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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각장애인 참가자가 "장애인정보검색대회 본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행중인 지금 난 한가롭게 카페에 있는 원인은?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할 컴퓨터들의 셋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자신의 심정을 담은 메일을 친구에게 보내고 있다.
ⓒ 이철용
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주관한 '2003 전국 장애인 정보검색대회'가 장애인들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미숙한 대회 운영으로 참가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25일 오전 10시 30분 김포공항 내 컨벤션센터에서 치러진 장애인정보검색대회는 세계 최강의 IT국가를 자랑하며 국가의 정보화를 이끌어가는 국가기관인 정보통신부가 주관한 행사여서 많은 장애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지역 예선을 통과한 118명(시각 26, 청각 33, 지체 59)의 장애인들이 모여 그간 갈고 닦은 인터넷 실력을 발휘하는 날이었다.

참가자들은 전국의 85개 기관과 시설에서 1년간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지원으로 컴퓨터 교육을 받아 사전 예선을 통과한 장애인들이다.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주최하는 장애인정보검색대회인 만큼 이번 대회에는 정보통신부 변재일 차관,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손연기 원장 등 많은 내빈들이 참가했다.

대회에 앞서 개회식에서 정보통신부 변재일 차관은 치사를 통해 "한국은 IT강국으로 세계 최강을 말하고 있으며 정부는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정보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대안으로 시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잇는 인터넷이 장애인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앞으로 정부는 교육, 컨텐츠 등의 계발에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했다.

한국정보문화진흥 손연기 원장도 개회사를 통해 "디지털 시대가 새로운 지구촌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가 장애인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디지털 앞에서는 경제, 신체적 장애가 따로 없고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다.

이렇듯 정보격차 해소 차원에서 무엇보다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을 더욱 확산시키자는 차원에서 마련된 이번 대회는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하며 이러한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운영체제 달라 혼선

특히 시각장애인 부문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오전 10시 30분 정보검색대회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시각장애인들은 대회를 시작할 수 없었다. 그것은 사전에 신청한 컴퓨터 운영체제(OS)와 현장에 설치된 컴퓨터의 운영체제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 대회 진행중에 시각장애인 부문에선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있다.
ⓒ 이철용
이른 아침 행사장에 도착했던 한 시각장애인(약시)은 "지정좌석에 앉아 컴퓨터를 보는 순간 하늘이 노랗고 정신이 없었다"며 "평소에 사용하던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우즈98'이 아닌 '윈도우즈XP'가 깔려 있어서 전혀 손을 댈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최신 운영체제인 '윈도우즈XP'보다 아직도 '윈도우즈98'을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운영체제인 '윈도우즈'가 개발되면서 '윈도우즈XP'에서는 이전 버전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컴퓨터 전문가들도 "컴퓨터를 익숙하게 다루는 사람들조차 처음 '윈도우즈XP'를 대하면 혼란스럽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컴퓨터교육을 1년 정도 받고 정보검색대회에 참가한 장애인들에게 운영체제가 다른 문제는 치명적인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 설치된 156대의 컴퓨터의 운영체제는 대부분 '윈도우즈XP'가 설치되어 있었고 시각장애인 참가석 3대에만 '윈도우즈98'이 설치되어 있었다.

주최측에서는 참가자들의 신청서를 받으며 이런 문제를 감안해서인지 사용 운영체제(OS)를 표기하도록 했고 모든 참가자들은 자신의 사용 운영체제를 제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들은 "신청한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장애인들을 인솔하고 참가한 지도교사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사전에 주최측에 여러 차례 건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영이 되질 않았고 사전 준비모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 뒤늦게 대회에 임한 시각장애인들
ⓒ 이철용

시각장애인용 음성지원 프로그램 '무용지물'

