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여름철, 가을철, 겨울철 4계절이 우리나라에서는 5계절로 바뀐 사실을 아시나요? 새로 생긴 계절은 바로 '입시철'이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입시철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볼 때 한 번이었는데 이제는 1년 내내 이 계절이 되어버렸네요. 수시모집제도 때문인데요. 아침에 신문을 펼치면 온통 '입시철'에 맞춘 기사들이 가득합니다.
29일치 신문들도 계절에 걸맞은 입시 중계 보도로 장식됐네요. 그런데 입시철에도 따라다니는 독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교육비' 아닐까요? 이날 사교육비 관련 두 개의 기사가 눈길을 끕니다.
하나는 '학원강의 시범학교 신설과 보충수업 제한적 허용' 기사입니다. 교육부가 28일 사교육비 경감대책 2차 회의를 갖고 '오는 10월부터 학원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범학교를 만드는 한편, 현재 금지되고 있는 보충수업을 지역 여건에 맞게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된다'(국민일보)는 내용인데요.
이 문제는 '입시위주 교육의 병폐'와 맞물려 논란이 될 부분이죠. 하지만 이날 아침 <국민일보>와 <한겨레신문> 독자만 이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신문들은 입시전략 보도 때문에 지면이 부족했는지 다루지 않았네요.
또 다른 하나는 '학부모의 모순된 교육관'을 실은 내용입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학부모 2500명을 뽑아 조사한 결과 83%는 '인간성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52%가 '사교육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었죠. 이를 언론들은 "몸 따로 마음 따로"식으로 표현했네요.(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매일경제)
왜 이런 학부모들의 '따로 노는 몸과 마음'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요. 그 까닭은 신문의 지나친 입시보도와 다음과 같은 '이상야릇한 학원홍보'도 한몫 했다고 봅니다.
같은 날 사교육비 관련 위 두 개의 기사를 아예 싣지 않은 조선일보의 교육 섹션면 5개면을 펼쳐보죠. 먼저 '입시전문가'들의 기고문으로 꾸민 이 기사들의 제목부터 훑어볼까요.
"수시전략-내신 성적 좋을 땐 일단 도전하라"(교육 1면)
"수능 최저학력 기준 2등급 이내 들어야"(교육 2면)
"지방국립대-하향지원말고 상위권은 유망학과를"(교육 3면)
"실업계 지원전략-내신 성적 좋으면 면접에 승부 걸어라"(교육 4면)
"면접·구술 전략- 질문 초점에 맞춰 쉽게 표현하라"(교육 5면)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죠. 이날 이 기사들은 고3 담임교사들이 학교에서 할 일을 빼앗는 과한 보도였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긴 신문들이 고3 담임교사들을 '입시전문가'로 취급하지 않은지는 오래됐죠. 이제 독자들은 입시전문가 하면 사교육 전사들인 '학원강사'들이 단박에 떠오를 겁니다.
이날 조선일보의 기사들도 마찬가지. 5개 면 가운데 1개 면만 교사 글을 받고 나머지 4개면은 죄다 사교육 종사자들의 글이었습니다. 차례대로 교육 2면은 이 아무개 ㄷ학원 평가실장, 3면은 김 아무개 ㅈ학원 원장, 교육 4면은 백 아무개 ㅇ토피아 중앙교육 평가실장, 교육 5면은 유 아무개 ㄱ학력평가연구소 평가실장이었죠(여기서는 조선일보와 달리 이니셜로 표시함).
물론 이런 일을 조선일보만 벌이는 것은 아니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신문들이 비슷한데요. 경향신문도 지난 7월 8일치 신문에서 '수능 D-100 출제경향 캐면 답이 나온다'란 기획기사 끝 부분에 다음처럼 적었네요.
"도움말=ㄱ학력평가연구소 유아무개 평가실장, ㄷ학원 이아무개 평가실장, ㅈ학원 김아무개 평가실장, ㅈ교육 백아무개 평가실장"(이 또한 경향신문과 달리 이니셜로 처리함)
사정이 이러니 언론에서 지목한 '입시전문가'가 속해 있는 사교육을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가슴 쓸어 내리는 학부모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요.
교육부가 이런 학부모 마음을 헤아려(?) 학원강사의 학교 강의를 이미 허용했으니 그 얼마나 넓은 아량일까요!
그런데 문제는 남습니다. '사교육비'를 걱정하지 않는 우리 언론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사교육 망국론'이라면서 점잖게 한숨 내쉬는 사설과 칼럼이 얼마나 많았나요.
하지만 지면 한 쪽에서는 '입시전쟁터'에서 떨고 있는 학부모들한테 사교육 전사들을 홍보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사교육을 놓고 '몸 따로 마음 따로' 갈팡질팡하고 있는 학부모 뒤엔 '말 따로, 행동 따로'인 몇몇 신문이 분명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