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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복은 있게 생겼구만…’ 이라고 말씀하신 아버지
아버지 당신께서는 막내아들 아내 될 사람 첫 대면을 하시고 "복은 있게 생겼구먼…”이라고 하셨다. 키 작은 아내가 퉁실퉁실 두둥실 달덩이 같았기에 했던 말씀이셨을 거다. 실제 농심너구리 보다 더 오동통하다. 그 외 더 이상 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돌아가시기 8개월 전에 하셨던 말씀 치고 의미가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 복만 있게 생겼거나 복은 있게 생겼는데 뭔가 꺼림직 한 게 있었을 수도 있다. 며느리 될 사람이 오죽 키가 작았으면 그러셨을까? 그 외 다른 추측은 불가능하다. 또 한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냥 ‘복 있게 생겼다’고 액면 그대로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끔 아내에게 “복은 있게 생겼구만…”이라고 한다. 그러면 “복은 있게 생겼는데 어쩌라구요?”라고 되받는다.
당신은 그런 조금은 난해한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어찌나 고맙던지 자식들 다 여우고 한 많은 세상을 뜨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막내며느리가 손을 잡아주자 “왔냐?” 하시며 멀뚱멀뚱 쳐다만 보셨다. 그 때 난 아내에게 아버지와 친해지도록 자리를 양보했다.
진지 다 드실 때까지 식지 않게 드시던 당신
아버지는 밥 하나는 참 근사하게 드신 분이다. 꽁보리밥이든 쌀 몇 톨 안 들어간 밥이든 간에 조금은 오목한 그릇에 밥을 담아 복개를 덮어드리면 쇳소리 나지 않게 뚜껑을 열어 놓으시고 마지막 한 술을 드실 때까지 밥이 식지 않게 하셨다. 한 술 뜨시고 약간 힘을 주어 다음 번에 드실 밥을 숟가락으로 지그시 꼭꼭 누르신다. 밥이 밥 그릇 안에서 제멋대로 나뒹구는 일도 없다. 얼마 남지 않은 밥도 늘 가지런했다.
한 술 뜨시고 수십 번을 오물오물 하시면서 큰 소리도 내지 않으셨다. 꼭꼭 씹으시고는 고루고루 반찬을 드셨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보기에도 ‘밥을 참 맛나게 드신다’, ‘저렇게 열심히 씹으시면 얼마나 달짝지근할까’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별다른 찬이 없더라도 밥에 고춧가루 하나 묻히지 않으시고 다음 사람이 먹어도 새로 퍼 놓은 밥처럼 깔끔하셨다. 찌개를 드실 때도 나처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지 않으셨다. 국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드셨다.
된장에 풋고추 3개에 물 말아 드신 아버지
그런 당신께서도 한 여름엔 시원한 냉수에 물을 말아서는 풋고추 세 개에 막 된장 한 종지로 진지를 드셨다. 김치도 없이 말이다. 밥 바구리에 들어 있는 밥이든, 따뜻한 밥이든 간에 물을 적당히 붓고 숟가락으로 한 두 번 뒤적이는가 싶더니 한 잎 가득 드시고, 된장 두 숟가락에 고추장 한 숟갈을 옆옆이 놓아 퍼 드리면 요리조리 섞을 필요도 없다.
고추 하나를 손에 들고 고추장 조금에 된장 듬뿍 찍어 입으로 가져가셨다. 꽤 독이 오른 짙푸른 고추다 보니 어금니로 '사각' 하는 소리가 제법 컸다. 그러다 보니 '서걱', '써걱'으로 들렸다.
식은 밥을 드시면서도 당신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손으로 잠시 훔칠 뿐 별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주름살 사이사이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에 아버지의 노고가 묻어 나오는 듯 했다. 안빈낙도하시려고 자신을 감추던 그 모습에 말 못할 가부장의 깊은 뜻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루에서 겉옷을 벗고 러닝셔츠만 입으신 채로.
언제나 어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지켜보던 내가 얼른 커야겠다고 생각했다. 돈 많이 벌어서 그 어깨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고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그 매운 고추를 된장 고추장 '푹푹' 찍어 혀가 달아나도록 먹어보게 될 날을 기다렸다.
“아부지 한나 먹어봐도 될랑가요?”
옆에서 지켜보다 끝내 참지 못하고 여쭈면,
“매울 것인디. 정 먹고자프면 먹어보거라.”
“알았어라우~”
한번 베먹었다가 얼럴럴 혀가 달아나도록 매웠다. 몇 번을 시도했는지 모른다. 얼굴은 할아버님을 닮았다고 하는데 매운 고추 좋아하는 식성은 아버지를 빼닮았다.
문득 풋고추를 따오면서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도 매운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매운 아버지가 되고 싶다. 당신 두 분은 그렇게 자주 다투면서도 자식들 엉덩이 한 번 때린 적 없는 그 넓은 마음을 이해하기 힘겹다. 따라가기조차 힘들다.
아이 둘 키우면서 이제야 그 넓은 마음을 조금 짐작할 뿐이니 나는 아직 멀었는가 보다. 벌써 몇 번이나 아이들 엉덩짝을 때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