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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부안, 아름다운 저항이 물결치고 있는 부안 투쟁의 한 중심에 조용히 그러나 분주히 움직이는 한 여성이 있다.

"제가 하는 일은 거의 다 '챙기는 일'이에요. 무슨 일 있으면 누가 그 일에 적합한지 배치하고 연락하고 그런거죠, 뭐."

핵폐기장 백지화·핵발전 추방 부안군대책위의 총무, 조미옥씨. 대책위 집행부가 모두 수배를 받아 피신해 온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핵폐기장 반대 농성장이 돼버린 부안성당에서 투쟁하는 사람들 끼니를 챙기는 밥 당번부터 핵폐기장 위험성에 대한 면단위 교육 강사를 배치하는 것까지, 그녀의 전화는 참으로 분주하고 중요하다.

"아이들을 위해 목숨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7월 14일 김종규 부안군수가 우리 몰래 유치신청을 했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군수 하나가 이렇게 우리 군민 전체를 기만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에게 뭘 남겨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사생결단을 내야겠구나, 끝까지 목숨걸고 해야겠구나 그런 심정이었어요."

ⓒ 참소리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이 자리에 섰노라고, 지난 14일 '핵폐기장 유치선언 무효 부안군민대회'에서 맨 먼저 그녀는 삭발을 했다. 이후 부안의 어머니들은 핵 없는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겠노라고 너도나도 눈물을 머금은 삭발의 물결을 이뤘다.

"안에서 더욱 답답할 거예요. 더위도 잘 타는 사람인데…. 이 참에 마음수양한다 생각하고 담배도 끊고 핵에 대해 공부도 하라고 동생편에 편지 전했어요."

남부안농민회 회장을 맡고 있는 남편이 지난 22일 아침 느닷없이 연행되고 대책위 총무를 맡아 일해온 자신마저 수배가 떨어지는 통에 아직 면회조차 가보지 못한 그녀는 바빠서 남편 보고싶을 새도 없다며 그리운 마음을 애써 모른척한다. 아이들도 친척집에 맡겨져 이들 가족은 하루아침에 이산가족이 됐다.

"22일 1만인 대회라 대회명칭을 내걸었지만 설마 했는데 진짜로 1만 명 이상이 모이는걸 보니 부안군민들이 정말로 뭉쳤구나 싶어 감격했어요."

부안의 반핵싸움에서 진정한 '주민자치'를 본다

지난달 9일부터 군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할 때만 해도 격포 중심으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주민들만이 농성장을 오갔는데 군수의 독단적인 유치신청이 사실로 발표된 후 인구 7만 명의 부안군에서 1만여 명의 주민들이 앞을 다투어 집회에 참석했다.

"부안 군민들이 이렇게 똘똘 뭉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투쟁기금 들어오는 거 보면 애달픈 사연도 많고, 너도나도 하나가 됐다는 것을 느껴요. 이번 싸움을 통해 부안이 자그마한 해방구가 된 느낌이에요. 이런 것이 진정한 주민자치 아닐까요?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겨서 이렇게 우리가 당한 거잖아요. 주민 스스로 참여하는 생활정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정치세력화 아닌가 생각돼요."

소를 팔아 투쟁기금을 내고, 집회장으로 밥을 해서 나르는 식당들, 초값이라도 보태라며 지푸라기 동아줄에 지폐를 매다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그녀의 고달픔은 어느덧 녹아내린다.

"주방에서부터 바뀌어야 핵폐기장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하다보니 당연 반핵 운동가가 되어갔고 핵없는 세상을 위해선 살림하는 주부들부터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그녀.

투쟁을 통해,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이 조금씩 크는 것 같다며 겸손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 속에 아름다운 투쟁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금 부안의 핵폐기장 반대투쟁의 힘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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