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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연작2.
갈매기 연작2. ⓒ 느릿느릿 박철
교동은 섬이다. 나는 가끔 섬이 가져다주는 영감에 깊이 빠져들 때가 있다. 섬은 다양한 그림을 담고 있다. 하느님이 자연을 통해 허락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사물을 대하면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 의미를 가져다준다. 교동은 서해안 최북단에 있는 섬이다. 섬은 육지에 비해 작지만,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따뜻하고 모든 걸 품어주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섬이 보여주는 그림 중에 하나가 갈매기이다. 교동에 가는 배를 타기위해 창후리 선착장에 들어서면, 갯벌에 수백 마리의 갈매기떼들이 집결해 있다. 창후리에서 교동에 가는 배를 타고 출발하면 수십 마리, 어느 때는 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따라온다.

나는 25년전, 서울 허리우드 극장에서 ‘갈매기의 꿈’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때가 20대 중반의 청년시절이었는데, 그 전에 이미 리차드 버크의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Jonathan Livingston Seagall)이라는 소설에 심취해 있었다. 나는 그 영화를 이틀 동안 무려 다섯 번을 보았다. 갈매기 조나단을 통하여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어렴풋하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현대인의 신화(神話)이다. 갈매기 조나단은 사람들이 먹다가 버린 빵부스러기나 썩은 생선대가리를 얻기 위하여 보기 흉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료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갈매기 연작1.
갈매기 연작1. ⓒ 느릿느릿 박철
조나단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높이, 완전하게 날 것인가?’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날마다 계속되는 심한 비행훈련으로 뼈와 앙상한 깃털만 남은 아들 조나단에게 아버지가 충고도 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갈매기 조나단은 계속 비행훈련을 한다. 시속 70마일로 높은 하늘에서 활강하는 연습을 하다 방향을 꺾지 못해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바닷물 속에 쳐 박혔을 때, 이상하고 공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쩔 수 없다. 나는 하나의 갈매기에 불과하다. 나는 나의 본성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 내가 만일 빠르게 비행하려면 매처럼 짧은 날개를 가졌어야 할 테고, 고기대신 쥐를 먹고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나단은 그 힘든 고속 비행연습을 중단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갈매기 조나단은 날개가 짧은 매가 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그래서 조나단은 자신의 육체적 제한을 극복하고 드디어 고속비행에 성공한다. 그러나 동료세계로부터 이단자로 몰려 재판을 받고 추방을 당한다. 동료들로부터 추방을 당한 갈매기 조나단은, 타계(他界)에서 다른 갈매기를 만나 나는 묘기의 절정을 배운다.

갈매기 연작3.
갈매기 연작3. ⓒ 느릿느릿 박철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엔가 도달하는 것, 혹은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갈매기 조나단은 이렇게 독백한다.

“하늘은 장소가 아니고, 또 그것은 시간이 아니다. 하늘은 완전하게 되는 거야!”

그는 완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접촉하고 체험한다. 다시 이 세상 갈매기 떼로 돌아와서 다른 갈매기들에게 고속비행을 가르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하나의 갈매기는 자유이며, 제한받지 않는 이상 아이디어라는 것, 위대한 갈매기의 이미지라는 것, 그리고 그대의 전신은 날개 끝에서 날개 끝까지, 그대의 생각 전부라는 것을 이해하라.”

지난 장마 때 저녁 무렵, 나는 남산포 선착장엘 갔었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쇳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나는 차에서 내려 무연(憮然), 그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포구는 어구(漁具)들로 어지러웠다. 그때 뾰죽한 닻 위에 갈매기 한 마리가 비를 맞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갈매기 연작4.
갈매기 연작4. ⓒ 느릿느릿 박철
25년 전, 내가 서울의 허리우드 극장에서 본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이 환생(還生)이라도 한 것인가?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거센 바람에 파도는 점점 거칠어져 갔고, 갈매기는 잠시 후에 자리를 떠났다.

오늘 아침 밖에 나가보니
적송 한 그루가 뿌리 채 뽑히어 널부러져 있다
앞집 헛간 지붕도 날아가고 없다
누렁이도 잘 잤다고 기지개를 하며 개집 밖으로 나온다
비도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어
하늘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기만 하다
그러니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다만 갈매기의 안부가 궁금하다
어젯밤 비바람에
바다를 지키고 있었을 갈매기가 무사한지 모르겠다.
(박철의 詩. 갈매기)


갈매기 연작5.
갈매기 연작5. ⓒ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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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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