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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자매>의 첫 장면 저작권 서울 프린지 네트워크
ⓒ 한정림
극장에 들어간 관객은 숨을 멈추고 사뿐사뿐 걷게 된다.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 위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배우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연극이 시작되어도 공연 전부터 바퀴달린 탁자 위에 올라가 있던 ‘세 자매’는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장면의 전환도 없고 배우의 이동도 없는 용기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실험. 바로 일본 현대 연극사를 새로 쓴 세넨단(靑年團)의 신작 <세 자매>이다.

극단 세넨단(靑年團)은 1983년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를 중심으로 결성된 극단이다. 히라타 오리자가 제창했던 ‘현대구술 연극이론(배우들의 대사를 일상생활과 똑같은 성량과 톤으로 하는 것)’을 통한 새로운 연극양식을 선보이며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그 이후 일본 현대 연극계의 중심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수 회의 북미와 유럽 공연 이외에도 1993년 <서울시민>이라는 작품(이 작품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한국어 대사를 외워 연기했다)으로 한국 관객과 처음으로 만났고 작년에는 연출가이자 연기자인 박광정씨가 세넨단의 대표작품은 <도쿄노트>를 서울에서 상연하기도 했다.

▲ 막내딸 이리나를 사랑하는 뚜젠바흐 남작과 불륜에 빠진 마샤(제일 왼쪽), 그리고 올가
ⓒ 한정림
최근 세넨단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세넨단 소속의 연출가가 극단 내에서 유니트를 만들어 독자적으로 기획 공연을 하고 있다. 이번에 서울프린지 페스티발에서 상연되는 <세 자매>도 세넨단 내의 새로운 유니트 ‘지점(地點)’의 2003 신작이다.

유니트 ‘지점’의 연출가 미우라 모토이는 대사로부터 감정을 빼고 모든 의미를 제거한 뒤, 음표, 혹은 소음처럼 입에서 내뱉어지는 대사를 추구한다. 어떤 의미도 드러내지 않는 부조리한 말들이 모여 전체가 되어 인간의 업과 애증을 그려내는 것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다.

일본 연극계에서는 그의 전위적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안톤 체홉 원작의 <세 자매>와는 달리 기괴하며 쓸쓸한 느낌의 세넨단의 <세 자매>는 70분 동안 1막으로 진행되는데 쉴 틈 없이 배우들이 내뱉는 일본어 대사가 마치 노래소리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 일부러 자막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출자 미우라 모토이는 의도적으로 자막을 배제시켜 관객들이 좀더 배우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도록 한다.

▲ <세 자매>의 한 장면
ⓒ 한정림
기존의 말을 파괴한, 띄어 읽기, 일상대화에서는 볼 수 없는 억양과 음의 높낮이. 이러한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세 자매’가 사는 세계는 망상의 세계로 보여지며 현실과 괴리된 그들 존재의 애달픔, 덧없음을 잔인하게 보여준다.

4막으로 이루어진 원작은 1막으로 구성해 장면 전환이 없는 단막으로 만들었으며 원작의 에피소드를 압축된 상징과 동작으로 보여준다. 참고로 극장에 들어갈 때 <세 자매>에 대한 안내 자료를 받아 미리 챙겨보면 이 작품의 함축적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정한 세넨단의 <세 자매>는 9월 7일까지 홍대 앞 씨어터 제로에서 오후 4시, 1회 상영된다.
문의; 02-325-8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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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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