반으로 줄어든다. ‘대책을 강구해야지…’

별로 대단치는 않지만, 나는 베란다 정원을 통해 생명의 지혜를 배운다. 그리고 인생의 지혜를 얻는다.

“꽃들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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