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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두 달 전에 파견되어 왔던 김재령씨가 우리 JTS 자원봉사자들에게 생활안내를 해준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생활에 관한 부분인데 주의사항이 압권이다. 우리에게 떨어진 주의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남자들 모두 긴팔에 긴바지를 입어야 합니다. 여자들 외국인이라고 좀 봐주긴 하는데 역시 긴팔에 긴바지 입어야 하고 머리에는 아무거나 뒤집어 써야 합니다. 얼굴말고 밖으로 노출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시내를 나가실 때는 남자, 여자 따로 다녀야 하고 한국에서처럼 남녀가 같이 웃고 떠들며 같이 다닐 수 없습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똑바로 쳐다보아서는 안되는데 특히 남의 집을 유심히 들여보았다가는 집주인과 싸우기 쉽습니다."

"아프간 사람들도 노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나 탈레반 정권 때 하도 당해서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노래 부르거나 사람들 앞에서 노는 듯한 모습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외에 기타 등등.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하에서도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거리를 거닐며 아프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JTS 자원봉사자들이 카불 시내를 거닐면서 본 몇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르카'였다. 부르카는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이 입는 전통의상 중 하나로 이란 등지에서 쓰는 '챠도르'와는 달리 온 몸을 완전히 가리는 복장이다. 이 부르카에 대해서는 입는다기보다는 뒤집어 쓴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데, 여자복장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이 안에 들어가면 도통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전혀 옷안의 사람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카불의 길거리에서 부르카를 쓰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자도 있다고 한다. 여성 억압에 대한 얘기들을 들어왔는데 직접 그런 것들을 보니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양상도 갈수록 바뀌어서 부르카를 안쓰는 여성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먹는 것이었다. 아프간 사람들의 주식은 '난'이라고 불리는 화덕에 구운 일종의 밀가루 빵이다. 서아시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먹는 '난'은 나라마다 조금씩 맛에 차이가 있는데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리없이 먹을 만하다.

▲ 케밥을 굽는 아프간 사람들
ⓒ 김동훈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케밥'으로 양고기나 소고기로 만든 고기꼬치구이다. 이곳 사람들은 고기를 주식처럼 먹기 때문에 그동안 채식위주로만 식사를 해왔던 한국 자원봉사자들에게는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하든가. 먹는 게 문제가 되어 여행기간 내내 설사로 고생한 사람들이 줄줄이었다.

남자 자원봉사자들에게 가장 반가운 것은 무지무지하게 싼 담배였다. 노점상들은 대부분 담배장사들이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종류가 무던히도 많고 죄다 외국산 담배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산 담배들. 솔, 88, 에쎄 등 없는게 없는데다 가격도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절반 이하다. 역시 담배에 굶주린 흡연자원봉사자들에게는 천국이 아닐 수 없었다.

▲ 다시 문을 연 식료품 가게
ⓒ 김동훈
시장을 가보았다. 사람들이 모인 시끌시끌한 분위기는 여느 나라의 시장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파는 품목들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만 않는다. 활기찬 시장의 풍경 속에서 지난 전쟁의 상흔을 찾아 보기는 힘들다. 식당, 철물점, 식료품점, 옷가게 있을 건 다 있다. 코니카 등의 깨끗한 사진 현상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기념품 가게, 피자집과 극장도 문을 열었다. 시내에는 '만리장성'이라고 한국말 간판으로 쓰여진 조선족이 운영하는 중국집도 들어와 있다. 도대체 누가 이것을 보고 여기에 지난 20년 동안 전쟁이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전쟁의 상처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외간선도로에서 보이는 전차와 장갑차들의 잔해는 시내로 들어서면서 총탄과 포격에 부서진 건물들로 뒤바뀌어 있다. 관공서나 학교, 공장 건물들은 지붕이 내려앉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총알자국에 벌집이 되어 있기 일쑤다.

▲ 파괴된 카불 시내 건물
ⓒ 김동훈
부서진 건물들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고 빈집들은 그대로 비어있다. JTS 사무실이 있는 서남쪽 시가지의 피해는 특히 심하여 보이는 건 다 부서진 건물들이다. 일부에서는 다시 건물을 복구하고 있었다. 부서진 건물에다가 다시 벽돌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아직 복구가 시작되지 않은 건물이라도 그 속에서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에서 나눠준 천막은 아프간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다양한 용도로 쓰여 집 부서진 사람들에게는 바람막이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시내를 돌면서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궁금히 여기는 것은 곳곳에 걸린 한 남자의 사진이다. 터번을 둘러쓴 중요 인물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젊어 보이는 이 인물은 '아흐메드 샤 마수드'이다. 통상 마수드라고 부르는 그는 탈레반과 대치하던 북부동맹군의 사령관으로 9·11 테러 이틀 전에 기자를 위장한 테러리스트들의 자살공격을 받고 살해되었다. 암살 사건 당시에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의 소행이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이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북부동맹군은 유능한 사령관을 잃어버렸고 전쟁이 끝난 지금까지도 별다른 역할을 해내고 있지 못하다. 맞수였던 탈레반이 물러났지만 지금은 미군을 비롯한 외국 군대 앞에서 그저 체면유지나 하고 있는 셈이다.

▲ 전 북부동맹 사령관 마수드의 사진
ⓒ 김동훈
마수드는 체 게바라나 모택동에 비유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영웅으로 소련이 쳐들어 왔을 때는 무자헤딘을 이끌었던 전사로, 내전기간 중에는 탈레반에 맞서 싸운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났어도 아프간은 외세가 잠시 봉합했을 뿐 지난 기간을 통해 쌓여온 종족간 종파간 갈등은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다.

전쟁 이후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하나로 묶이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에 이미 죽어버린 마수드 같은 인물은 공통적으로 향수할 만한 사회통합의 기제로 유용하게 쓰이는 것 같다. 마수드 붐은 이미 한차례 지나가서 카불 거리를 죄다 장식했던 그의 사진은 지금은 많이 철거되었지만 아직도 각 관공서들에는 마수드의 사진이 걸려있고 밤이 되면 조명을 비추면서까지 아직도 그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라면 현직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어야 할 자리에 이미 죽은 게릴라 영웅이 자리하고 있는 격이다. 이것도 전쟁이 만들어낸 우여곡절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마수드의 사진이 지켜보고 있는 카불시내는 이미 교통체증으로 여러 곳에서 고생하고 있다. 신호등은 없지만 교통경찰들이 거리를 정리해야만 한다. 거리를 메운 차량들은 거의 일제 차들이고 중국 제도 많이 보인다.

거리 한쪽에서는 오인사격으로 무고한 아프간 인들을 죽인 미군들에 대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잘못 걸리면 외국인들은 표적이 되기 쉬우므로 우리 일행도 일찌감치 자리를 피한다. 길거리에서는 싸우는 사람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아이들마저 다른 나라에서와는 다르게 사납기 그지 없다. 거칠어진 그들의 심성을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전쟁은 그렇게 사람들을 변화시켜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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