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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 산 엽서이다. 그림이 환상적이다.
베네치아에서 산 엽서이다. 그림이 환상적이다. ⓒ G. Zerella
나는 20년 가까이 아내와 살면서 결혼기념일이든, 생일선물이든 어떤 종류의 선물이든지 아내에게 한 적이 거의 없다. 옷을 사 준 적도 없다. 사는 게 빠듯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었을 테고, 또 아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탓이었을 게다.

10년 전 6월, 나는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 보았다. 우리 나라 제주도도 한번 못 가보았는데 유럽여행이라니 웬 호사(好事)인가? 그런 행운이 왔다. 왕복 비행기 삯과 최소한의 경비를 갖고 거의 무전여행 수준으로 15박 16일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보았다. 수박겉핥기 식이었다. 말이 유럽여행이지 하루에 밥을 두 끼씩만 먹었는데,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갖고 간 쌀로 밥을 지어 고추장에 비벼먹었다. 식당에서 밥을 사먹은 건 딱 세 번 밖에 없었다.

서울을 떠나 열흘 째 되던 날, 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었다. 벌써 집을 떠나온 지 열흘이 지났는데 아무런 기념품도 선물도 사지 못했다. 내게는 신용카드도 없었고 달러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에게 줄 선물을 하나 사야 되지 않겠는가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그 때 까지 선물을 사 본 경험이 없어 망설여졌다.

한참 뜸을 들이다 부다페스트 기차역 노점에서 화장품 하나를 샀다. 작은 분첩(粉貼)이었다. 여자들이 화장할 때 보았던 물건이었다. 모조품 목걸이도 하나 샀다. 아내에게 비싸게 주고 샀다고 했지만, 분첩은 우리나라 돈으로 2천 원쯤 했던 것 같다. 달러를 헝가리 돈으로 환전한 것이 없어 선배에게 돈을 빌렸다가 나중에 갚았던 것이 기억난다.

‘아내가 이걸 받고 나서 뭐라고 할 것인가?' 그게 궁금했다. 부다페스트 역에서 우리 일행은 독일 함부르크로 가는 장거리 열차를 탔다. 엄청난 거리였다. 열차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지나간다. 나는 일행들 틈에서 빠져 나와 나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피곤하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프라하 Hlaani역에 잠시 열차가 멈춰 섰다 다시 차가 움직인다. 차창 밖으로 내다본 프라하는 참으로 아름다웠고 예전에 보았던 프라하의 봄이 오버랩 되면서 묘한 기분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드문드문 전신주가 지나가고 / 가파른 산자락에 소나무가 빼곡하다. / 프라하의 Hlaani역에서 / 함부르크로 가는 길 / 잠깐 멈춰선 간이역에는 / 다소곳 민들에 한 송이가 피었다 / 아, 역내를 비켜서자마자 / 감자 꽃도 무리 지어 / 낯선 나그네에게 친숙한 미소를 보낸다. / 기차를 내내 따라오는 강물 위로 / 프라하의 붉은 낙조가 / 서럽게 서럽게 드리운다. (박철의 詩. 프라하)

큰 아들 호빈(아딧줄)에게 보낸 엽서. 우표수집 한다고 떼서 우표가 없다.
큰 아들 호빈(아딧줄)에게 보낸 엽서. 우표수집 한다고 떼서 우표가 없다. ⓒ 느릿느릿 박철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그리움이 몰려든다. 모든 게 그립다. 내가 두고 온 산야, 물 , 아내, 아이들, 교우들, 어머니….

바로 그때 차 문이 열리더니 무장을 한 여자군인이 나 혼자 있는 곳으로 발자국 소리를 내며 들어 왔다. 독일어로 뭐라고 손짓을 해가며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여권을 보여 달라는 것 같다. 지갑에서 여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여권사진과 나를 한참동안 비교해 본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내 배낭을 보자고 한다. 짐칸에 있는 배낭을 내렸다. 배낭끈을 풀라고 한다. 끈을 풀었다. 뭐라고 큰 소리로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내 짐작에 마약 단속을 하는 것 같았다. 배낭 안에 있는 내용물을 다 꺼내라고 한다. 그걸 다 끄집어 내놓으면 일이 복잡해진다. 배낭을 꾸리는 일이 보통 성가신 게 아니다. 하는 수 없이 툴툴거리며 배낭 안에 들어 있던 옷이며, 책, 여행 도구를 꺼내 놓았다. 그런데도 이 여자 군인은 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나한테 마약 냄새를 맡은 것일까? 영어로 ‘나는 여행객이고, 목사다. 나는 프라하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순수한 여행객에 불과하다. 나는 마약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이 여자 군인은 막무가내이다. 배낭에서 물건을 다 끄집어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내가 아내에게 선물로 산 분첩을 열어보라는 것이다. 예쁘게 포장한 걸 뜯으면 다시 어떻게 포장을 하겠는가? 내가 그 대목에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내가 정 의심스러우면, 네가 직접 열어 보란 말이야!”

그 소리가 크게 들렸던 모양이다. 어디선가 총을 든 남자 군인들이 몰려오더니 총부리로 나를 겨눈다. 함께 갔던 우리 일행들도 떠드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우리는 한국에서 온 목사들이다. 너무 단속이 심하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단속을 하면 누가 여길 찾아오겠느냐?”고 영어로 반박을 했다. 그 사람들은 독일어로 말하고, 간신히 사태가 수습이 되었다.

그 여자 군인과 악수를 하고, 내가 좀 전에 소리를 지른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해프닝으로 끝났다. 프라하에 대한 좋은 인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의지를 갖고 있던가와는 상관없이 오해를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요즘 <오마이뉴스>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에게 내가 옛날이야기나 울궈먹는 목사로 보였는가 보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어디쯤 되는 것 같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어디쯤 되는 것 같다. ⓒ 느릿느릿 박철
나는 돈을 벌기 위해(일종의 아르바이트) 인터넷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변화나 변동이 없는 농촌에서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나에게 그런 요소가 왜 없겠는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농촌목회는 치열한 자기성찰이나 정신이 빠지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목회는 실천(프락시스)이다. 내 나름대로 새로운 삶의 모색이 필요했다. 그것이 글쓰기였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이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 독자들이 목사가 목사 본연의 일(?)을 하고 이제 글을 그만 쓰란다. 목사 본연의 일이 무엇인가?

글을 쓰는 사람이 붓을 꺾을 경우, 그것은 어디까지나 글을 쓰는 사람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독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야겠지만, 납득할 수 없는 억지주장에 대해선 나도 물러설 마음이 없다. <오마이뉴스>와 1년을 시리즈로 연재하기로 약속했다. 그것을 성실하게 지킬 것이다. 나의 <느릿느릿 이야기>는 내가 과거에 경험한 따뜻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기도하며 쓴 묵상 등으로 채워져 있다. 전문 작가들은 그런 글을 잡문(雜文)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잡문이든 신변잡기이든, 그것은 내가 체험한 삶의 고백이다.

그 다음, 나는 시(詩)를 쓸 작정이다. 내 나이가 50살이 되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겠다고 내 자신과 약속한 바 있다. 그것을 지켜낼 것이다.

얘기가 조금 엉뚱한 쪽으로 비켜갔다. 프라하 열차 안에서 당했던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왜 이제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나 나름대로의 솔직한 고백이 본래 의도와는 관계없이 허접 쓰레기로 치부되는 것 같아 조금 속이 상했던 모양이다. 내가 속이 좁아 그런 것이다. 그냥 훌훌 털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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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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