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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유형의 죽음이 있습니다. 일생을 편안하게 살다가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복된 고종명(考終命)을 하는 경우도 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장렬하게 목숨을 바쳐 순국하는 거룩한 죽음도 있으며, 고된 삶을 견디다 못해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죽음도 있고, 본인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타인의 위해나 실수에 의해 횡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어떤 형태의 죽음이 됐건 그것은 결코 찬양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치매에 걸려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노인의 죽음이나, 금수에 견주어지는 비인도적 범죄로 사형 집행을 당하는 죽음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또한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지와 신비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없고 미약한 사람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죽음을 들고 나왔을 때, 그가 아무리 하찮고 무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간혹 종교적 신념으로 죽음을 미화하는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제 생각엔 그것도 살아남은 자들의 자위 수단이거나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고육책의 하나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죽음 가운데 가장 안타깝고 억울한 것은 아마도 비명횡사일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그 어떤 예측이나 준비도 전혀 없는 가운데 홀연히 엄습한 낯선 죽음 앞에 당사자는 얼마나 당혹스럽고 설면하겠습니까. 더욱이 자신의 실수나 잘못이 전혀 없이 전적으로 남의 과실에 의해 자신의 목숨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상황에서 의연히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에 대해 모든 게 숙명이고 필연적인 자신의 업보라는 점잖은 말씀은 결국 산 사람들만의 자기변호나 위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맞이한 당사자야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가지만, 뒤에 남은 사람들은 망자의 뜻을 헤아려 그가 미처 다 하지 못하고 간 일을 계승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말 없이 떠난 사람의 뜻을 정확히 헤아릴 방법은 없겠지만, 그렇게 했을 때 그 영령이 조금이라도 편안할 것이라는 믿음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유지를 이어받고 실천하겠다는 약속은 실상 죽은 사람을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산 사람들의 자기 성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원혼이 되어 산 사람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망자를 주체로 한 협박이 아니라 생자를 위한 겸허한 자기 인식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저의 아들은 한국의 항공 우주 분야 학문을 개척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살다가 떠났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그 길을 그는 이공계의 암담한 미래를 들먹이는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랑스러워했고, 밤을 낮 삼아 연구와 실험을 하다가 스물 여섯 살 나이에 실험실에서 산화했습니다. 외국 만화를 컴퓨터로 즐기는 취미 생활 외에 어디에도 한눈 팔지 않고 오직 공부만 하다 떠난 짧은 삶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보내면서 저는 학교측에 두 가지 사항을 요청했습니다. 그 두 가지 요구 사항은 사고의 원인 및 진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밝혀 주실 것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뜬 우리 아이의 유업을 후학들이 계승할 수 있도록 추모 기념 사업을 해주십사는 것이었습니다. 사고의 진상 규명은 이런 불행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져 사고에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문책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고, 추모 기념 사업은 열악한 환경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는 사명감 있는 학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격려하기 위한 가칭 '공학학술상'을 제정하여 운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위해 영결식 때 조문객들이 주신 조위금을 모두 학교에 주겠다고 했고, 제 자신의 개인 자산 일부를 출연할 의사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합의문이 영결식 당일 아침 학교를 대표한 보직자님과 소속 학과 교수님 두 분, 그리고 저와 저의 동료 교수 두 분이 연대 서명하여 간단한 문서로 작성되었습니다.
