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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고 있는 갈치조림, 얌냠~~
끓고 있는 갈치조림, 얌냠~~ ⓒ 김규환

<갈치와 칼치의 경쟁>

'도어(刀魚)'를 한글로 풀면 '칼치'다. 1988년 표준어 규정이 개정된 이후 ‘칼치’는 ‘갈치’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언해(諺解)]에 보면 ‘갈’은 ‘도(刀)’라고 설명이 돼 있는데 ‘갈’이 대부분 ‘칼’로 바뀌었다. 하지만 바뀌지 않고 ‘갈’로 그대로 쓰이고 있는 말이 하나 있는데 ‘갈치’가 그렇다.

여기에 경기, 서울지역에 두루 쓰이던 ‘칼치’가 88년까지는 표준어였다. 그러던 것이 ‘갈치’가 고른 지역에서 쓰였으므로 당당히 표준어로 등극하게 되다. 지방 말이 수도 서울 말을 누른 것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로 이사오면 금방 말을 바꿔 살았던 호남 아주머니들이 고향으로 내려와서 ‘칼치’라 했던 때가 있었다. ‘상치’가 ‘상추’로 바뀐 예와 같기도 하거니와 일단 나에게 환영을 받았던 결정인 걸로 기억한다.(당시 ‘무우’가 ‘무’로 바뀐 것은 나에게 비난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갈치를 ‘군대어(裙帶魚)’라 했는데 ‘속치마의 끈 닮은 생선’으로 연상해서 지은 이름이라 생각하면 될 터이다. 긴 것은 1m 50cm나 되었으니 생김새만으로도 그렇게 불릴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제주 검은 먹갈치를 최고로 쳐준다. 압록강 가로 올라갔다가 추워지면 남하하여 동중국해(東中國海) 북쪽인 제주나 서남해안 뻘이 있는 곳에서 자라는 갈치에 얽힌 일화를 잠깐 보고 넘어가자.

상어 떼만큼이나 무섭다는 갈치 떼에 잘못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는 말이 있다. 손목을 잘라먹을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하다고 한다. ‘갈치 창자에서 시계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시장판마다 회자(膾炙)되었다. 나도 여러 번 그 얘길 들었던 바다.

재료가 냄비에 잘 깔려있는 갈치조림
재료가 냄비에 잘 깔려있는 갈치조림 ⓒ 김규환
<감자와 애호박 철에 갈치가 맛있다>

나는 한글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 국어학자는 아니다. 굳이 여기서 갈치의 어원과 표준말에 대해 조금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오로지 한가지다. 갈치가 먹고 싶어서다. 갈치는 시절로 따지면 7, 8월이 맛있다. 감자 캐 놓고 애호박이 한창인 때까지가 맛있다. 그 다음은 산란기로 들어가니 지금쯤 먹어야 제 맛인 것이다.

칼치든 갈치든 은빛 찬란한 이 생선이 철을 맞았다. 바야흐로 갈치 맛있는 철이다. 서남해로 여행을 굳이 가지 않더라도 감자만 있으면 손쉽게 갈치조림이든 갈치찌개든 해 먹을 수 있다. 갈치를 석쇠에 올려 구워도 지글지글 뽕뽕 거품 구멍을 만들어 굽는 즐거움까지도 얻을 수 있다. 구운 갈치 한 조각이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그러니 맛을 찾아 상상으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

갈치조림은 3호선 신사역 부근 잠원동 방향으로 나가는 길목에 즐비하나 5만원에서 7, 8만원을 호가한다. 푸짐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용기를 내서 한 번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갈치가 비싸다고는 하나 만원이면 세 마리는 살 수 있으니 알뜰살뜰 사는 재미도 있쟎을까?

자, 그럼 갈치 요리를 한 번 해보자. 남녀 누구나 할 수 있다.

<갈치조림 재료>3~4인 기준
갈치 한 마리/ 감자 중(中) 2개나 큰 것(大) 1개/ 애호박(조선호박) 절반/ 마늘 5쪽/
양파 1/3/ 대파 1/2/ 청양고추 3개/ 들깻잎 5장/ 생강 아이 손톱만큼/ 조선간장


<갈치조림 요리법>
5~7cm 크기로 자른 갈치를 될 수 있으면 냉동실에 넣지 않고 사온 다음 바로 요리해야 고기 맛이 푸석푸석하지 않고 쫀득쫀득 하다. 비늘은 물로 씻기 전에 호박잎으로 닦아내는 게 포인트다. 이렇게 하면 비린내 마저 제거된다. 어머니는 갈치 요리할 때 늘 내게 ‘호박잎 세 장만 따 오너라’하셨다.

