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노인들을 위한 장소로 문을 연 서울시립강동 노인종합복지관
노인들을 위한 장소로 문을 연 서울시립강동 노인종합복지관 ⓒ 황종원
그곳은 이제 막 새로 지어 문을 연 서울 시립 강동노인종합복지관이다. 장모님께서는 매일 집에만 계셨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노인정에도 가신 적이 없다.

가족을 뺀 낯선 사람들을 아주 어렵게 대하시니 노인정이라는 데는 돌보는 사람 없이 던지듯 버려두는 듯하여 우리 자식들 마음에도 들지 않았다.

복지관 자리는 한동안 간이 건물로 세워진 성당이 남루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러다가 교회가 이사 간 뒤, 빈터는 동네 쓰레기터로 바뀌었다. 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그 땅에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갔다. 그러더니 땅을 파헤치고 건물 골조가 쑥쑥 올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게 하더니 복지관이 세워진 것이다.

6층 건물로 아파트 단지에서 가깝고 복지사들이 어른들을 보호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어 어른들이 심심치 않다기에 아내가 득달같이 복지회관에 갔다. 생각보다 더 좋은 듯하였다. 치매노인을 위한 과정이 있고 신청을 받고 있었다. 월 12만원의 회비를 납부하면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른들이 사시는 강동구에서 송파까지 회관 직원이 모셔다 드린다니 이제 복지 정책의 맛보기를 보는 듯했다.

당장 시설을 이용하려면 어른만 모시고 간다고 바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사진을 찍고 준비할 서류가 있다. 반명함판 사진 하나, 치매 확인서, 건강 진단서를 챙겨야 했다. 어른 사진을 요즘 찍은 것이 없지만 사진관에 가서 비싼 돈 내고 찍을 수 없으니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3.5인치 플로피디스켓에 복사를 해서 동네 사진집에 맡기니 3x5 정도는 필름 카메라 인화하는 수준의 값으로 뽑아준다. 복지회관에서 치매어른을 모시는 격세지감만큼 세상이 변했다.

다음은 치매확인서를 발급 받아야 할 일이었다. 장모님의 아산병원 예약 일자를 당겨서 의사를 만났다.
"그런 시설이 생겼다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의사는 함께 고마워했다. 치매성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기본적인 검사는 가슴 방사선 사진, 심전도 검사, 혈액검사와 MRI 촬영이 있으나 MRI는 찍지 않았다. 이미 누가 봐도 치매가 확실한데 몇 십만 원 들여 아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의사는 찍으라고 강요를 못하고 진단서의 병명에다가 치매의증이라고 썼다.

건강진단서를 떼려고 아내와 함께 장모님을 모시고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강동보건소에 갔다. 종합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으려면 진단서 값이 문제가 아니라 각종 검사 비용이 몇 십만 원이 될지 몰라 지레 겁을 먹었다.

@ADTOP@
보건소의 건강진단은 위생업소 종사자가 그 대상인 듯했다. 나중에 받은 건강진단서에는 트리코므나스 없음, 매독 없음 하는 것으로 보아서. 가슴 방사선 촬영과 피를 뽑는 것은 기본이었다. 거기까지는 하라는 대로 하면 되었다. 옷을 벗으라면 벗고 간편복을 입으라면 입고 방사선 사진을 찍으면 되고 팔뚝을 달라면 내놓고 피를 뽑게 하면 되었다.

면봉을 하나 주면서 항문에 넣었다가 빼서 변을 묻혀 오라기에 나는 당황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옮기나? 귀가 어두워 큰 소리를 내야 하니 신경 쓰이고, 제대로 알아들으실지 걱정스러워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 똥꼬에 넣었다가 빼오세요."

아주 쑥스러워 하고 부끄럼까지 타시며 장모님은 면봉을 받아 들었다. 장모님이 계신 화장실 문 밖에서 걱정반, 기대반으로 나는 서성거렸다. 장모님은 어색하게 면봉에 내용물을 묻혀 들고 나오셨다. 장모님은 내 말을 제대로 들으시고 정확하게 일을 하셨다. 어떤 때는 엉뚱하시고 어떤 때는 정확하시다. 필요할 때 상황파악을 제대로 해주시니 고맙다. 건강진단서는 3일 뒤에 받으라고 했다.

보건소에서 조금 가서 강동경찰서가 있고 그 뒤에는 성내동 동회가 있다. 장모님의 주민등록은 처남네에 있으니 보건소 일도 보고 동회 일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장모님을 모시고 동회의 등본 발급공무원 앞에 섰다.
"할머니, 사위 믿지 마세요."

그는 내가 등본을 발급 받으려는 것을 무슨 재산 상속이라도 받는 것으로 알았나 보다. 나는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실없는 객담에 나는 조금 상처를 입는다. 가지고 오라는 서류를 준비해서 복지회관에 제출하는데 나흘이 걸렸다.

