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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텔레비전 광고에서 천사같은 예쁜 어린이를 덮으며, 빨간색 바탕에 영문자만 나열된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고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Have a good time"

이 게 무슨 뜻일까? 나는 “좋은 시간 되세요”라고 뜻을 풀어 본다. 얼마나 따뜻한 덕담인가? 하지만 이 좋은 덕담이 영어를 모르는 사람에겐 무용지물이다. 물론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은 이 정도의 영어는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어를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그저 영어란 것 밖에는 알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 공기업이었던 '한국통신'이 아예 상호를 400억원이나 들여 영문자인 'KT'로 바꾸더니 광고에 내보낸 구호는 “Let's KT”였다. 이건 무슨 소릴까? 나는 영어가 짧아서 아직도 그 뜻을 잘 모른다. “KT로 하자”일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러더니 자회사인 이동통신회사의 이름은 'KTF'로 해버린다. 그리곤 구호를 “Have a good time"으로 하는 데까지 발전한다. KTF가 영어를 이해하는 사람들만 가입을 시키고, 그들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가? 나아가 미국 또는 영국 등 영어권 나라 사람들만을 위한 기업인가? 이 영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016 이동통신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

나는 마케팅을 잠시 공부한 적이 있다. 마케팅 분야에서 불후의 명저로 알려진 책 <마케팅 불변의 법칙(알 리스, 잭 트라우트)>을 보면 그 법칙 중에 “집중의 법칙”이 있다. 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개념은 잠재 고객의 기억 속에 한 단어를 심는다는 것을 강조한 이야기다. 또 여기엔 “인식의 법칙”도 있다. 기업이나 상품 이미지를 좋게 꾸미려는 노력일 것이다. 아마도 KTF도 이러한 원칙을 이용한 마케팅이 아니었을까?

이런 광고기법은 우리나라에서 KTF 뿐 아니라 이전에도 있어 왔다. LG는 “With LG"를 썼었다. "LG와 함께”란 뜻일까? 상호의 경우 아예 영어인 것들을 보면 TG, SK, POSCO, BYC 등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해 한글날 한글세계화운동본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에 등록된 회사 이름들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598개 회사 가운데 한국어 이름으로 된 회사는 398개, 66%로 아직 희망적이다. 하지만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831개 회사 가운데 우리말 이름을 쓴 회사가 228개로 27%에 불과했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영어로 회사 이름을 정하고, 영문으로 구호를 만들면 영업이 잘되고, 수익성이 올라갈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만일 외국에 주로 상품을 파는 기업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앞의 기업들을 보면 외국보다는 주로 국내에서 상품을 팔고,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상호와 구호를 보면 그 기업들이 어떤 상품을 팔고, 어떤 사업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영문자도 약자로만 쓰니 더욱 가관이다.

하지만 이런 광고기법은 자칫 잘못하면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위 책과 같은 글쓴이의 또 다른 책 'POSITIONING'에는 “의미없는 이름의 함정”이라는 단원이 나온다. 거기에 보면 <비즈니스위크>의 조사결과가 나온다. 이 결과에 의하면 영문 이름의 첫 글자들을 합하여 만든 이름 즉, 이니셜(intial)을 쓴 기업에 대한 인지도는 49%인 반면, 뜻을 알 수 있는 이름을 사용한 기업들에 대한 인지도는 68%로 훨씬 더 높았다고 한다.

미국의 큰 항공사들 하면 <팬 아메리카 에어라인>,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트랜스 월드 에어라인>이 있다. 그런데 <팬 아메리카 에어라인>은 뜻을 알 수 있도록 <팬암:PAN AM>으로 바꾸고, <트랜스 월드 에어라인>은 'TWA'로 바꿨다고 한다. 그런데 'TWA'는 연 3000만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광고비로 쏟아 붓고도 다른 두 항공사에 비해 선호하는 승객의 수가 반 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최근엔 국민은행이 주택은행과 합병하고 거대은행이 되면서 간판들을 모두 바꿨다. 그런데 그 간판엔 'KB*b'란 영문자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있고, 국민은행이란 한글 글씨는 아주 작은 크기로 달라 붙어있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별)에 옹색하게 달라붙은 은행을 연상했다면 지나칠까? 또 만일 국민은행임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KB*b란 로고만 보고 국민은행임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상호와 구호보다는 오히려 아름답고, 정감있는 우리말을 찾아서 회사 이름으로, 구호로 쓰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발 기업들이 거액의 예산을 투자하여 문화사대주의에 찌들은 행태를 보이지 말고, 민족적 자존심을 챙겨주길 간절히 바란다.

아직도 우리나라엔 재벌기업이라도 영문상호로 가지 않은 기업들도 있다. <삼성전자>가 그렇고, <현대자동차> <대우건설> <현대중공업> 등도 세계를 향한 기업들이면서도 여전히 국내에서는 영문자 상호를 쓰지 않는다. 그 기업들이 영문자 이름을 쓰지 않아 마케팅에서 뒤졌다고 우길 수 있을까?

또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순 우리말로 상호를 쓰는 기업들도 있다. <풀무원> <빙그레> <한솔제지>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은 아름다운 우리말 상호들이지만 그런 이름을 썼다고 해서 영업이 어려워지거나 망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문화관광부는 2000년 4월부터 연말까지 한국어교육연구회(회장 이석주)에 의뢰해 서울 7곳과 경기 2곳, 지방 주요 도시 8곳 등 총 17개 지역에 대한 옥외광고물(간판) 언어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었다.

조사결과 외래어와 한자어 간판이 전체 81.2%에 이르는 반면 고유어 간판은 12.67%로 나타났다고 한다. 조사기관은 외래어 간판이 영업에 더 보탬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이런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우리말로 간판을 바꾼 경우(55.9%)가 외래어로 바꾼 경우(54%)보다 영업실적이 높아졌다는 응답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국내에 수입된 중국의 세계적인 명차, 보이차는 95% 정도가 가짜라는 진단이 나왔는데도 보이차를 마시는 것이 차인이 되는 지름길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여 열광하는 모습은 문화사대주의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런 기업들의 생각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문자를 써야 유식하고, 세계화가 되고, 영업이 잘 될 것이라는 근시안적인 판단이 오히려 기업을 망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애국지사들은 창씨개명에 반대하여 갖은 옥고를 치렀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강압이 없는데도 영문자로의 개명을 스스로 서두르는 기업들을 보노라면 자진하여 창씨개명을 한 매국노들이 생각이 난다.

제발 우리의 기업들이 민족적 자존심이, 철학이 살아있는 기업으로 존재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 겨레에게, 세계인들에게 칭찬받는 일이 아닐까? 증권시장에 등록된 기업의 대부분이 우리말 이름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올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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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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