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등대섬 절벽의 바위에 앉아 나는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등대섬 절벽의 바위에 앉아 나는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 신우철
넓은 바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전의 시간 한쪽이 허물어지면서 내 속으로 무한한 대자연의 시간이 흘러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라면으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나는 절벽 위 바위에 앉아 서울의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지금 읽어보니 그것은 그녀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쓰는 편지였다.

관련
기사
뭍을 향한 바다의 그리움은 섬으로 솟아난다


"오후 두시, 이제 곧 비가 오리라. 기다려 본다.
노련한 낚시꾼이 낚싯줄을 던지고 찌를 응시하듯이 끝없는 저 파도와 수평선을 응시하며 무엇인가가, 그 어느 순간인가가 내 가슴 속에 자리 잡기를."

그랬다. 내가 소매물도에서 바다를 응시하며 기다린 것은 어떤 계시와도 같은 순간이었다. 쟝 그르니에가 어릴 적 구름을 쳐다보다가 '이 세상의 비어있음'을 순식간에 느꼈던 것처럼, 나도 나의 전 생애를 좌우할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고 등대섬과 연결되는 몽돌밭이 바닷물에 잠기기 전에 나는 본섬으로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였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풀잎들이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뭍을 향하여 일제히 쓰러졌다.

아, 모든 그리움은 뭍을 향하고 있구나! 그 순간, 나는 망망대해 속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섬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 바다 밑을 통하여 뭍에 닿아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움의 힘이라는 것도.

세 번째 여행

두 번째로 소매물도를 떠나며 나는 다음에는 혼자가 아니라 꼭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오리라 다짐하였다. 1990년 9월 남해안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내 신부와 함께 소매물도의 등대섬을 오르려는 나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97년 7월, 나는 아내와 다섯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소매물도를 다시 찾았다. 거의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섬에 살던 주민들의 수가 많이 줄었지만 내가 올 때마다 민박을 하였던 그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내와 딸아이까지 데리고 온 나를 보고 민박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몸이 편찮으신데도 아주머니께서는 손수 저녁밥을 지어 우리 가족들을 대접해 주셨다. 아저씨는 싱싱한 생선회를 내놓으셨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아저씨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우울한 것이었다. 섬이 개인소유로 되면서 많은 이들이 떠났고 이제 점점 이곳에서 사는 것이 어려워지고 각박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둘러보니 xx산장이라는 숙박업소도 눈에 띄었다. 때묻지 않은 이곳도 이제 관광지가 돼 가는가 보구나. 씁쓸하였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으니 그것은 섬의 뛰어난 풍광이었다. 아저씨가 젓는 배에 함께 탄 아내는 연신 탄성을 질러댔다. 아저씨는 등대섬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내가 아내와 함께 꼭 와보고 싶었던 이곳을 드디어 왔구나! 나는 아내와 딸아이의 손을 잡고 등대섬의 풀밭을 올랐다.

나룻배에서 올려다 본 등대섬의 절벽 위에 등대가 보인다
나룻배에서 올려다 본 등대섬의 절벽 위에 등대가 보인다 ⓒ 정철용
그리고 그 절벽 위에 함께 서서 그 아래 굽이치는 파도와 아득한 수평선 너머의 바다를 함께 바라보았다. 이제 아내도 그 때 내가 보낸 편지에 썼던 말을 이해할 수 있겠지 싶었다.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우리는 등대섬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썰물 때 몽돌밭을 건너 본섬으로 건너왔다. 힘겨워하는 아내와 딸아이를 돌보면서 나는 가파른 풀밭 길을 더듬어 학교가 있는 곳까지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다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그 조그마한 학교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은 폐교 안내문이 아닌가! 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음악수업을 즐긴 교실을 아내에게 보여주려던 나의 꿈은 녹이 슨 시소와 잡초가 무성한 운동장 앞에서 무색해졌다.

안내문에는 61년에 개교를 해서 96년에 폐교를 하기까지 31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고 쓰여 있는데, 그 많은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지금 섬에 남아있는 이들은 모두 녹슨 시소와 잡초 가득한 운동장을 닮은 나이든 이들 뿐이니 말이다.

등대 앞에 선 아내와 딸아이, 그들은 내 청춘의 섬의 증인들이다
등대 앞에 선 아내와 딸아이, 그들은 내 청춘의 섬의 증인들이다 ⓒ 정철용
그래도 아직 변치 않고 남아 있는 하얀 등대와 그 등대섬의 절벽 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그 아득한 바다의 아름다움 때문에 소매물도는 언제나 나의 청춘의 섬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다시 가보게 된다면 그 때에도 그 민박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나를 반겨줄 것인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없더라도 소매물도는 나를 반겨주리라. 등대섬의 하얀 등대와 절벽 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그 아득한 바다와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은 그 무수한 별들과 지금은 폐교가 된 작은 학교의 녹슨 시소가 나를 반겨주리라.

소매물도는 영원한 나의 청춘의 섬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