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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류/리재명(북한)/두 줄기 물 흐름이 하나로 된 듯을 표현
합류/리재명(북한)/두 줄기 물 흐름이 하나로 된 듯을 표현 ⓒ 한국민족서예인협회
조선의 선비는 4예(四藝) 즉,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걸고, 꽃을 꽂는 일과 함께 삶을 살았다. 특히 문방사우는 선비들의 필수품이어서 먹의 향내를 맡으며, 난을 치고, 글씨를 쓰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멋은 먼 나라의 일이 되어 버렸다. 동네마다 있던 서예원은 이제는 동사무소의 주민자치센터 등에서나 겨우 볼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대인들은 그저 컴퓨터에 매몰되고, 스피드, 섹스, 영화, 게임 등에 빠져서 이제 자기들만의 향은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붓끝으로 자기 내면의 멋을 조용히 찾아가던 선비들의 멋은 이제 어디에도 그 흔적이 없다.

이런 때에 정말 소중한 전시회가 열렸다. 남한의 서예가들은 물론 북한, 재일동포들까지 같이 한 '민족서예교류전'이 지난 8월 6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 인사동의 물파아트센터와 전주의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나의 조국/변순철(북한)/네 글자로 절대 남에게 줄 수 없는 귀중한 존재라는 마음을 표현
나의 조국/변순철(북한)/네 글자로 절대 남에게 줄 수 없는 귀중한 존재라는 마음을 표현 ⓒ 한국민족서예인협회
이 전시회엔 북한의 대표적인 서예가 오광섭 외 10명이 11점, 재일동포 고려서예연구회장 장윤식 외 27명 51점, 남한 한국민족서예인협회장 여태명 외 35명 68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대부분 붓글씨 작품이지만 일부 한국화와 전각 작품 등의 다양한 내용을 보인다.

전시작품을 보면 6·15 공동선언 세 돌을 맞아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러 방면에서 눈녹듯이 변해가는 모습을 표현한 북한 리학만의 <눈석이>, 두 줄기 물 흐름이 하나가 된 것을 표현한 북한 리재명의 <합류>, 재일동포 리정자의 <파스포트가 필요없는 삼팔선의 새들>, 남한 장운식의 전각화 <산 너머 남촌에는>이 특히 눈에 띄었다.

지난 8월 10일에는 전주 역사박물관에서 ‘민족서예교류전 국제학술대회’도 있었다. 여기서 발표된 논문은 재일고려서예연구회 사무국의 <일본에서의 서예활동 상황>, 원광대 김수천 교수의 <5, 6세기 서예사를 통해 본 한국서예의 정체성>, 원광대 여태명 교수의 <한글 민체의 자형미 고찰> 등이다.

아쉽게도 마지막 날 전시장을 찾았고,전주의 작품들은 직접 보지 못해서 이 의미있는 전시회를 독자들에게 미리 전달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한국민족서예인협회장 여태명 원광대 서예학과 교수를 인터뷰 한 내용을 소개한다.

한국민족서예인협 여태명 회장
한국민족서예인협 여태명 회장 ⓒ 김영조
- 어떻게 서예교류전을 하게 되었습니까?
"지난 해 부산아시안게임에 온 재일 ‘조선인 문학예술가동맹’ 김광성 서예부장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 민족간의 서예교류전의 필요성을 서로 공감하여 추진하기로 합의하였고, 그 뒤 북한 쪽의 동의로 열게 되었습니다."

