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느릿느릿 박철
은빈이처럼 솔직할 수 있다면

바른 소리를 해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할 때나, 이야기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걸 정곡을 찌른다고 합니다. 우리 집 늦둥이 은빈이(8)가 엄마 아빠의 대화에 느닷없이 끼여들어 정곡을 찌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요 맹랑한 녀석을 봤나?’하고 내심 놀랍니다.

두 오빠들은 어른들의 이야기에는 좀처럼 끼여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빈이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나와 아내가 언성을 높이고 다툴 때가 있습니다. 내 목소리도 크지만 아내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내와의 다툼은 어느 부부나 마찬가지겠지만, 사소한 문제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로 양보할 줄 몰라서 이해심이 부족해서 생기는 마찰입니다. 그러면 두 아들 녀석은 꼬리내린 강아지처럼 엄마 아빠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합니다. 그러나 은빈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은빈이 생각은 ‘아빠는 강자고 엄마는 약자’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늘 엄마 편입니다.

ⓒ 느릿느릿 박철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데 은빈이가 나에게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미워.”
“왜?”
“왜, 아빠는 엄마한테 소리 질러?”

솔직히 그런 은빈이의 당돌한 질문에 할말이 없습니다. 어젯밤 은빈이가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서 밥도 하시고, 설거지도 하시고, 집안 청소도 하시고, 빨래도 하시고, 내가 아프면 머리에 손도 얹어 주시고, 내가 학교 늦으면 차로 태워다 주시고, 책도 읽어주시고 엄마는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이 많아요.”

“아빠는 어떤 때는 엄마에게 화를 내시고, 우리에게 심부름을 자주 시키고, 나만 보면 사진 찍자고 그러고, 어떤 때는 내가 벗은 것도 찍고, 맨날 <느릿느릿이야기>와 <오마이뉴스>에 내 사진 올리고, 내가 살아 있는 장난감이라고 나를 귀찮게 하시는 아빠예요.”

ⓒ 느릿느릿 박철
그러고 나서 엄마와 은빈이가 재미있다고 웃어댑니다. 나는 은빈이 얘기를 듣고 심각해졌습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은빈이가 여자니까 엄마 편일까요?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요. 어느 때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아빠, 아빠는 나를 사랑해?”
“그럼.”
“그런데, 아빠는 나한테 왜 화도 내고 막 야단을 쳐요? 아빠가 거짓말 하신 거예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솔직하게 다 털어놓습니다. 차마 그 얘기는 여기에 옮길 수는 없습니다. 은빈이가 정곡을 찌른다는 말은 ‘솔직하다’는 표현입니다. 나도 은빈이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눈치 보지 말고 솔직했으면 좋겠는데, 어른들은 왜 솔직하지 못한 것일까요? 어른들도 마음속을 터놓고 서로 상대방에 대한 신의를 지키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은빈아! 너 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데?

모기장을 치고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달빛도 들어오고 바람도 솔솔 들어옵니다. 달빛이 들어와서 방안이 아주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내가 은빈이에게 묻습니다.

ⓒ 느릿느릿 박철
“은빈아, 너 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다고 했지?”
“응, 나 유치원 선생님 되고 싶고, 피아노 학원 선생님 되고 싶고, 의사선생님도 되고 싶어.”
“그래, 그러면 은빈아! 아빠 퀴즈문제 하나 낼게 알아맞혀봐.”
“유치원 선생님, 피아노 선생님, 의사선생님 중 누가 돈을 제일 많이 벌까?”
“아빤 그것도 몰라.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지.”
“왜?”
“한달에 한번씩 피아노 선생님한테 6만원씩 갖다 드리잖아! 피아노 선생님 돈 많이 벌어요.”

“그럼 그다음에는?”
“그 다음 유치원 선생님.”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한달에 한번씩 간식비만 6천원 갖다 드리잖아!”
“그럼 은빈아, 너는 돈 벌어서 아빠 뭐 사주고 싶은데?”
“아빠 카메라, 좋은 걸로.”

ⓒ 느릿느릿 박철
은빈이 장래희망은 유치원 선생님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을 거의 안보니, 개그맨이나 가수, 탤런트가 된다는 말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자기 주변에서 자기에게 제일 많이 영향을 준 사람이 아이들 마음을 차지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릅니다.

어려서 자기 마음의 그릇에 담아놓은 꿈이 때 묻지 않고 아름답게 간직되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늘 자신을 지켜주는 희망의 돛이 되길 바랍니다. 돛을 높이 달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빈이의 5살적 장래희망

ⓒ 느릿느릿 박철
3년 전 다섯 살배기 딸 은빈이에게 이불 속에서 내가 물었습니다.

“은빈아, 너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니?”
“아빠, 난 배가 되고 싶어. 무지무지하게 큰 배가 되고 싶어.”
“사람이 어떻게 배가 되니? 사람은 배가 될 수 없단다.”
“그래도 난 배가되고 싶어.”
“왜?”
“배가 된 다음에 아빠 태워주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아빠 차도 태워줄게. 엄마도 할머니도 오빠도 다 태워 줄 거야.”

관련
기사
"은빈아, 오늘 밤 누구랑 잘 건데?"

우리 은빈이가 왜 하필이면 배가 되려고 생각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섬이어서 이따금 배를 탈 기회가 있는데, 배에 대한 이미지가 은빈이 마음에 잠재된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은빈이가 큰 배처럼 큰 사람이 되어서 무엇이고 다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은빈이가 어쩌면 선장이 될지, 아니면 선장 마누라가 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배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느릿느릿 박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