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取중眞담'을 쓰고 있습니다. 저번 취중진담은 새만금 방조제에서 겪은 일에 대해 썼습니다. 그리고 한달이 조금 지난 지금, 저는 일주일 전(22일) 핵폐기장 시위현장을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시위는 제가 본 시위 중 가장 격렬한 모습이었습니다. 독자들에게도 전쟁터같던 22일 상황은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취재차 부안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뒤늦게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독자들의 편지 몇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메일 중 절반은 "좋은 기사 잘 봤다, 고맙다"는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의경도 많이 다쳤고 불쌍하다, 악의적인 보도 하지마라"는 내용입니다. 다른 언론을 훑어봤더니 그날 상황을 '과격시위'라고 다룬 곳도 있고, '강경진압'이라고 다룬 곳도 있더군요.
저는 당연히 의경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짜증스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위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불쌍하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불쌍하기로 따지면 군민들도 매한가지지요.
뒤늦게 확인한 이메일, 절반의 격려와 절반의 질타
당일날 군청 앞에 도착한 뒤 1시간 가까이 시위를 지켜보면서, 그 때까지는 군민들이 심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썩은 새우젓의 냄새는 아주 고역이었습니다. 군민들 일부는 취해있었고, 대부분이 흥분했습니다. 뒤에서 젓갈을 던지는 바람에 앞에 있는 시위대도 젓갈을 맞았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환경운동가들은 그날 올라갈 일이 걱정이었을 겁니다.
저 역시 가방에 새우젓이 흠씬 묻었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새우가 말라붙은 가방을 메고 있다가 짬을 내어 인근 화장실에서 젓갈을 씻어냈습니다. 그래도 냄새는 쉬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민망하게 젓갈냄새를 푹푹 풍기며 다녔습니다. 군민들의 '불쌍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유쾌한 일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날 시위에서 더 문제였던 것은 경찰들을 향해 돌진한 트럭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장면을 제대로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모습을 보았을 뿐 트럭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전해듣기로는 돌발적인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다친 경찰 중 한 명은 중상을 입어 다음날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수술경과는 좋은 편이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지는 추후 경과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당시 트럭을 몰았던 군민은 그날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진압을 바라보면서 감정이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몰려오는 경찰에게 쫓겨 저도 도망을 가고 있었는데 바로 제 뒤에 있던 군민이 넘어졌습니다. 경찰 4명이 넘어진 그 군민을 향해 방패를 휘두르더군요.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경찰을 막아야 할지, 우선 재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 할지…. 사실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피할 곳을 찾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뛸 수도 없었습니다.
이도 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른 군민들이 경찰들을 가로막았고 넘어진 채 방패에 찍히던 군민은 제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부축을 받아 피신하고 응급차에 실려갔습니다. 군민들의 시위가 '유쾌하지 못했다'면, 경찰의 진압은 '공포'스러웠습니다.
그 뒤로도 군청 앞 대치상황은 계속됐고, 군민들은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깼지만 전처럼 새우젓이나 각목을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치가 계속되자 경찰은 다시 한번 진압에 나섰습니다. 전화로 현장상황을 송고하는 동안에도 진압이 시작됐고, 저는 방패에 밀려 넘어졌습니다. 뒤이어 달려오는 경찰들에 채이면서 "빨리 비켜"라는 성난 목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베테랑 경찰 VS 초짜 군민들
당시 경찰들도 군민들도 모두 흥분해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이리 와봐"라며 으르렁대고 욕하며 싸웠습니다. 둘 다 흥분했고 둘 다 맞았고 둘 다 불쌍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따지자면 저는 군민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경찰들은 방패와 곤봉을 들고 헬멧으로 무장까지 했지만, 각목과 철근을 든 일부 사수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군민들은 새우젓과 돌멩이만을 들었습니다. 나름대로의 '무기'는 있었지만 사실상 맨몸으로 저항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날 다친 경찰들은 대부분 찰과상 등 경상이었던 데 반해 군민들은 피부가 찢겨져 봉합하거나 목뼈,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이었습니다.
