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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신이 창조한 것이고 미술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 역시 피조물에 불과함을 인정한다면 창조주인 신에게는 한없이 미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인간의 영역인 미술로서는 오랫동안 신의 소관인 자연을 경배하고 모방하는 것으로 본분을 삼았었다.

그랬던 미술이 스스로 창조적 지위를 갖고 자연을 능멸하게 된 것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사상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은바 크다. 따라서 현대미술은 '개념'과 '방법'과 '물질'이 범벅이 되어 자연과 대비되는 문명의 영역으로 치부되었다.

자연미술은 이런 현대적, 서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친화적이고 원초적인 정신으로 돌아간 새로운 미술 경향이다. 특히 한국의 자연미술은 서구로부터 이식된 외래사조가 아니라 자생적으로 발생된 미술로 세계적으로 '동시대성' 또는 '선구적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

1981년 금강주변의 작가들이 모여 만든 '야투' 라는 독특한 이름의 그룹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기 다른 자연환경에서의 탐구활동인 사계절 연구회와 자연미술가들의 국제적인 네트워크인 금강에서의 국제자연미술전을 통해 자연미술의 토양을 일구어왔다.

야투그룹의 일원으로 근 20년 간 한길을 걸어온 자연미술가 김해심이 쓴 "예술가와 함께 하는 자연미술 여행" 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쉬우면서도 아름답고 명상적인 책이다.

▲ 와우북
ⓒ 임재광
이 책은 컴퓨터게임만 좋아하는 소년이 자연미술가인 이모와 함께 여행을 하며 자연과 자연미술에 관해 알아 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뚱이와 그의 가족은 이 책의 저자임에 분명한 이모를 따라 봄에는 생명이 피어나는 들로, 여름에는 서해바다 외딴섬으로. 그리고 가을에는 낙엽 쌓인 산성으로, 겨울에는 눈 덮인 강가로 여행하면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자연미술을 감상한다.

이들이 함께 체험하는 사계절의 자연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자연미술 때문에 더욱 신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독자들은 본문의 전개에 따라 삽입된 국내외 대표적인 자연미술가들의 작품사진을 통해 더욱 생생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으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빼앗긴 가족간의 대화와 유대를 자연과 미술을 함께 하는 체험을 통해 되살려내는 효과도 덧붙이고 있다. 아울러 환경문제가 21세기의 가장 큰 관심의 하나로 대두된 현실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자연미술은 지극히 동시대를 호흡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너무도 생생한 현장의 묘사와 쉬우면서도 적절한 대화는 이야기에 사실성을 더해주며 실감나게 한다. 이는 저자가 머리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을 통해 숙성된 내용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김해심은 중앙대학교 문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도서관에서 근무하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자연미술가그룹인 야투에 합류하게 되고 1986년 이후 자연미술이라는 새로운 미술세계에 몰두하여 작업을 해 왔다.

그는 매우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첼시 미술대학원에 유학하여 미술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안정된 직장인으로서의 생활을 버리고 예술가라는 험난한 길로 인생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물론 자연미술이라는 생소한 형태의 미술이 주는 생생하고도 새로운 매력 때문이었다.

미술은 근본적으로 자연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인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술은 도시에서 피는 꽃이라 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도시에서 피는 인공의 꽃인 셈이다.

작업실이라는 지극히 인공적이고 도회적인 공간에서 뛰쳐나와 자연속으로 들어갔을 때 미술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명의 자만심에 빠진 미국의 미술가들은 자연을 정복적으로 대하여 거대한 대지미술을 발달시켰다. 이에 비하여 한국을 비롯해 유럽이나 아시아의 미술가들은 자연에 순응적인 행태의 작업을 하였다. 특히 한국의 자연미술가들은 미세한 감수성으로 독특하고 명상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 왔다.

이 책에는 저자인 김해심의 작품 뿐만 아니라 오랜세월 동안 그와 함께 해온 '야투' 작가들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소멸적인 자연미술의 특성상 사진이나 영상의 기록물로만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기에 보여주는 사진자료들은 그대로 작품이라 보아도 무방하리만큼 전달 효과가 높다.

시각적으로도 보는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연의 훼손과 가족의 해체라는 근원적인 현대의 병을 치유하는데 매우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술가와 함께 하는 자연미술 여행

김해심 지음, 보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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