- 교류전을 확대할 계획은?
"물론 계속해서 열 것입니다. 앞으로는 중국의 연변 조선족 동포, 러시아의 고려인 동포들과 함께 할 계획이며, 나아가서 유럽, 미국 등까지 확대하여 진정한 의미의 민족교류전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 교류전을 열면서 혹시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면?
"재일동포들은 고국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용비어천가/이순분(재일)/용비어천가 제2장의 글/35×135cm
용비어천가/이순분(재일)/용비어천가 제2장의 글/35×135cm ⓒ 한국민족서예인협회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제게 왜 고국에 가지 않느냐고 물어오면 난감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게 되어 이젠 제자들에게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습니다. 부모님께선 고국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셨는데 자식들에겐 눈물을 흘리시면서 꼭 가보라고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오기 전 날 흥분에 잠을 설쳤지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와보니 두려움은 없어지고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그들을 보면서 민족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행사들은 계속해서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교류전을 여시면서 남북한과 재일동포 작가들의 작품 특징을 말한다면?
"북한은 힘있고, 구호적이면서 주체적인 서체라고 말하면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체들을 청봉체(靑峯體, 일명 청봉일호체 靑峯一號體)라고 하는데 백두산 청봉밀영지에서 이름을 딴 인쇄서체라고 합니다. 재일동포들의 작품은 북한, 남한, 일본의 영향을 고루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남한 작품들은 기존 서단의 의식에서 벗어난 젊은 세대 특히 대학에서 서예과를 새롭게 전공한 사람들의 신선하고 실험적인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삼팔선의 새들/리정자(재일)/파스포-트가 필요없는 삼팔선의 새들/25×135cm
삼팔선의 새들/리정자(재일)/파스포-트가 필요없는 삼팔선의 새들/25×135cm ⓒ 한국민족서예인협회
-교류전을 열면서 느낀 문화교류와 통일에 대한 생각은?
"중국의 예를 들자면 문화에 앞서서 경제인들이 먼저 들어가 경제교류를 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정치, 경제적인 교류보다 먼저 문화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문화에 자부심을 가지는 일이 먼저 추진됨으로써 통일에 크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 지금 서예계에 바라는 바는?
"조선시대와 달리 지금은 지필묵이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의 서예는 사회 그리고 대중과 너무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 속에 필요한 서예가 되어야 서예의 아름다움은 지속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예가 족자나 액자 속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벽지, 커튼, 넥타이, 방석 등에 활용될 수 있어야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서예 교육 현실은 어떤가요?
"지금 공식적인 교육기관은 전국 6개 대학에 서예과가 있으며, 매년 150여 명의 신인이 배출됩니다. 다만 대학 졸업 뒤 관련된 일을 할 여지가 극히 좁습니다. 겨우 교습소에 만족해야 하며 현재는 교사자격증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나될 꿈을 안고/류일선(재일)/50×45cm
하나될 꿈을 안고/류일선(재일)/50×45cm ⓒ 한국민족서예인협회
여 회장은 고리타분한 선비가 아니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열려있는 자세를 가졌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 그에게서 회장의 권위는 없다. 회장보다는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해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말에서 민족서예의 앞날이 보인다.

현대인은 이제 빨리빨리 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생각할 틈도 마음을 아름답게 할 여유도 없다. 그저 돈과 명예에 함몰되어 이웃을 바라볼 여지가 없는 모습이 도처에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현대인을 옥죄고 있다. 여기에서 의미있는 행복한 삶이란 없다는 생각이다.

이 때 서예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여유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특별한 도구다. 동시에 이런 민족교류전은 우리의 통일을 한발 빠르게 실현해 줄 강력한 무기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서예에 애정을 갖음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통일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춤/김종건(남한)/춤을 여러가지 글씨체로 씀/50×100cm
춤/김종건(남한)/춤을 여러가지 글씨체로 씀/50×100cm ⓒ 한국민족서예인협회

수막새/김진돈(남한)/25×35cm
수막새/김진돈(남한)/25×35cm ⓒ 한국민족서예인협회

산 넘어 남촌에는/장운식(남한)/김동환의 시 "산 넘어 남촌에는" 시구절을 전각으로 씀/50×140cm
산 넘어 남촌에는/장운식(남한)/김동환의 시 "산 넘어 남촌에는" 시구절을 전각으로 씀/50×140cm ⓒ 한국민족서예인협회

님의 얼골/조동준(남한)/50×65cm
님의 얼골/조동준(남한)/50×65cm ⓒ 한국민족서예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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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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