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30, 눈을 흠뻑 맞으면서 도착한 곳은 스카유(酸ヶ湯) 온천장으로 여태 남녀가 같은 탕 안에서 벌거벗고 함께 온천욕을 한다고 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믿거나 말거나로만 알았던 남녀혼욕 현장을 실제로 본다는 데 여간 호기심이 발동치 않았다.
탕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설마 남녀가 벌거벗은 알몸으로야 한 탕에 들어가지 않을 테지’하며 이 문명국가에서 원시의, 야만의 풍습이 아직도 남았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하는 일인들은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이상해 하지 않았다.
구로다가 떠난 후, 나의 말동무 겸 안내인은 아오모리현의 곤씨였는데, 그는 30대의 여성으로 꽤 미인이었다. 그는 “정말 남녀가 한 욕조에 들어가느냐”는 나의 질문을 오히려 이상해 하며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는 듯했다.
마침내 남자 탈의실을 통해 욕탕으로 들어갔다(필자 일행은 옷을 입은 채). 탈의실과 출입구만은 남녀가 달랐다. 욕탕은 꽤 넓었는데, 욕조의 넓이는 배트민턴 코트 정도였다.
욕조 가운데를 경계로 왼편은 남자, 오른편은 여자용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 경계는 칸막이나 줄을 쳐두지 않고 욕조 가운데 기둥을 세워 ‘男’ ‘女’란 글씨로만 구분해 두었다.
입장 직후는 탕 안의 온천수에서 나온 수증기로 시야가 흐릿했지만 곧 욕탕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용 욕조에는 서너 사람이 욕조에서 고개를 내민 채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고, 여자용 욕조에도 두어 사람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 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온천욕을 즐겼다.
카메라 셔터를 두어 번 누른 후, 좀 더 적나라한 장면을 기다렸다. 마침내 30대 전후의 풍만한 여성이 들어왔다. 그는 한 손으로는 젖가슴을, 다른 한 손에는 수건을 들고서 음부를 가렸다. 나는 그 정도로도 만족하고 더 이상은 기대치 않았다.
그는 탕 안에 이국의 나그네를 전혀 의식치 않고 물바가지로 온천수를 떠서 온몸에 끼얹고는 일어나서 유유히 탕 안으로 들어갔다. 물바가지로 온천수를 온몸에 끼얹을 때부터 탕 안으로 들어가는 2, 3분 동안, 나는 그의 윤기가 번들거리는 새까만 음부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었지만 차마 카메라의 셔터는 누를 수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들떴던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의 음부를 골똘히 바라보는 내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치신머리없는 뭔 짓거리냐는 자괴감이 엄습했다. 나는 곧장 욕탕을 벗어났다. 곤씨가 싱긋 웃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않고 그를 외면했다.
태초에는 남녀가 벌거벗은 채로 함께 살았을 것이다. 일본에는 그때의 풍습이 아직도 남아 전해질 뿐이 아니겠는가? 남녀 혼욕의 풍습은 일부 유럽국가에도 전해 내려온 바, 내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갔을 때도 그곳에도 남녀 혼탕이 성업 중이라고 했다.
그때 안내인(가이드)이 혼욕탕에 들어갈 용의가 있는 분은 안내하겠다고 하였으나 사양한 적이 있었다. 안내인(가이드)은 이성의 알몸을 보기도 하지만 실은 내 알몸도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서 그 말도 맞아서 크게 웃은 바 있었다.
벌거벗은 알몸뚱이는 어떻게 보면 거짓도 위선도 모두 팽개쳐 버린 인간 본래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사람이 자꾸 가리고 금기시하면 더 보려고 하고, 그 금기를 깨트려 버리고자 하는 게 사람의 고약한 마음이 아닐까?
그러나 한편으로 사람이 벌거벗고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금수와 무엇이 다르랴.
곤씨가 굳이 커피 한 잔을 샀다. 차에서 돌린 찹쌀떡에 대한 답례인가 보다. 그네들은 "Give & Take", 그런 문화에 아주 철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