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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교동에 처음 온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그렇게 들이 넓은 섬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강화에 붙어있는 섬이라고 하니까, 어지간한 초등학교 운동장만할 줄 알았나 보다. 섬 한가운데 들어오면 전혀 섬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이 가을이면 황금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담아내는 그림이 사뭇 다르다.

또 하나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니, 웬 전봇대가 그리 많냐?’는 것이다. 하나하나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수천 개도 넘을 것이다. 전봇대 종류도 다양하다. 큰 전봇대, 중간 전봇대, 작은 전봇대… 전봇대란 전봇대는 다 모인 것 같다. ‘아니 무슨 섬에 전봇대가 그리 많은가?’

ⓒ 느릿느릿 박철
교동은 넓은 들판이 다 논이다. 저수지 물을 수로를 이용하여 각 논에 끌어 들인다든지, 각 논배미마다 관정시설을 해서 지하수를 퍼 올린다든지 하려면 전기모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전기가 없으면 안된다. 그러니 논배미 구간마다 전봇대가 서 있다. 전봇대가 없으면 전기를 끌어올 수가 없다. 그러니 전봇대가 어지럽게 서 있다. 타박할 것이 아니다. 전봇대가 아무 할 일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전봇대의 사명이 막중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전봇대는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춥다 덥다 한 마디 불평이 없다. 참 고마운 전봇대이다. 교동은 그러고 보면 전봇대 없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전봇대가 늘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을 보면 늠름하다. 누가 수고한다고 말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는 데도 자기 할일을 다 한다. 얼마나 장한 전봇대인가?

ⓒ 느릿느릿 박철
어느덧 교동에 들어와 산 지가 7년이 되었다. 7년 동안 살면서 수많은 전봇대와 정이 들었다. 전봇대를 쳐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에 달리기를 하다 전봇대를 만나면 나는 꼭 인사를 한다. 큰 전봇대를 만나면 존댓말을 쓴다.

“전봇대님,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러면 큰 전봇대도 나에게 말을 한다.

“박 목사, 힘들지 않아? 힘들면 뛰지 말고 걸어. 이제 나이를 생각해야지.”

또 작은 전봇대를 만날 때도 있다. 작은 전봇대는 동생 같아서 말을 놓는다.

“야, 전봇대야! 잘 잤니?”
“예, 잘 잤어요. 아저씨 어제는 별일 없으셨어요?”


교동에 처음 이사 와서 사진기를 둘러메고 교동 풍경을 찍으러 나갔다. 너른 들판을 찍는다든지, 바다 건너 북한 연백을 찍는다든지 하면 꼭 전봇대와 전깃줄이 가로 막는 것이었다. 눈에 거슬렸다. 전봇대가 귀찮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 느릿느릿 박철
그러던 어느 날, 필름 몇 롤을 강화 DP점에 가서 인화해 왔는데, 눈에 거슬리기만 했던 전봇대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 표정이 얼마나 다정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전봇대를 성가시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전봇대하면 여러 가지를 연상한다. 우리 누나 어려서의 별명이 전봇대였다. 키가 크다고 해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래서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전봇대라고 불렀다. 어려서 누나보고 전봇대라고 부르다가 나이 들어 누나라고 부르기가 무척 쑥스러웠다.

“누나야! 미안하다. 내가 전봇대라고 놀려서….”

지금 그 전봇대가 50살이 넘었다. 아들이 둘인데, 막내는 대학생이고 큰 아들은 올 연말에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게 되었다. 전봇대 누나도 늙어간다. 초등학교 때는 키가 나보다 훨씬 더 컸는데, 이제 내 어깨밖에 안 온다. 본지 오래되었다. "전봇대 누나야, 보고 싶다."

ⓒ 느릿느릿 박철
또 전봇대하면 생각나는 것은 동네 견공들이 전봇대에 다가 와서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싸는 모습이다. 아직 그 이유를 모르겠다. 왜 하필이면 다른데 놔두고 전봇대에 와서 오줌을 싸는 것인가? 전봇대한테 미안해서 한 쪽 발을 들고 오줌을 싸는 것일까? 다 큰 개들은 그렇다고 치고, 강아지들도 다리 한쪽을 들고 오줌을 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말든’ 하는 말도 있다. 하필이면 아무 죄가 없는 전봇대가 그 대목에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 까닭을 모르겠다. 실제로 전봇대로 이빨을 쑤실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런 과장된 표현이 아무런 여과 없이 쓰여 지고 있다. 아름다운 말 같지는 않다. 전봇대가 그 말을 들으면 얼마나 섭섭하겠는가?

ⓒ 느릿느릿 박철
우리 교회 아이들이 제일 잘 부르는 노래가 전봇대이다. 백창우씨가 아동문학가 이원수님의 시에 노래를 붙였는데 정말 재밌게 노래를 만들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이 찬송가보다 우리나라 전래동요나, 최근에 만들어진 동요를 더 많이 부른다. 백창우씨 노래를 다 외워서 어떤 곡이나 잘 부른다.

아이들과 승합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꼭 백창우의 ‘전봇대’노래 합창을 시킨다. 아이들이 노래를 작은 소리로 부르면 크게 부를 때까지 시킨다. 군대에서 군가를 작게 부르면 혼쭐나듯이. 우리는 다같이 큰 목소리로, 악을 써가며 전봇대를 부른다. 그러면 기분이 정말 좋아진다. 백창우씨가 노래를 참 잘 만들었다. 언제 만나면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다. 백창우씨의 탁월한 노래 만들기 솜씨는 앞으로도 계속될 줄 믿는다.

ⓒ 느릿느릿 박철
전봇대- 전봇대- 전봇대- 전봇대-
바람부는 들에- 나-란히 서-서 손에 손 서로 잡고 어디까지 이었나
눈-오는 함경도는 아-버지 계신 곳 게까지도 이었나
전봇대는 먼뎃말도 전해준다지 귀-대고 천리밖에 말도 한다지
전봇대 전봇대 전봇대 전봇대 전봇대 전봇대 전봇대 전봇대
아무리 기다려도 아니오시는 울아버지 소식 좀 전해주려마
전봇대- 전봇대- 전봇대


아내가 오늘 무슨 이야기 쓸 거냐고 해서 ‘전봇대 이야기’나 써볼까 했더니, 아내가 밥을 먹다가 내게 묻는다.

“여보, 그런데 남자들은 왜 개처럼 전봇대에다 오줌을 누는지 알아요?”
“글쎄? 그럼 여자들은 전봇대에다 오줌을 안 누면 어디다 오줌을 누는데…?”


ⓒ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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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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