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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참 간사함이요, 편리한 사랑을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혼자 좋아하다 언제고 그만두는 그걸 어찌 사랑이라 할 수 있는가? 저 싫으면 마는 게 사랑이라면 나는 골백번도 넘게 사랑을 한 셈이다.
그나마 내 눈길을 끈 것은 동네 어린이집 앞에 핀 봉숭아 정도였다. 백일홍도 있었지만 내 관심사는 이미 벌과 나비, 거미 쪽으로 옮겨갔다. 벌을 따라가며 밀원을 찾았고 나비를 도와 꿀 있는 데를 알려줬다. 거미에겐 파리, 모기, 하루살이, 깔다구가 곧 달려들 모양이니 "냠냠" 즐거이 먹으라며 손짓을 했다. 그렇게 나는 두 달 여를 보냈다.
참나리 핀 집 앞 골목
그런데 최근 스무날쯤 집을 나서면 발목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 꽃이 있었다. 관찰에 들어갔다. 이른 봄 키 작은 나리를 흑산도에서 만난 뒤로 멀리 나갈 필요도 없었다.
움을 틔우더니 뾰족뾰족 싹이 나오고 기다랗고 가녀린 몸체를 드러냈다. 남들 보다 조금 느리게 말이다. 시간이 흘러 줄기가 딱딱해지자 까만 점, 씨앗을 마디마디 마다 매달고 꽃보다 먼저 씨앗 뿌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코딱지 '뚜르르' 말아 둔 겐지, 여름날 무더위에 신작로 길가에 앉아 잘 불은 내 몸 마른 때를 '쭉쭉' 밀어 모아 둔 겐지 알 턱이 없다. 그 놈은 장맛비를 축여가며 줄기 위에서도 하얀 뿌리를 귀엽게 선보이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마른 장마가 길어지면 저도 어쩔 수 없는지 바닥으로 '또르르' 굴러 떨어져 사람 발에 치이고 깔아 뭉개진다. 그 아래 흙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 터질까?’
‘그래 내일이면 될 거야’
‘오늘도 안 벌어졌네...’
점박이 ‘순이’ 누나를 짝사랑하다
짙푸른 색으로 변해 함박꽃처럼 크나큰 꽃을 이길 만 하던 때에 이르러서는 불잉걸보다 더 따가운 햇살을 못이기고 톡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 소녀처럼.
일주일 여를 시름하다 잠시 한 눈을 팔고 있는 사이 무엇에 화들짝 놀라서인지 오묘한 모양새를 하고 세상구경을 나왔다. 반가이 맞이한다.
‘멋진 걸.’
‘그래 참 멋지다.’
그 땐 ‘오! 밝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를 ‘오메! 요 이쁜 참나리~ 너 참 붉고 아름답다’로 바꿔 불러 주고 싶었다. ‘입술 예쁜 미인이 최고다’는 말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참나리 꽃이 여름의 화왕(花王)으로 불릴 만 한 것은 양파 뿌리 닮은 작은 구근(球根) 탓이리라.
멀리 서 있다가 가까이 가서 더 찬찬히 꽃잎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꽃잎 여섯 장에 검붉고 긴 수술 여섯 개를 고르게 배치하여 꽃가루를 한들한들 속삭인다. 오히려 암술은 초라하다. 꽃잎은 자신의 미를 한껏 뽐내려는지 뒤로 말려 있다. 그 말린 꽃잎으로 보면 점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한정 없다. 셀 수 없는 많은 점은 점박이 ‘순이’ 누나처럼 주근깨를 덕지덕지 붙여 “호호” 하며 웃는다. 뭐라 한 마디 해야 하는데 물어 볼 마땅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겨우 한다는 말이 더 우습다.
“날씨 덥죠? 콩밭 적당히 매고 와야죠. 더 타면 얼굴 몰라보겠네. 히히~”
순이 누나 닮은 참나리와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짝사랑을 나누게 생겼다. 아래 것 피고 나면 위에 것 맘껏 펼칠지니 긴 장마도 내겐 조금 불편할 뿐 성가시지도 귀찮지도 않다. 오며가며 눈에 한 번 넣고 마음에 담아 오래 보존하리라.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