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정말이야? 진짜야?"
"이제 우리 아들 데리고 나가도 돼요?"
25일 오전 11시30분 연세대 수배해제 사무실, 대검 공안부의 한총련 수배문제 조치 소식이 전해지자 사무실은 순간 '울음바다'로 변했다. 사무실에 모여있던 수배자 부모들은 약속이나 한 듯 눈물을 쏟아 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우리 다 같이 박수 한번 칩시다!"
사무실은 '울음바다'에서 곧바로 '웃음바다'로 돌변했다. 곧 여기저기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국에 있는 수배자 가족들이 "정말이냐, 사실이냐"고 묻는 확인 전화. 이어 부모들은 다른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느라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ADTOP@
아들 손 잡고 "사실이냐" 연신 눈물
| | | 인권·시민단체 "한총련 합법 활동 단초 마련" | | | | 검찰이 25일 한총련 '수배해제' 방침을 발표하자 민주화실천가족운동연합·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참여연대 등 6개 인권·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검찰의 발표에 대해 "기나긴 세월을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아야 했던 수배자들의 손발을 풀고 11기 한총련에 대해서는 '혐의확인 시 처리'할 방침을 세워 일괄 소환장 발부하던 방침을 수정한 전향적 조치"라며 "사실한 한총련의 합법적 활동의 단초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또 "이번 조치로 한총련 이적규정 이후 지금까지 계속됐던 탈퇴 강요에 따른 양심의 자유 침해와 학생 자치권에 대한 탄압이라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그러나 "대검의 조치가 그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다"며 "당연직 대의원 뿐만아니라 한총련 활동 과정에서 수배가 내려진 이들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수배해제를 하고 그 방식은 '불기소'를 원칙으로 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이후 검찰이 법적 절차과정에서 더욱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 김지은 기자 | | | | |
현재 7년째 수배생활을 하고 있는 송용한(30. 제5기 한총련 지역간부)씨의 어머니 홍동자(55)씨는 아들의 팔을 붙잡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7년 동안이나 집에 못 오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도 가슴이 아팠는데…" 홍씨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용한씨도 감회가 남다르다. "생각보다 담담하다"고 하면서도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용한씨는 지난 2월 수배해제 사무실이 개소된 이래 유영업(28. 제5기 한총련 의장권한 대행)씨와 함께 사무실 일을 챙겨왔다. 그는 "사무실 사람들은 일단 뒤에서 수배자들이 모두 무사히 풀려나는 것을 본 후 경찰에 출석할 것"이라며 "믿겨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승은(52)씨는 연세대 총학생회실에 있는 아들 신승헌(28·연세대 4년)씨부터 찾아 나섰다. 승헌씨는 5년째 연세대 내의 수배자 생활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승헌씨는 수배생활 중 부친을 여의는 불행을 겪었다. 어머니 이씨는 "이 좋은 날을 못 보고 먼저 가서 어떡하느냐"며 승헌씨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씨는 아들의 등을 연신 쓸어 내리며 "이젠 학교 밖에 나가도 되니 아버지 묘소에 먼저 다녀오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믿기지 않는 듯 "정말 나가도 되는 거야? 잘 확인해 보고 나가자"고 거듭 말했다.
"모든 걸 다 이뤘다, 사실상 한총련 합법화"
강위원 한총련 합법화 대책위 집행국장도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강 국장은 자신이 의장이던 제5기 한총련이 지난 98년 이적단체로 판결 받은 이래 '개인적 부채감'에 시달려 왔다. 강 국장은 "28일이면 출소한 지 2년이 되는데 그 안에 수배문제가 해결돼 개인적 부채감이 씻어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강 국장은 이번 검찰의 발표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애초 한총련은 한총련 대의원이란 이유만으로 수배자가 되는 현실이 바뀌는 조건으로 수배해제를 희망해왔다"며 "무엇보다 제11기 한총련에 대해 대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배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 제일 반갑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이 정도면 내가 바랬던 것은 다 이뤄졌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상의 한총련 합법화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 | "'고진감래' 실감... 실질적 합법화로 평가" | | | 제11기 한총련 의장 특별 성명 | | | |
| | ▲ 정재욱 제11기 한총련 의장이 25일 오후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제11기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25일 오후 1시20분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의 수배해제 방침 발표에 대한 '제11기 한총련 의장 특별 성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정재욱(23·연세대 총학생회장) 제11기 한총련 의장은 "늦었지만 정부당국의 이번 발표가 한국사회 인권보장과 민주주의 발전의 새 지평을 여는 적절한 조치"라며 "이번 조치는 한총련 정치수배 해제와 이적규정 적용반대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대와 수배자 부모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 의장은 특히 이번 조치가 제11기 한총련 에 대한 '실질적인 합법화'라고 평가했다.