군민들 손을 들어주고 싶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경찰은 조직된 베테랑이지만 군민들은 조직되지 않은 '초짜'라는 사실입니다. 서로 흥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언제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 방패와 곤봉을 지닌 경찰은 명령체계가 있는데다 여러번의 진압경험으로 침착성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군민들은 어떻게 하면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지 전략조차 없었습니다. 혼란상황에서는 행동이 과격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22일 시위 도중에는 '사망설'까지 흘러나왔습니다. 저도 지켜봤습니다만, 그 군민은 머리 왼쪽에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었을 뿐 아무리 봐도 죽은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군민들은 "분명히 사람이 죽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군민은 저에게 다가와 "월남전에도 참전해봐서 잘 아는데 살았을 리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다른 군민은 "돌던지는 것은 폭력적이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찰이 먼저 최루탄을 쏘았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이 쏜 것은 분명 휴대용 소화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군민은 "아니다, 최루탄이다"라고 끝까지 우겼습니다. 다른 군민들 역시 경찰의 소화기 세례를 최루탄으로 오인하고 과격하게 대응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흥분한 군민, 통하지 않는 지도부 통제...
누가 말릴 수 있나
이런 상황이니 시위 지도부의 통제도 당연히 잘 먹히지 않습니다.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등 성직자들이 경찰과 군민들 사이를 막아서고 중재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노무현 대통령은 반대세력에 대한 강경진압을 주문했습니다. 부안군민들은 이후 집회 제목에 '노무현 정권 퇴진'을 내걸기 시작했고, "지금 부안은 80년 광주같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대로 핵폐기장을 만든다면, 국책사업은 계속될 지 몰라도 그 과정은 여전히 오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미 늦었지만, 참여정부와 부안군민의 대화가 더 늦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실 성직자들이 새우젓을 맞아가며 방패에 찍혀가며 시도했던 중재는 정부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 | 새만금과 핵폐기장을 바라보는 부안의 다른 눈 | | | |
| | ▲ 지난 6월 3일 여의도에서 열린 '새만금 사업 논쟁종식 전북도민 총 궐기대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 22일 부안, 정신없이 돌과 새우젓이 날아다니는 사이, 저는 지난 6월의 새만금 방조제 시위를 떠올렸습니다.
그 날 방조제에는 주로 군산의 어민들이 올라오긴 했지만, 당시 환경운동가를 때린 어민들과 지금 군청을 향해 분노의 함성을 던지는 어민들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새만금 문제로 취재를 했다면, 저 새우젓이 나에게 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부안 핵폐기장 문제를 다룬 <오마이뉴스> 기사의 독자의견 중에는 "전북 사람들 너무 이기적"이라는 내용이 많습니다. "핵폐기장 반대가 님비"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새만금 사업은 찬성하고 돈이 안 되는 핵폐기장은 반대하는 것은 전북의 두 얼굴"이라는 의견에는 잠시 마우스를 멈추게 됩니다.
새만금 사업에 대한 의견을 물을 때만 해도 "환경이 밥먹여주냐, 빨리 간척해서 공장이라도 세우자"고 말하던 주민들이 지금은 "앞으로는 환경의 시대다, 청정부안에 핵이 무슨 소리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지난번 부안에 갔을 때만 해도 부안성당 앞에는 "문규현 신부 각성하라"는 전단이 돌았는데, 이번에는 "문규현 신부님은 이 시대의 양심"이라며 칭찬이 자자합니다.
새만금 사업에도 반대하고 핵폐기장에도 반대하는 한 부안주민은 "핵은 인명피해 사례가 확실히 나와있고 그 문제점에 대해서도 알려져있는 편"이라고 말합니다. 확실히 기형아의 끔찍한 사진과 죽어있는 조개의 덜 끔찍한 사진은 충격의 강도가 다를 것입니다.
또 어떤 환경운동가는 "전북의 마음이 그렇다"고 말합니다. 새만금 사업이 처음부터 '전북의 희망'으로 홍보됐고, 이제는 '전북의 자존심'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핵폐기장 문제는 절차상의 비민주성이 그전까지도 찬반으로 나뉘던 부안 민심을 반대입장으로 몰아갔다는 분석이지요.
저는 부안에서 만난 다른 기자와 함께 "부안 군민들이 '핵은 어디에서도 안 된다'고 하던데 이번 일을 계기로 환경에 대한 시각도 바뀌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여론이 바뀐다는 것이 그렇게 쉽겠냐"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주고받았습니다.
새만금 사업과 핵폐기장 유치를 바라보는 부안군민들의 다른 눈은 여전히 저에게 남은 숙제입니다. '환경과 개발의 공존'이라는 목표가 추상적이지만, 이번 싸움을 통한 환경운동과의 연대가 이 두 눈을 한 방향으로 모으기를 바랍니다. / 권박효원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