이러한 컴퓨터 운영체제의 문제는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구동하는 데도 장애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컴퓨터를 사용해 검색대회를 치르려고 했지만 시각장애인용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사전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긴급히 조달한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설치했지만 '윈도우즈XP'와의 호환성에 문제가 발생해 프로그램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행사 내내 곳곳에서 벌어졌다. 급기야 설치업체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의 컴퓨터에 다시 '윈도우즈98'을 설치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시각장애인들이 검색대회를 시작한 것은 오전 11시 40분. 이미 지체·청각 장애인들이 대회를 끝낼 무렵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운영체제만이 아니었다. 한 참가자는 "평소에 사용하던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없어서 주최측에서 설치해준 프로그램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익숙하질 않아서 제대로 대회를 치를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이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의 얼굴에는 불안이 떠나질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11시 40분 검색대회를 시작했으나 12시부터 같은 자리에서 청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은 행사장에서 주최측이 마련한 도시락을 먹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런 혼란 속에서 시각장애인들은 1시간동안 경시대회를 치르고 12시 40분부터 도시락을 먹어야만 했다.

지도교사들 주최측에 강한 항의

온 정신을 집중해서 대회에 임해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주최측의 무성의한 준비에 대해 장애인들을 인솔하고 대회에 참가한 지도교사들의 강한 항의가 이어졌다.

지도교사들은 이러한 문제가 충분히 예견되었고 다른 대회에서도 발생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모임이나 조율을 통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최측의 오만함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전국에서 참가한 관계로 오전에 치러지는 행사에 사전에 올라와 1박을 하고 대회에 참가한 장애인도 많았다. 이런 장애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주최측의 무성의는 참가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설치업체 관계자는 전날 모든 컴퓨터를 설치하고 주최측 관계자와 테스트를 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의 정보검색대회를 치러본 경험이 없다는 업체 측은 운영체제 설치도 3대만 '윈도우즈98'로 해달라고 통보를 해서 그렇게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주최측은 대회 준비와 관련해서 몇몇 대행회사에게 행사 진행을 맡겨놓고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것으로 보여진다. 무엇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장애인정보검색대회를 제대로 관리감독 하지 않은 결과는 새로운 가능성의 시험대인 장애인에게 오히려 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허점투성이 "정보검색대회"

주최측은 시각장애인 부스에서 프로그램의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했음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전 10시 30분 개회식에 이어 50분부터 정보검색대회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같은 자리에서 시각장애인들은 컴퓨터 문제로 불안에 떨고 있는데 그들의 마음 상태와는 상관없이 청각, 지체 장애인들의 검색대회는 강행되었다.

이러한 허점은 행사 내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행사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설치한 수백개의 풍선은 장애인들이 단상을 제대로 보는데 지장을 주었고 특히 청각장애인은 수화통역을 볼 수가 없었다. 전체 진행을 돕기 위한 대형화면도 왼쪽 측면에 놓여 참가자들이 보기 어려웠고, 거기에 참가자들 앞에 풍선은 시야를 가렸다. 한마디로 무용지물이었다.

▲ 행사의 흥을 내기 위해 설치된 풍선은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다.
ⓒ 이철용
청각장애인을 인솔한 지도교사들은 출제된 문제가 청각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문장 해독력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 같은 문제도 청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어휘를 사용해 출제되어야 하는데, 출제된 문제에는 이러한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 수화통역사들이 수화통역을 해주려고 했지만 주최측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 지도교사는 다른 장애와는 달리 시각장애인의 경우 전맹(전혀 보이지 않음)과 약시 등 다양한 등급이 있는데 이 사람들을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게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며 전맹에게는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대회에서 시각과 청각장애인에게는 가산점이 없었고 지체장애인은 등급별 가산점이 주어졌다. 시각과 청각장애인은 동점이 나왔을 경우에만 중증자, 연장자 우선으로 시상을 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본선 문제뿐만 아니라 예선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번 대회는 인터넷을 통해서 예선을 치르고 그곳에서 선발된 150명이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선을 인터넷으로 치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대리로 응시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어서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주최측, "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문제 발생했다"

25일 행사를 직접 진행한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정보문화사업부 김봉섭 대리는 이날 시각장애인의 정보검색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처음으로 치른 행사이고 본인들이 비장애인이라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문제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컴퓨터 운영체제(OS)의 문제는 깊이 고려하지 못했고 시각장애인들이 컴퓨터 사용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스크린 리더기(음성지원 프로그램)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시중에 사용되는 대표적 스크린 리더기 3가지 중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확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2가지였고 참가단체 중 한 곳이 나머지 1개의 프로그램이 없으면 대회에 응할 수 없다고 해서 문제가 커졌다고 했다.