그 후 학교에서는 학내 전문가들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수사 당국의 조사와는 별도로 20여 일에 걸친 조사 끝에 보고서를 만들었고, 7월 10일 저희 가족과 부상자 가족에게 그 결과를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교직원과 재학생 및 동문들을 대상으로 피해자 돕기 성금 모금 활동도 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보여주신 원장(총장)님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의 따뜻한 배려와 정성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재정을 출연하여 설립한 학교의 성격상 이번 일에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공공기관인 학교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자체의 제도와 규정을 뛰어넘어 일 처리를 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교 관계자들과 몇 차례 대화를 하는 동안에 이 일은 학교 자체의 힘만으로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이 아무리 뜻이 있다 하더라도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일을 추진할 수는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보다 상위 기관에서 이 일을 해결해주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설립기관이자 지휘 감독기관인 과학기술부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래서 우선 그 홈페이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이 부서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장관과의 대화'라는 메뉴가 있습니다. 장관님의 사진과 함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관련하여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사항, 불편사항, 민원 그리고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헌신한 숨은 미담 등을 저를 직접 만나 말씀하시듯 보내주십시오. 건의하신 내용은 최선을 다해 국정에 반영토록 노력하겠으며, 처리 결과는 빠른 시간 내에 이 홈페이지를 통하여 회신하여 드리겠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언제부터의 누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현재 673건의 의견 개진이 있었고, 666건의 답변을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참여정부의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는 제도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지난 7월 3일 이곳에 '카이스트 풍동실험실 폭발 사고에 대한 유족의 호소'란 제목으로 한 건의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그 가운데 이 부분에 관한 내용만 잠깐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편지 전문은 www.most.go.kr/에 접속하시면 보실 수 있음).
과기원측에서는 추모 기념사업을 할 재원이 없다고 합니다. (중략) 저희는 사업의 영속성을 위해 재단법인 설립을 원합니다만, 학교측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꼭 희생된 저희 아이를 위해서 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카이스트를 발전시키고, 우리나라 이공계를 발전시키고, 우리 국력을 튼튼히 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인데 다만 이번 사고가 그 계기가 되었다고 정책적 판단을 해 주십시오. 그래서 추모 사업을 위한 재단법인이 설립되도록 기금을 출연해 주십시오. 몇 십억 정도의 기금이 모아지면, 그 기금으로 그 해에 가장 우수한 학술적 업적을 낸 학자를 선정하여 그분에게 상금(또는 학술연구장려금)을 주어 격려해 주고 실제 학술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해 주면 우리 이공계가 한층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저희 욕심은 그 상에 저희 아이 이름 하나 붙여 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 재단은 저희 소유도 아니고, 학교 것도 아니고, 결국 우리 사회 공유의 재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 현재까지 제가 제기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장관님의 답변이 없습니다. 다른 분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빼 놓지 않고 답변을 주시면서 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안에 따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한 달하고도 열흘이 두 번이나 넘는 시간은 검토의 시간으로서 너무 길다고 생각됩니다. '장관과의 대화'가 그저 형식적인 제도가 아니라 그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자면, 한번 말해 놓고 무한정 기다리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다행히 과기부에서는 7월 8일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 설치된 연구실험실의 안전 관리를 위해 올해 안에 '연구실험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과기원 실험실 폭발사고를 계기로 이런 법이 만들어져 이공계 학도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잘된 일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저희 아이의 희생이 관련 연구자들에게 얼마간 기여했다고 생각되어 슬픈 마음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현 정부에서는 국가적 위기에 봉착한 이공계 기피 현상 해소를 위해 공직 진출 확대를 비롯한 이공계 우대 정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도 좋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명석한 두뇌의 인재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일환으로 이공계 학자들이 명예와 함께 연구 수행에 실질적 보탬이 될 수 있는, 그래서 누구나 꼭 한번 받아보고 싶은 그런 상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게 저희 꿈이고 소망입니다. 그런 상이 만들어져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저의 아들이 영원히 우리 이공계에 살 수 있다면, 비명횡사한 그 영혼이나마 구천을 떠돌지 않고 안식할 수 있을 것이며, 저희들의 참담한 절망도 차츰 소산(消散)되리라고 생각됩니다.
과기부의 힘만으로 어렵다면 정부의 다른 부서나 뜻 있는 독지가들의 고귀한 동참에 의해서라도 이 일이 꼭 성사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소중한 아들을 잃은 제가 정부 당국이나 학교에 요구하는 유일한 채권이며, 전도유망했던 한 공학도를 '강제로' 저승에 보내고 대신 살아남은 사람들이 반드시 갚아야 할 채무(債務)라고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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