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엿장수 가위
엿장수 가위 ⓒ 옛날 사람들
요즘은 가는 데마다 먹을거리가 지천이고, 아이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마을은 강원도 화천 ‘논미리’라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화천 읍내에 십여 리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논도 거의 없고 밭뙈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네모반듯한 것은 없고 화전을 일구어 밭을 만들어서 생김새도 제 각각 이었습니다.

동네 한군데로 꽤 넓은 개울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먹을거리도 신통치 않고, 군것질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늘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났고, 먹을 것이 생기면 허겁지겁 먹어치웠기 때문에 나의 어머니는 “네 뱃속에는 거지가 들어있는 모양이다” 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정도 엿장수가 우리 마을에 왔는데, 엿장수의 가위소리는 애들 마음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철커덕 척척 철커덕 척척척척…”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 치는 소리에 동네 조무래기들이 다 나와 뒤를 따릅니다. 그러면 엿장수 아저씨는 더 흥이 나서 가위를 칩니다. 엿이 먹고 싶어서 입에서는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무얼 가지고 엿을 바꿔먹나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엿장수 아저씨가 엿 장단으로 분위기를 띄운 다음 소리를 지릅니다.

“엿이 왔어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이 왔어요. 헌 고무신이나 빈 병삽니다. 고철도 삽니다.”

엿장수 아저씨가 구수한 목소리로 흥을 돋우는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별의 별 것을 다 갖고 나옵니다. 놋그릇 깨진 것, 요강, 뚫어져서 못 쓰게 된 양은 냄비, 헌 고무신, 막 소주 됫병. 머리카락, 산에서 주운 탄피….

그러면 엿장수 아저씨는 끌날 같이 생긴 도구를 대고 가위로 톡톡 치면서 엿판에서 엿을 끊어냅니다. 사람들이 ‘이게 뭐냐’고 더 달라고 하면 ‘에라 인심이다’ 하고 조금 더 떼 줍니다. 완전 엿장수 마음대로 입니다.

나는 옆에서 연신 침을 삼킵니다. 한번은 너무나 엿이 먹고 싶어서 마루 밑에 들어가 못 통으로 쓰던 네모난 탄피 통을 꺼내서, 못을 다 쏟고 탄피 통을 주고 엿과 바꿨습니다. 엿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아시면 틀림없이 혼날 것이라는 생각에 엿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때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습니다. 누나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 눈치이고, 동생들은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고 나만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모르고 지나갔지만, 며칠 지나 어머니께 들켜 매를 맞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엿장수
엿장수 ⓒ 사라지는 것을 찾아
성서 잠언에서는 “진리를 사거나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사거나 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성서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귀한 장자의 명분을 바꾸었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정말 자기에게 소중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별로 소용이 없는 것과 바꾸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양심을 헌신짝처럼 팔아버립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젊은이들이 인간됨됨이나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직업이나 한달 수입액을 보고 배우자를 결정합니다.

대량 생산과 이윤 추구가 목표가 되어 온갖 해로운 물건이나 음식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과 자연은 병들어 신음해 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참된 가치가 왜곡되어 적당하게 통용(通用)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그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앞으로 인류 사회는 정신문명이 발달한 나라가 세계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참된 가치를 세상의 천한 것들과 맞바꾸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엿이 내 입에 들어가 스르르 녹는 그 달콤한 맛 때문에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맞바꾼 적은 없는지, 아니 지금 바꾸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