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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보물 상자. 오른쪽이 아내 것, 왼쪽이 내 것이다. 아내의 보물상자에 파란 리본으로 묶여진 것이 <어린왕자> 엽서책이다.
우리 부부의 보물 상자. 오른쪽이 아내 것, 왼쪽이 내 것이다. 아내의 보물상자에 파란 리본으로 묶여진 것이 <어린왕자> 엽서책이다. ⓒ 정철용
대신 더욱 소중한 것이 내 보물 상자 안에는 들어 있습니다. 바로 18년 전 '그녀'와 만난 이후, 그녀로부터 받았던 수많은 엽서들과 편지들과 카드들입니다. 물론 그녀는 지금 나와 한 침대를 쓰는 사이가 되었지요. 아내도 나에게서 받은 수많은 엽서들과 편지들과 카드들을 소중하게 모아 놓은 보물 상자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집에 불이 나서 단 하나의 물건만 가지고 나올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나오겠는가?"하고 영어 교실의 키위 선생님이 물었을 때, 아내는 주저없이 "연애시절 남편에게서 받았던 편지들"이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그 보물 상자는 아내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만약 내가 그런 질문을 받았더라도 마찬가지 대답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소중한 보물 상자지만 그것을 열어보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보물 상자를 자주 열어보면 그 신비한 매력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의 보물 상자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습니다. 책꽂이 맨 아래 서랍장에 깊숙이 놓아둔 내 보물 상자는 빛을 못 본 지 오래되었고 아내의 보물 상자도 옷장 선반 위에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잠자던 보물 상자들을 어제 일요일 오후에 열어보았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보았던 영화 <클래식> 때문이지요. 매달 두 편씩 한국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주고 있는 뉴질랜드 한국영화회의 9월 첫 상영 작품이 바로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이었던 겁니다.

풀밭 위의 연인들. 시와 사랑으로 우리는 함께 묶였다.
풀밭 위의 연인들. 시와 사랑으로 우리는 함께 묶였다. ⓒ 정철용
아내와 딸과 함께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많이 울었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우리 산하의 모습에 눈물이 나왔던 거지요. 교복을 입고 다녔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시와 연애로 가슴앓이했던 나의 대학교 시절이 영화 화면에 겹쳐 떠오르면서 이제는 지나가버린 그 청춘의 시절이 한없이 그리웠던 거지요.

그리고 영화 속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지혜-손예진 분)이 다락방에서 발견한 엄마의 보물 상자에 담긴 편지들과 엄마가 사랑했던 이(준하-조승우 분)가 남긴 일기장에서 엄마의 아픈 첫사랑을 읽게 되는 것처럼 먼 훗날 내 딸아이도 엄마와 아빠의 보물 상자에서 발견한 편지들을 읽고서 우리의 사랑을 알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오후에 보물 상자들을 꺼내 그 많은 엽서들과 편지들을 하나하나 들춰보았습니다. 5년 6개월의 연애기간 동안에 아내가 내게 보낸 엽서는 100여 장이나 되고 편지도 50통이 넘더군요. 그런데 내가 아내에게 보낸 것은 더 많아서 엽서가 120장이 넘고 편지가 70통이나 되더군요.

너무나 많아서 다 읽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우선 아내가 내게 보낸 엽서와 편지들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여 읽었습니다. 그 안에는 고스란히 우리 청춘의 시간이 들어 있었습니다. 눈부신 첫사랑의 떨림이 간직되어 있었고 헤어짐이 잦았던 우리 사랑의 아픈 흔적도 있었고 마침내 확인된 서로의 사랑에 대한 굳은 맹세도 있었습니다.

아내에게서 받은 첫 엽서. 별처럼 행운처럼 그녀는 내게 날아들었다.
아내에게서 받은 첫 엽서. 별처럼 행운처럼 그녀는 내게 날아들었다. ⓒ 정철용
아내의 첫 엽서는 우리가 시 창작 문학 동아리를 결성하기 위해서 만난 지 두 달이 좀 지난 5월의 어느 날, 내가 다니는 대학교로 날아들었습니다. 그것은 한 면을 오각형의 작은 별들로 가득 채운 엽서와 중간고사를 잘 치르라고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스카치테이프로 코팅하여 붙인 엽서를 서로 이어붙인 것이었지요.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먼저 말을 못하고 있던 내게 무수한 별들과 네 잎 클로버 한 장을 함께 보내준 그녀의 이 아름다운 엽서는 너무나 큰 기쁨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엽서 속에서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알아보았고 그래서 답장을 보냈지요. 그 답장에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밤마다 네가 별을 그리는 걸 보았어."
"……."
"그런 날이면 네 머리맡에서 네 꿈을 지켜주고 싶었어."

그리고 그는 조그맣게 웃었다.