서류를 제출하고 다시 기다려서 복지관 담당자와의 면담은 아내가 하고 왔다. 월요일에 장모님을 모시고 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일들을 대강 헤아리고 계신 장모님께서는 "거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하시며 걱정이 태산이시나,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모님께 놀이터와 먹거리를 대주는 장소가 생기게 되었다. 아내도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리던 월요일에 오마던 연락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가 전화를 걸었다. 주간보호가 없어졌다고 복지관의 담당자가 말을 한다. 깜짝 놀랄 일이다. 치매관계 보호소는 강동구 일대에 여럿 있기에 쇠약노인과 중풍이나 뇌졸중 노인을 보호하기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온 말로 365일 주간 보호를 하겠다는 것은 계획만 있다가 실행단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24시간 보호를 하는 보호 과정은 있다고 하였다. 하루 24시간 계속 보호는 가능하다는 설명을 아내는 들었다.

월12만 원에 주간 보호를 하기로 한 보호시설은 다른 용도로 바뀌었으나 치매 노인 단기보호센터에는 모실 수가 있다. 단기 보호센터는 치매 어른들을 24시간 돌봐주면서 월 비용은 45만 원으로 한 번 입소에 45일을 머무를 수 있고, 1년에 길게 90일만 보호가 가능하다.

어른 모시는데 무슨 그 날만 가능할까마는 치매 어른들이 한둘이 아니니 맛보기 보호랄 수도 있다. 시설이 확장되어 계속 모실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 이런 시설도 그나마 얼마나 고마운가.

아침에 복지관에 가자고 아내가 장모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장모님은 낡은 가방을 챙기신다. 뭐 하시냐고 아내가 말리고, 어른은 말씀하시기를 죽으면 다 버릴 건데 하시며 눈물을 뚝뚝 흘리신다. 바로 집 앞에 가는데 당신을 자식들이 버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으신 듯 하였다.

막상 노인을 모시고 가려니 마치 먼길 고려장하는 산 속으로 모시고 가는 느낌으로 우리 내외의 마음이 편치 못하다.

어른을 복지관에 모셔다 드렸다. 한 나절이 지났다. 오후에 담당인 사회복지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모님에게 말동무가 생겨서 그곳에서 주무시기로 했다고 했다. 한 사람 건너 그런 말을 듣고 마음이 놓이지 않다. 복지관은 집에서 100여 미터도 안 되는데 천리밖에 어른을 모신 듯하다. 도저히 그냥 우리 내외만 집에 있을 마음이 아니었다.

복지관 뒷문에서 감시 카메라의 확인을 받고 5층 보호실에 올라가니 장모님께서는 환하게 앞니 하나를 드러내시며 웃으신다.
"여기서 주무실래요?"

아내가 농담을 걸자 장모님께서는 손을 내저으신다. 보호시설의 근무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할머니가 가시면 남은 저 할머니는 어떻게 해요. 함께 주무시기로 했잖아요."
"내 소관이 아니지."

장모님 말씀에 다들 소리내어 웃는다. 시설에는 노인 세 분이 계신다. 여자 노인 세 분, 남자 노인이 한 분이시다. 여자 노인 한 분은 쉴 사이 없이 뺑뺑 돌고, 한 분은 평범하고, 남자 한 분은 어디서나 잔단다. 누워 자고 앉아 주무시고, 살아 있어도 이미 영혼은 저승에 반 쯤 가 계신다.

장모님을 모시고 나오면서 나와 아내의 마음이 조금 풀린다. 집 안에 함께 계셔야 할 어른을 남의 보호 아래 맡기면 살아계셔도 어찌 살아계시다 할까. 돌아가신 것과 무엇이 다르랴.

하루 이틀 시설에 모시다 보면 안타깝던 마음도 사라질 것이며 어른은 살아계신 채 잊혀지지 않는다 어찌 말하랴. 슬프고 괴롭다. 늙는 다는 것은 장모님의 경우만 그러함이 아니요. 장모님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며, 아내의 모습을 보며 슬프다.

내 집 내 가족이 지켜보는 집에서 함께 모시지 않아 얼음처럼 얼었던 마음이 금세 녹는다. 집에 와서 장모님은 집안 여기 저기를 살피신다.
"왜요?"
아내가 물었다.
"아줌마 어디 갔냐? 할머니 하고…."

있지도 않은 사람들을 찾으신다. 장모님께서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신다. 우리는 장모님이 이상하지만 장모님은 우리가 이상하시다. 우리에게 사랑만 주셨던 장모님. 이제 두 눈을 크게 뜨시고도 저승을 바라보고 계시니 이 일을 어쩌나. 이러기에 다시 보호시설에 또 모셔야하니 자식들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니.

어머니, 이제 아흔의 연세. 가도 가도 험한 인생 길을 거의 잊으셨지만 아직은 대소변 가리시고 깔끔하게 당신 몸을 단장하시고 딸과 사위를 알아보시니 지금이 다가올 내일보다는 행복하다며 사시자고요.

어머니, 가시는 길을 우리도 언제는 갈 거랍니다. 바로 눈 앞 건물에 모시고도 우리는 이렇게 가슴 아픈 것을 어머니는 아시나요. 어머니, 당신은 아시고도 모른 체 하루 지내시며 내일 아침부터 또 가시자 하시는군요.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