정 의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발표는 한국사회의 인권보장과 민주주의 발전의 새 지평을 여는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한다"며 "특히 11기 한총련부터는 대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괄 수배하는 관행을 종식한 것은 사실상 한총련의 합법적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 의장은 이미 구속돼있던 한총련 대의원 윤아무개씨 등 2인의 구속취소에 대해서도 " 전향적인 조치"라고 언급했다.
정 의장은 검찰이 수배자 중 일부에 대해 불구속 수사 결정을 내린 것과 제11기 한총련을 어전히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한 데 대해서는 "한총련 관련 정치수배자 전원에 대한 조건 없는 수배해제와 제11기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 적용 불가 조치가 함께 돼야 함을 강조한다"며 "앞으로 한총련은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총련은 25일 오후 4시부터 '수배문제 책임자 전국회의'를 열고 향후 검찰의 수사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침을 정할 예정이다.
다음은 제11기 한총련 및 수배자 가족과 나눈 일문일답.
- 경찰에 모두 출두, 조사를 받을 것인가?
"오늘 오후 4시 '수배문제 책임자 전국회의'를 연다. 이 회의를 통해 향후 수배자들의 대응 방향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이번 조치를 부족하나마 전향적이라고 생각하므로 최대한 수용하는 방안으로 정할 계획이다."
- 아직도 대검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보고 있는데 '사실상 합법화로 보는 근거는?
"이전 이적단체 규정의 핵심(문제)은 각 기수 대의원에 대한 일괄 수배 조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뜻이니 환영한다. 사실상 한총련이 정상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합법화로 본다.
이후에 제11기 한총련 공개 사무실 개소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합법적인 활동을 할 생각이다."
- (수배자 가족에게) 현재 심경이 어떠한가?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 검찰이 무엇보다도 지난 세월 동안 우리 한총련을 그렇게 이적규정으로 굴레를 씌운 게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보다 크게 시인하고 한총련을 적극적으로 자유 보장하는 선언을 시원하게 해줬으면 했지만 첫 술에 배부르겠는가.
수배자 가족들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자식들 수배해제에 대해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활동을 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우리 자식 뿐 아니라 국민 누구라도 이와 같이 억울하게 억압받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서는 국가보안법이 가장 문제이다. 이를 근거로 주사파나 사상가로 모는 것은 불합리하다.
가정에서 살림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자식 때문에 거리로 나와 피눈물 흘려왔다. 오늘도 이곳까지 오는 내내 차 안에서 울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좀 더 이 나라가 잘 되고 젊은 학생들이 자유를 보장받고 언제든 정의를 목소리 높여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시 일어설 것이다."
"검찰도 애썼어요"...한 수배자 어머니의 전언
'한총련 의장 특별성명 발표 기자회견'이 끝나자 현장에 있던 수배자 부모들은 모두 일어서 손을 맞대고 "행복합니다!""그동안 도와주신 분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또 한 수배학생의 어머니는 "검찰도 애썼다"며 "꼭 이 얘기를 전해달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박제민(25·수배 4년, 경기대 경영학과 3)씨의 어머니 김성옥씨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바로 전날인 24일에는 지난 4월 구속된 아들 박씨가 선고공판에서 3년간 형을 유예 받고 석방됐던 터다.
김씨는 "50여일간 계속했던 '삭발·천막농성'과 지난 21·22일 폭우 속에 경찰청과 청와대 앞에서 포승줄로 몸을 묶었을 때가 가장 기억난다"며 "특히 포승줄 시위 때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소복을 입고 몸을 묶었었다"이라고 돌아봤다.
지난 4월부터 거의 매일같이 거리에 나섰던 이들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김지은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