아내에게 보낸 나의 엽서. 오리온좌는 우리 사랑의 성좌가 되었다.
아내에게 보낸 나의 엽서. 오리온좌는 우리 사랑의 성좌가 되었다. ⓒ 정철용
이렇게 해서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꿈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었습니다. 별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표지가 되었고, 가을에서 초봄까지 늦은 귀가길에 우리가 함께 바라본 밤하늘의 오리온 좌는 우리들만의 별자리가 되어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그녀와 만나고 처음 맞이하는 1985년 겨울. 바람은 차가웠지만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의 본문을 엽서에 옮겨 적어 그녀에게 보내는 나의 손과 세 달 동안 계속된 56장의 그 엽서들을 모아 하나의 엽서책으로 묶은 그녀의 손은 조금도 시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만난 여우를 길들인 것처럼 그녀를 길들였고 나 역시 그녀에게 길들여졌지요. 그 길들임 속에서 우리는 눈부신 사랑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항상 기쁨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여러 번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내게 보낸 엽서 속의 마른 꽃처럼 우리의 사랑이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기를 원했다. 이것이 우리가 자주 싸운 이유이다.
아내는 내게 보낸 엽서 속의 마른 꽃처럼 우리의 사랑이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기를 원했다. 이것이 우리가 자주 싸운 이유이다. ⓒ 정철용
마치 어린왕자가 자신의 소혹성 B612호에서 키우던 장미처럼 섬세하고 예민한 그녀는, 별 의미 없는 나의 말 한 마디와 사소한 나의 얼굴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도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녀와 말다툼을 벌이곤 했지요.

그 말다툼은 자주 결별 선언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헤어짐은 늘 그녀의 사과 편지 또는 나의 사과 엽서와 함께 다시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헤어지고 만나기를 하도 자주 하다보니 처음에는 실연 당한 나에게 위로주를 사주기도 했던 주위의 친구들도 이제는 내 말을 믿지 않을 지경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 모든 지나간 우리 사랑의 이야기가 그녀의 편지와 엽서들을 읽어나가는 동안 내 눈 앞에 다시 펼쳐졌습니다. '보고 싶어!'라는 단 네 글자를 대학노트 가득 파란색 매직펜으로 써 보낸 그녀의 편지를 다시 보는 순간, 왈칵 내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없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없다. ⓒ 정철용
밤늦도록 이렇게 그녀의 편지와 엽서들을 모두 다 읽고 샤워를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자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내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습니다. 그리고는 묻습니다.

"그래, 옛날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니 어때? 좋아?"

나는 그저 그윽한 눈길로 아내를 쳐다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내가 더없이 아름다워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늦도록 우리의 연애시절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침대에 누우면 10분도 안 되어 코를 골아대며 잠이 들던 나도 어젯밤에는 잠이 저만큼 달아났습니다. 마침내 아내가 말하더군요.

"신랑,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 옛날 편지들을 읽어라, 오늘밤 너무 좋다."

아내의 말에 나는 정말 그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냥 웃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달에 한 번씩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오히려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많은 우리의 편지와 엽서들이 거의 모두 결혼하기 전 연애시절에 주고받은 것들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지요.

각종 기념일에 주고받은 카드들을 빼고는 결혼 후에 아내와 내가 주고받은 편지는 겨우 두세 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라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아내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오늘 저녁 그 첫 편지를 아내에게 씁니다. 그대여, 사랑해요.

사랑하는 그대에게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를 처음 만난 지 벌써 1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2년만 더 지나면 그대와 함께 하면서 보낸 시간이 오히려 그대 없이 보낸 세월보다 더 길어지겠군요.

그러나 그렇게 긴 세월을 보냈어도 그대의 사랑은 아직도 예전 그대로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에 못 미치는 나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그대는 자주 보채는 것이겠지요.

2년 전 이곳 뉴질랜드로 이민 오면서 한없이 기뻐하던 우리의 생활이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자가 진 것도 그대보다는 오히려 내 탓이 큽니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다 갑자기 하는 일 없이 지내게 된 이곳에서의 백수 생활을 못 견뎌 한 것이지요. 그래서 말은 못하고 괜히 그대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뾰족하게 대한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는 이곳에서의 삶이 즐겁습니다. 그대와 함께 하는 오전의 수영과 그대와 함께 하는 오후의 산책은 큰 즐거움입니다. 책 읽고 오마이뉴스에 글 올리는 것 역시 큰 기쁨입니다. 오늘 그 기쁨의 공간에 그대와 나의 사랑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대 가슴에 올리는 글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래서 연애시절, 그 많은 엽서들과 편지들에 담아 그대에게 주었던 나의 사랑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영원히 그대 꿈의 파수꾼이라는 것을 오늘 그대에게 고백합니다.

삶이 사랑의 준말이라는 것을 그대가 가르쳐 준 것처럼, 내 삶은 바로 그대에 대한 사랑에 있음을 그대에게 고백합니다.

돌아보면 언제나 내 뒤에서 웃고 있는 그대에게 오늘 사랑한다고 수줍게 말합니다.

2003년 9월 8일 저녁
그대 꿈의 파수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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