갈치가 준비되었으면 그 다음 감자를 적당한 두께와 크기로 썰어 바닥에 깐다. 다음 그 위에 애호박을 약간 두껍게 썰어 얹는다. 맨 위에 갈치를 올린다. 육수는 따로 준비할 필요 없이 쌀뜨물을 활용하면 좋다.

양파는 길쭉길쭉하게 채 썰 듯 하고 마늘은 거칠게 빻아도 무난하다. 대파와 청양고추는 어슷 썰어 넣으면 된다. 비린내가 나지 않게 생강도 잘 다져 빠트리지 않는다. 생강도 생강이지만 (*1)초피 잎 대여섯 장이나 깻잎을 넣으면 비린내가 싹 가신다. 부추를 넣어도 좋다. 이도 저도 없으면 남은 소주 1/3 잔이나 청주(정종은 일본 말이라네요) 한 숟가락을 넣으면 좋다.

간장은 조선간장을 쓰는데 미리 넣어 간장 냄새가 나지 않게 한다. 처음부터 넣고 끓여야 간이 고루 퍼지고 냄새도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추장 1/2를 넣고 고춧가루를 위에 뿌려 주면 끓일 준비는 완성이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부글부글 초반에는 센 불로 끓인다. 한 번 끓었다 싶으면 약한 불로 줄여서 감자가 지그시 익도록 한다. 호박은 그 때쯤 흐물흐물 해져 입안에 들어가면 살살 녹을 때까지 끓이면 된다.

솥은 깊지 않은 널찍한 걸 쓰고 물을 잡기 힘든 초보의 경우 먼저 감자, 호박, 갈치 순서로 넣고 물을 잡을 때는 국자로 재료가 잠기기 직전에 그만 둬야 한다. 감자와 호박에서 물이 우러나와 한강을 만들면 국인지 찌개인지 몰라 조림에 실패하는 원인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감자를 무 대신 쓰는 게 훨씬 맛있다. 가을이나 이른 봄철까지는 무를 쓰는 게 시원한 맛을 내나 한 여름엔 감자가 더 설컹설컹 하고 국물도 진해서 좋다. 단맛을 첨가하려면 호박을 조금 더 쓸 일이지 굳이 설탕이나 물엿을 넣을 것까지는 없다. 담백하고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갈치로 입맛을 되찾자. 여름엔 뭐든지 잘 먹고 볼 일이다. 많이 먹어도 땀으로 웬만한 것은 빠져 나오니 길가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먹는 양을 늘리는 게 상책이다. 오늘 갈치조림 한 번 해먹어보자. 갈치 요리도 비 오는 날 더 맛있다.

맛있게 잘 익어가는 갈치조림
맛있게 잘 익어가는 갈치조림 ⓒ 김규환

<참고-도시인이 갈치 잘 구워 먹는 비결>

시골에서 군불을 땔 데 약불에 석쇠를 올려 구우면 최고의 맛이다. 그렇다고 갈치 하나 굽기 위해 불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도시에 사는 사람은 더욱 어렵다. 제 아무리 맛있는 생선이라도 식용유로 구우면 느끼해지기 쉽다. 프라이팬 바닥에 한 방울이든 두 방울이든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고서는 갈치가 맛없다, 생선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프라이팬을 센 불로 달군다. 그 다음 프라이팬 불을 줄이고 그 위에 갈치 도막을 올린다. 굵은 소금을 몇 점 올려 간을 한다. 바로 뒤집지 않고 서서히 구워지면서 갈치 내부에서 기름이 빠져나오는 정도를 보아가며 뒤집으면 식용유를 쓰지 않고도 깔끔하게 갈치를 구울 수 있다.

초피에 대한 상식
초피는 산초와 다르다


초피는 남부지방 특히, 전라남도 산촌에서 김치 담글 때나 추어탕, 보신탕, 염소탕을 끓일 때 산초와 비슷한 나무의 잎과 열매를 넣어 비린내와 누린내 등 고기의 나쁜 맛을 없애는데 쓰는 향신료.

일반인들은 거의 구분하기 힘들지만 산초는 풋내가 많이 나고 톡 쏘는 아르르한 맛이 덜하다. 상주 등지에서 산초는 까만 열매로 기름을 짜서 두부를 튀겨 먹는 맛이 좋지만 탕이나 조림에는 잘 쓰지 않는다.

좁쌀 만한 크기의 열매가 음력 8월 중순 추석 무렵 빨갛게 익는데 익으면 씨앗은 까맣게 톡톡 벌어진다. 잎과 열매의 표피를 먹는다. 지역에 따라 잼피, 재피, 좀피라고도 불리는데 항균력도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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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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