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못 낳던 어미는 소반 위에 정화수 떠놓고 삼신할미에게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 점지해달라고 밤낮으로 치성(致誠)을 올렸고, 성장하여 대처에 나가면 자식의 안녕과 성공을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돌이 되면 돌상, 결혼하면 혼례상, 첫날밤의 합환상, 객지 주막에서 국밥에 탁주 한 사발 겸한 개다리소반, 올망졸망한 식구들과 보리고개 넘기며 밥 대신 한숨으로 차린 밥상, 예순까지 무병장수하여 받는 환갑상, 늙고 병들어 기력이 다하면 약사발, 죽 사발조차 들지 못하여 상을 물려야 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유랑을 떠나던 이들에게도 온갖 세간이며 소(牛)까지 버리고 가도 어김없이 이것만은 등짐에 힘겹게 매달려 동행하였으니, 이처럼 소반은 우리네 고단한 삶의 고개를 함께 넘어온, 피붙이나 다름 없는 동반자였다.
기물을 받치는 도구로는 탁(卓-높은 것, 탁자), 반(盤-다리가 아주 짧거나 없는 것, 쟁반), 상(床-높이가 25~30㎝ 내외) 등이 중국으로부터 전해져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생활용구로 쓰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주거공간이 온돌방의 평좌식(平坐式) 구조로 정착되면서 탁은 의식이나 제사용으로만 쓰이고 상과 반만이 일상생활에 쓰였는데 이땅에서는 상과 반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고 소반으로 통칭해왔다.
기능면에서의 소반은 침실, 거실, 식당이 분리되지 않은 옛 생활공간에서 식기를 옮기는 쟁반의 역할과 아울러 방안에서는 긴 다리를 가진 상의 쓰임을 가졌는데, 식사 후 상을 내감으로써 좁은 공간은 다시 넓어져 다리를 뻗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현재 이 땅에는 나주반, 통영반, 해주반 등이 전승되고 있으며 이중에서도 나주반은 조선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실용성이 뛰어난 형식과 아름다움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4각반(四角盤)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잘 지어진 고건축(古建築)을 연상케 한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다리는 가뿐히 솟아올라 운각에 이르고, 운각은 당초문(唐草紋)으로 굽이치며 상판(천판)을 버티고, 조선미인의 도톰한 입술 마냥 모서리를 에돌아나간 변죽은 상판을 부드럽게 감싼다.
운각에서 출발한 다리는 족대에 가까워질수록 바깥으로 벌어지는 ‘안오금’을 주니 옛 건축의 기둥 세우는 법과 다르지 않은데, 활처럼 팽팽한 가락지는 기둥끼리를 든든히 이으면서 영락 없는 서까래 노릇을 한다.
나주반은 현재 도지정무형문화재 14호 김춘식(68세)씨가 8.15해방을 전후하여 사라진 나주의 재래식 목물방 세 곳 중 ‘이씨방’에서 기술을 전승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작과정에 쇠못은 사용되지 않고 모든 부분을 짜맞추는데 35개 이상의 대(竹)못이 들어간다. 제작도구도 톱이나 대패보다 칼을 많이 쓰는데 잔손질이 많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상판(천판)의 재료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쓰고, 기둥이며 운각의 자리엔 소나무를 쓴다. 풀은 아교를 서너 번씩 문질러 바른 뒤 굳을 때까지 끈으로 동여매 두는데 동갈민어의 부레를 최고의 재료로 친다.
칠은 옻칠을 기본으로 가을에 채취한 옻나무의 수액을 그대로 걸러 사용하는 생칠(生漆)과 옻나무를 태워 정제한 칠에 철분이나 안료를 섞어 만든 주칠(朱漆)과 흑칠(黑漆)이 있으며 지금은 단절되었으나 금빛 나는 황칠(黃漆)을 한 나주반은 궁중에서만 사용하는 최고급품이었다.
김춘식씨는 4각반 외에도 일주반(一柱盤-단각반單脚盤, 외다리소반), 12각 호족반(虎足盤), 개다리소반(狗足盤) 등 나주반으로 분류되는 모든 형식의 소반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내일모레가 칠순을 바라보는 그는 아직도 작업실에 들어가면 12시간 이상씩을 일한다고 한다.
“맨들기는 내가 허지만 완성하는 것은 정성 들여 쓰는 사람의 손인 것이요. 요새 사람들은 사간 뒤에 상이 귀하다고 신주단지 모시듯이 꽁꽁 묶은 채로 쳐박아논디, 그러믄 상이 화가 나서 터져, 목물(木物)은 사람하고 같이 숨쉬고, 쓰다듬어 줘야 써.”
“묵고 살자고 시작한 일이지만 감히 상이라는 것이 뭣인지 안 뒤부터는 일하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 옛날에 임금님이 나라에서 제일 미련한 놈 잡아오라 하면 제일 가난한 놈 잡아간다고 했는디, 지금은 이 김춘식이 잡아가야 할 것이여.”
허허 하며 웃는 그의 얼굴에서 눈앞의 이익만을 좇아 영악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준열한 꾸짖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