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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아노 소리를 참 좋아합니다. 나는 청소년 시절, 나의 누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피아노 치는 소리와 함께 살았습니다. 어떤 때는 피아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내 방 창문에 군용 담요를 걸쳐놓기도 했으니까요. 누구나 내 입장이었으면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매일 똑 같은 곡을 수십번씩 듣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피아노를 잘 쳐서 음대를 간 누나에 비하면 나는 피아노와 전혀 무관하게 살았습니다. 내가 관심만 가지면 얼마든지 피아노를 배울 수도 있었을 텐데, 나의 사춘기적 반항심리를 피아노 건반에 붙잡아 둘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나도 이제 사십대 중년이 되어서 누가 당신 취미가 뭐요? 하고 물으신다면 나는 수줍게 ‘음악을 듣는 것이외다’ 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 방에서 설교준비를 한다든지 책을 읽는 다든지 의례 명상을 할 때에는 음악을 듣습니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은 주로 ‘바로크’시대의 음악입니다. 특히 ‘바흐’나 ‘모짜르트’를 좋아합니다.
이따금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내 마음조차도 정지(停止)된 것 같은 그런 감상에 젖게 되면,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나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듣습니다. 소리통을 통해 전달되는 피아노 소리가 마치 서해 깊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절정에 이를 때도 있고, 이른 봄 아무데서고 볼 수 있는 환하게 피어있는 노오란 민들레를 연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시골교회 있다보니 늘 성가대 반주자가 없어 곤란을 겪습니다. 주로 중고등부 중에서 음악에 소질이 있는 학생이 반주를 합니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쩔쩔 매다가 나중에는 제법 틀리지 않고 잘 합니다. 작년까지는 오세나 양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5년동안 반주를 했는데 대학에 진학하게 되어 더 이상 성가대 반주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세나가 이름처럼 마음도 예쁘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5년동안 예배시간에 단 5분도 늦은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딸처럼 사랑하는 아이였습니다. 세나가 내 마음을 알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 다음에 세나가 결혼을 하게 되면 꼭 내가 주례를 해주고 싶습니다.
세나가 교동을 떠나게 되자 우리집 큰 아들 아딧줄이 대신 반주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녀석이 처음에는 반주하다 자꾸 틀리더니, 시간을 내서 매일 집중적으로 연습한 결과, 지금은 어느 곡이고 틀리지 않고 잘 칩니다. 큼직한 손으로 박력 있게 반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합니다.
어제, 누군가 고마운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하여 우리교회 새 피아노가 왔습니다. 우리교회 분위기에 딱 알맞는 피아노입니다. 우리교회 앰프를 다시 들여놓았을 때보다도 내 마음은 더 들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몸살이 걸려 입안이 온통 다 헤져 잠을 푹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내일 아침 일어나는 대로 나는 피아노와 정식으로 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아침, 나는 피아노를 만지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야, 피아노야! 너는 이름이 뭐니?”
피아노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럼 내가 이름을 지어줄까? 이제부터 네 이름을 노래의 날개라고 하면 어떨까!”
그러자 피아노는 새색시처럼 귀엽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피아노도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가끔 아딧줄이 사람이 없는 예배당에 올라가서 혼자 피아노를 칩니다. 교회마당을 서성이며 아딧줄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습니다. 피아노 소리에 나무도 풀도 하늘의 구름도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나는 우리교회 피아노가 어느 사람의 손에 의해서이든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피아노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음이 꽁꽁 닫혀진 사람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는 아름다운 피아노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피아노를 선사한 사람의 고운 마음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