이러한 답변은 시각장애인 중에 전맹이 아닌 약시들의 경우 '스크린 리더기'보다 화면을 보고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것이었다. 약시의 경우 운영체제(OS)의 혼동은 절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고민 없이 장애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윈도우즈98'이 아닌 '윈도우즈XP'를 일괄적으로 설치했다.

3개 장애 유형 중 지체와 청각장애인들의 대회를 먼저 진행한 부분에 대해서 김 대리는 심사위원장이 "1개 이상의 스크린 리더기를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라고 해서 전체 진행 일정을 감안해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보통신부 담당자인 정보화기획실 정보화기반과 윤양수 사무관은 25일 정보화 검색대회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다는 것에 대하여 사후보고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윤 사무관은 "대회를 처음 개최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은데 다음 대회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정보통신부에서 산하기관인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을 통해 진행했고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단국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에 행사 전반을 일임해 진행했다고 한국정보문화진흥원 박종배 부장은 밝혔다.

이날 경시대회는 답안을 디스켓에 담아 제출하고 바로 심사위원들이 현장에서 채점을 해 시상했다. 각 부문 1등은 정보통신부장관상과 300만원의 상금, 2등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상과 200만원의 상금, 3등은 한국인터넷정보센터원장상 등 후원기관장상과 상금 100만원의 상금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2부 휠체어 에어로빅 등 축하공연

모든 대회를 마친 오후 1시 30분부터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첫 번째 순서로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씨는 '그 얼굴의 햇살', '줄리아', '어린시절' 등의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었고 노래 중간 중간에 자신의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두 번째 순서로 중앙대학교 수화동아리 '손짓사랑'은 발랄하고 다양한 수화노래들을 펼쳤고 마지막으로 용인대 특수체육학과의 휠체어 에어로빅팀 8명은 박진감 넘치는 휠체어 에어로빅을 선보였다.

서창열, 장유선, 한상용 씨 부문별 금상

축하공연에 이어 오후 2시 35분 시상식이 이어졌다. 시상식에서 김송석(단국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 특별연구원) 심사위원장은 "이번 대회에 문제점들이 많이 발생했지만 다음부터는 지도교사들의 의사가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날 지체장애인 부문 금상을 수상한 한상용(47세)씨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는데 감사하고 대회를 치르며 중간에 컴퓨터가 다운이 돼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생각지 않게 금상을 받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했다. 한씨는 컴퓨터를 사용한 지 5년 정도 되었고 정보검색대회는 처음 참가한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부문 금상 수상자인 서창열(31세)씨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주어진 것 같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 다른 시각장애인과는 달리 처음부터 '윈도우즈98'이 설치되어 있어 컴퓨터와 관련한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청각장애인 부문 금상 수상자인 장유선(29세)씨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금상을 타서 기쁘고 두 번째 문제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잘 풀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장씨는 정보검색대회를 3번째 참가한다고 했다.

준비소홀로 인한 "장애인의 좌절",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번 행사는 정보통신부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을 통해 정보화 시대에서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들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전국의 85개 기관을 선정해 장애인에게 컴퓨터 무료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인터넷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장애인에 대한 접근이 피상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나타났다.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장애인의 기대와는 달리 정통부를 비롯한 행사 주최측은 이번 대회에 장애인의 입장에서 고민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애인의 고통과 아픔,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없이 일방적인 행사진행과 준비는 장애인에게 새로운 좌절을 맛보게 해주었다.

장애인을 위한 정보화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장애인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이번 대회에서 "정보격차 해소와 정보의 바다에서 장애인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통부 변 차관의 말은 씁쓸하기만 하다.

더 나아가 IT강국, 세계최고의 인터넷망을 자랑하며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정보통신부의 현실과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앞선다. 장애인의 눈으로, 장애인의 입장에서 대회를 꼼꼼하게 챙기며 치를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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