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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
"거기가 어디에 있나요?"

이름부터 생소한 이 역 근처에는 용산 미군기지가 위치해 있다. 녹사평(綠莎坪)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고종때까지만 하더라도 수림과 잡초가 무성하여 인가가 희소한 곳이라서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도 인가가 희소하긴 마찬가지이다. 수림과 잡초 대신 높은 미군기지 담들이 늘어서 있으니까.

▲ 호텔이야? 설마 전철역일려구?
ⓒ 김선경
녹사평 역 안으로 들어선 순간 이름처럼이나 역 안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지하 5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 섰는데 정말 입이 딱 벌어질만한 광경이었다. 다른 역과 달리 깔끔하고 미술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정합니다.
ⓒ 김선경
월드컵을 기념한 벽에 그려진 그림 또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었고,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엘레베이터 또한 잘 어울려 한층 멋을 더 했다. 친철하게 나가는 곳까지 표시해 주는 형광판에서도 미술 작품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 참 멋지게도 안내하는군
ⓒ 김선경
인적이 드물었던 오후 시간 때문이었을까? 사람의 왕래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외국인들이 눈에 띄게 보였는데 미군기지 뿐만 아니라 이태원 시장과도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멋있는 역이 우리 집 근처인 의정부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됐다. 사실 의정부가 이곳보다 미군기지가 훨씬 더 많은데.

▲ 빛 한조각을 베어 물어라
ⓒ 김선경
승강장을 빠져 나오자 보이는건 36m 높이의 유리지붕에서 뿜어져 나오는 햇살이었다. 날씨가 맑지는 않아서 그랬는지, 역 안 분위기는 밝지 못하고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포근한 전철역안의 느낌이 아닌 빨리 밖으로 에스컬레터에 올라 나가고 싶은 생각을 들게 했다. 냉방이 제대로 나지 않은 전철안, 출퇴근의 전철은 비록 짜증은 나더라도 거기에는 우리시대의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 녹사평역 안의 모형
ⓒ 김선경
그러나 여기는 왠지 홀로 떨어져 자신의 아름다움만을 뽐내려는 것 같아 아쉬었다. 하나 하나가 모두 미술작품들인 것 같은 이 장소에 태극기 마저 걸려 있지 않았더라면 여기가 정말 서울 맞나하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였다.

▲ 매표소 옆에 있는 태극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 김선경
역안을 빠져 나오려는 나를 붙잡는 건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또한 예술이었다. 월드컵을 계기로 화장실 문화가 많이 바뀜에 따라 지하철 화장실은 참 깨끗함을 더해가고 있다. 여기에 예술성과 창조성을 더한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매번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 청량리역 좁은 화장실, 회기역의 화장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 아름답다
ⓒ 김선경
녹사평에 올라서니 궂은 날씨에서도 유독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둥근 원형의 유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멀리 보이는 남산, 그리고 서울 타워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았다.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혜택을 누릴까? 앞에 가는 양키들만?
ⓒ 김선경
녹사평역안으로 다시 들어와 역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녹사평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분석했다. 녹사평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001년에 있었던 미군기지의 기름유출문제에 관한 신문기사를 봤을 때 였다. 개통과 더불어 발견된 이 문제는 이듬해 2002년 주한미군의 기름유출 사실 시인으로 가슴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녹사평 기름유출 미군첫시인
휘발유 용산기지 유류탱크서

지난해 3월 발생한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기름유출사고에 대해 주한미군이 처음으로 책임을 부분적으로 시인했다.

환경부와 서울시, 주한미군은 30일 공동 보도자료를 내어 “녹사평역에서 발견된 등유와 휘발유 가운데 휘발유는 역 남서쪽에 위치한 미군 용산기지의 유류탱크에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에 따라 배상절차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출된 기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등유의 오염원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아, 지난달 1일 녹사평역 인근에서 추가로 발생한 등유 유출사고와 함께 한-미 공동조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휘발유의 경우 지난해 8월 용산기지 안 지하 유류탱크에서 유출이 확인된 바 있으며, 기지 근처 시추공에서도 휘발유가 검출되는 등 오염원이 미군쪽이라는 데 의견일치가 이뤄졌으나, 등유는 유출지와 흐름 방향 등에 대해 아직까지 양쪽의 견해가 달라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그동안 60만달러(약 7억2천만원)를 들여 기지 안의 오염된 땅에 대한 복구작업을 해 왔으며, 서울시는 30~31일 열리는 한-미 전문가회의에서 미군 쪽에 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 한겨레신문 이지은 기자
아름다운 역 안에서 더러운 미군들의 기름으로 녹사평 역을 볼 수 없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미군의 환경오염 문제를 아직도 녹사평은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주한미군의 이전에 따른 용산기지 근처를 재해석하는 눈들이 모아 지고 있다.

지난 역사는 용산을 가만두지 않았다. 일제시대이며 해방이후 미군기지까지 용산은 자신의 빛을 발하지 못한채로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도시이다. 아픔의 역사를 녹사평 역은 함께 해왔다. 용산 미군기지의 철수 이후 재조명 되는 '녹사평' 역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원형의 지붕은 서울의 아픔을 빛으로 반사시켜 저 멀리 태평양 건너편의 나라에 갖다 주어야 한다. 곧게 뻗은 에스컬레이터는 성장할 우리의 경제의 힘 같은 모습을 띄게 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창조적이고 깔끔한 역 안의 분위기는 우리 서울이 앞으로 겉만이 화려한 것이 아닌 자연과 함께 하는 창조적이고 깨끗한 도시를 만드는데 영향을 줄 것만 같다. 그리고 녹사평은 서울의 중심으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다가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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