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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초초등학교 가을운동회. 정숙이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
활초초등학교 가을운동회. 정숙이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 ⓒ 느릿느릿 박철
애들도 침을 꼴깍 삼키며 밥상 앞에서 감자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고기가 물렀겠다 싶어 대접에다 가득 뼈다귀를 담아 서로 뜯어먹기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겁지겁 먹는데 식당에서 사먹는 것처럼 고기 살점이 쏙쏙 빠질 정도는 아니었어도 국물이라든가 다른 건 식당에서 먹는 거와 진배없었습니다.

나는 연신 뼈다귀를 뜯으면서 ‘맛있지, 맛있지’를 확인하자 애들은 며칠 굶은 애들처럼 고개를 끄덕 끄덕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돼지 뼈다귀는 상위에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네 식구가 그 많은 뼈다귀를 다 먹어 치운 것입니다. 감자탕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아내가,

“여보, 이 뼈다귀 개줄까?” 물어 보길래, 나는 “야, 뼈다귀는 완전히 무르지 않아서 아직도 살점이 많이 붙어 있어. 한번 재탕 해먹고 개주자고. 개주기는 아깝잖아!”라고 말했습니다.

돼지 뼈다귀 재탕 해먹었다는 소리 들어 보셨습니까? 그놈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닷새쯤 지났을까요? 다시 돼지 뼈다귀를 가지고 들통에 집어넣고 똑같은 방법으로 재탕을 했습니다.

애들은 “아빠 멀었어요?” 하고 물어보는데 한번 끓인 거라 지난번보다 시간을 적게 잡아 감자탕을 만들어 상에 내놓았습니다. 돼지뼈다귀 감자탕에서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애들아 감사기도하자. 하느님 아버지, 오늘도 돼지뼈다귀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돼지 뼈다귀로 감자탕을 만들었는데 맛있게 먹게 해주소서….”

활초초등학교 가을운동회. 둘째 아들 태규.
활초초등학교 가을운동회. 둘째 아들 태규. ⓒ 느릿느릿 박철
기도가 끝나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정숙이 엄마였습니다. 젖소를 키우는 목장에서 일하는 목부의 아내였습니다. 키는 작지만 체구가 당당하고 힘깨나 쓰고, 먹는데 안 빠지는 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왔냐?’고 하니까 그냥 놀러왔다는 겁니다. 하는 수 없이 들어오라고 ‘밥 먹었냐?’고 물어보았더니, ‘안 먹었다’ 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점심때가 훨씬 지났으므로 당연히 점심밥을 먹었을 줄 알았는데 안 먹었다니, 그러니 같이 먹자고 그럴 수도 없고,

‘이 돼지뼈다귀가 우리 식구들이 다 침 발라 놓은 것인데, 그걸 재탕한 것이니 미안하지만 줄 수 없노라’ 고 설명 할 수도 없고, 속으로 생각하길, 침 발라 놓은 뼈다귀라도 끓인 것이니 먹으라고 하자,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정숙 엄마, 이 돼지 뼈다귀 좀 먹어볼래, 고기는 별로 안 붙어 있어!”
“예, 조금만 먹어 볼까요?”

정숙 엄마는 오랜만에 목사네 집에서 포식 한 번 하게 되었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밥상 앞에 앉아 뼈다귀를 집어 들었습니다. 돼지 뼈다귀에 살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숙이 엄마가 돼지 뼈다귀를 보고 ‘거 이상하다, 무슨 돼지 뼈다귀에 살점이 하나도 없나?’ 하면서 요리저리 살피면서 어디 고기 안 붙어 있나? 아무리 살펴도 고기가 안 달라붙어 있으니 고기살점을 뜯어 먹는 게 아니라 돼지 뼈다귀를 빨아 먹는데, 나는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웃겨 뒤로 자빠질 뻔 했습니다.

그러니 웃을 수도 없고, 웃음은 나오는데 그걸 참느라고 아내와 나는 얼마나 애를 먹었든지? 하도 웃음을 참으니까 콧구멍으로 밥알이 나오고 방귀가 다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정숙이 엄마가 오랜만에 포식 좀 하는 줄 알았는데 고기 살점은 하나도 없고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합니다.

활초초등학교 가을운동회. 큰딸 정숙이.
활초초등학교 가을운동회. 큰딸 정숙이. ⓒ 느릿느릿 박철
요즘도 가끔 아이들과 외식하러가서 감자탕을 먹으면서 10년 전, 남양에서 정숙이 엄마가 돼지 뼈다귀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돼지 뼈다귀에 살점이 하나 없는가?’ 이상하기도 하고, 한편 실망스럽기도 한 표정으로 돼지 뼈다귀를 빨아먹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침 발라 놓은 돼지 뼈다귀를 재탕해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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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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