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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말고 나한테 가장 고마운 물건이 뭔가 오늘 아침 녹차 한잔을 하면서 묵상했습니다. 참 많더군요. 옷, 구두, 자동차, 컴퓨터, 카메라 등등…. 그 중에 제일 소중한 물건이 무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뜻 생각나는 게 '안경'이었습니다. 나는 안경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먼데 있는 사물은 고사하고 눈앞에 있는 것도 잘 못 봅니다. 시력이 양쪽 다 마이너스입니다. 자다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찾는 게 안경인데, 맨날 제대로 찾지 못해 아내에게 성화를 부립니다. 안경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세수하고 나와서, 낮잠 자고 일어나서….
안경은 참 고마운 물건입니다. 안경 없이는 나는 자동차 운전도 못할 것이고, 컴퓨터도 못하고 아무 데도 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눈 나쁜 게 집안 내력인 줄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 식구는 어머니와 아내 아들 둘에 딸 하나 여섯인데, 그 중에 딸 은빈이만 빼고는 다 안경잡이입니다. 두 아들 놈도 눈이 나빠 안경을 썼는데, 걸핏하면 볼 차다가 안경다리를 분질러 안경 값이 만만치 않게 들어갑니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력이 대단히 좋았습니다. 그래서 안경 쓴 사람이 근사해 보이고, 나도 안경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눈이 좋았었는데, 신학교 다니면서 갑자기 시력이 나빠졌습니다.
20년 넘게 열대여섯 개쯤의 안경이 나를 거쳐 간 것 같습니다. 청년시절에는 뿔테 안경을 많이 사용했고, 요즘은 점잖게 거의 금테 안경을 씁니다. 내가 땀을 많이 흘리는 타입이라 안경테가 부식하여, 칠이 벗겨지고 살갗을 상하게 하여 일 년에 하나는 바꾸어야 합니다.
안경을 잃어버려 크게 낭패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번은 작년 여름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 가평 계곡으로 물놀이를 갔었는데, 우리 집 아딧줄이 나보고 한다는 말이 "아빠, 다이빙할 수 있어요?"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 녀석의 당돌한 질문은, 내가 다이빙을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묻는 듯했습니다. 기분이 상할 것까지는 없지만, 아들 녀석 앞에 보란 듯이 멋지게 다이빙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야 , 너 아빠가 다이빙 못할 줄 알지? 자 아빠가 다이빙하는 걸 봐라. 다이빙이라는 게 바로 이렇게 하는 거로구나 잘 보란 말이다."
나는 서너 발자국 뒤에서 달려오며 점프를 해서, 개구리가 뒷다리를 쭈욱 펴고 물에 뛰어드는 것처럼 멋지게 다이빙을 했습니다. 물 속에 잠수를 했다 이내 물 위로 고개를 쳐들고 아이들 앞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잘 봤지? 아빠 다이빙 근사하지?"
그 말을 하고 났는데, 눈앞이 침침한 게 잘 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눈을 만져보니, 안경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다이빙 하다 물 속에 떨어뜨린 것입니다. 다시 물 속으로 잠수를 해서 안경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포함해서 계곡에 놀러온 다른 대학생들까지 안경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물 밖으로 나와 민박집까지 가려면, 근 한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야 합니다. 안경 없이 운전을 할 수 없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운전면허증은 있었어도, 그때까지 장롱면허라 구불구불한 계곡 골짜기를 운전해서 민박집까지 차를 몰고 갈 실력이 전혀 안되었습니다.
물 속에서 안경 찾기를 포기하고 하는 수 없이 일단 물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우리 집 큰아들 아딧줄이 큰 소리로 "아빠! 안경 찾았어요!" 하면서 안경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다이빙 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발견해낸 것입니다. 보상금 일 만원이 날아갔습니다. 십년감수했지요.
나는 20년 넘게 안경신세를 지고 살아왔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 이마를 크게 다쳤을 때 운 좋게 안경이 내 눈을 보호해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열대여섯 개의 안경으로부터 신세를 졌고 그 안경을 만든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다. 참 고마운 안경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노안이 왔는지, 가까이 있는 글씨도 잘 안보여 안경을 벗고 보면 잘 보입니다. 그래서 신문이나 성경을 읽을 때는 안경을 벗고 읽습니다. 어느덧 나도 이제 중늙은이가 되었습니다.
내가 나이가 먹는 줄도 모르고 지내다 어느새 50줄에 들었고, 이제 돋보기로 바꿔 써야 될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가는 세월을 붙잡아 둘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 따라 늙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