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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칼을 맞고 쓰러진 사건 현장. 이 곳은 고인의 자취방에서 불과 10m 떨어진 장소다.
고인이 칼을 맞고 쓰러진 사건 현장. 이 곳은 고인의 자취방에서 불과 10m 떨어진 장소다. ⓒ 위정은
2일 발생한 사건이 3일 일제히 보도된 후 5일부터 경북대 홈페이지 게시판 '복현의 소리'에는 '사건 보도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글이 게재되기 시작했다.

고인의 친구 김원경(경북대 공대 전전부 97)씨는 게시판을 통해 "고인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 우리 아버지 역시 '시비 끝에 흉기에 찔렀다'고 알고 계시면서 왜 길을 막았는지 물어보셨다"면서 뉴스와 신문 보도를 본 사람들 대다수가 고인을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고 지나다니는 차를 갑자기 가로막는 등의 행패를 부리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편 사건 보도 이후 고인 부모님의 친구들조차 '왜 술 먹고 싸웠다니'라고 묻는 통에 어머니가 기절, 파티마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비'라 할 것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
고인 친구들, '일방적 가해'라 주장


지역 언론 대다수 사건 보도
'시비' 붙어 흉기 찔렸다는 것이 주요 골자

사건 발생 다음날인 3일, 지역 신문과 방송 및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일제히 고인의 죽음에 대해 보도했다. 아래는 각 신문방송 보도 기사를 부분 발췌한 것이다.


<매일신문> 2003.9.3
통행시비 대학생 살해 20대 피의자 영장 신청

대구 북부경찰서는 4일 손모(29)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손씨는 지난 2일 밤 11시40분쯤 대구 대현동 길에서 렌터카를 타고 가다 시비가 붙어 행인 이모(25.경북대생)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영남일보> 2003.9.3
통행시비 행인 살해, 20대 용의자 둘 검거

대구북부경찰서는 4일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손모씨(28·대구시 북구 동호동)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일행 임모씨(21·예천군 예천읍)에 대해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손씨는 지난 2일 밤 11시40분 북구 대현동 한 미용실 앞에서 신모씨(28)가 운전하는 쏘나타 차량을 타고 가다 행인 이모씨(25)가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비 끝에 이씨의 가슴부위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다.

<대구신문> 2003.9.3
통행시비에 대학생 살해

지난 2일 밤 11시40분께 대구시 북구 대현동 모 미용실 앞을 지나가던 이모씨(26·경북대학교 전자전기학부 3년)가 길을 비켜주지 않고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소나타 승용차에 탄 3명과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대구 MBC> 2003.9.3
길 막는다고 흉기로 살해

길 가던 대학생이 20대 남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습니다. 그런데 흉기를 휘두른 이유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단지 차가 가는 데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구시 북구 대현동 경북대 부근의 주택갑니다. 도로에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젯밤 11시 40분쯤 28살 손 모씨는 일행 2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승용차를 타고 가다 길을 가던 이 대학 3학년인 25살 이 모씨 일행과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흉기를 휘두른 이유는 어이없게도 차 앞을 막고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학생 이씨는 가슴을 찔려 병원으로 옮겼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결국 숨졌습니다.

<대구 방송> 2003.9.3
길 막는다며 살해

대구 북부경찰서는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며 행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29살 손모씨를 긴급체포 했습니다. 손씨는 어제 밤 11시40분쯤 대구시 복현동 경북대학교 정문근처 골목길에 승용차를 타고 가다 길가던 경북대 3학년 이 모씨등 3명이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며 차에서 내려 주먹을 휘두르고 이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일간스포츠> 2003.9.3

대구 북부경찰서는 3일 길을 비켜주지 않는 대학생과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손 모 씨(28)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손 씨는 일행 2명과 함께 지난 2일 오후 12시께 대구 경북대학교 정문 부근 골목길에서 승용차를 몰고 가다 이 모 씨(25.경북대 3년) 등 대학생 3명이 앞길을 비켜주지 않자 말다툼 끝에 이 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하고 달아난 혐의다. [연합]

<헤럴드경제> 2003.9.4
길 안 비켜준 대학생 살인

대구 북부경찰서는 살인 등 혐의로 손모(28-무직) 씨를 긴급체포 했다. 손씨는 일행 2명과 함께 대구시 경북대 정문 부근 골목길에서 승용차를 몰고 가다 이모(25-경북대 3) 씨 등 대학생 3명이 길을 비켜주 지 않자 말다툼 끝에 이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고 달아난 혐의다.

/ 위정은
현재 고인의 친구들은 '길을 막아 시비 끝에 흉기를 휘둘렀다'는 보도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사건 발생 직전까지 고인과 함께 있었다는 이한철(경북대 공대 전전부 97)씨는 "고인과 동행한 강씨의 말에 따르면 술을 먹고 시비가 붙은 것이 아니라 길을 가던 사람이 일방적으로 상해를 입은 것"이라며 "미처 대응할 여지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씨가 전한 말에 따르면 2일 밤 11시 40분 경대 쪽문에서 술을 마신 고인과 강모씨(친구), 박모씨(후배)는 정문으로 올라가는 길(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이 때 뒤 쪽에서 클랙션 울리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빠른 속도로 차가 오고 있었고, 좁은 길이라 비키는데 시간이 지체되자 차에 탄 사람들이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지나갔다. 이에 몇 마디 대꾸를 하는 순간 차가 서더니 운전석에서 한 사람이 내려 손잡이가 없는 30cm 길이의 칼을 휘둘렀고, 조수석에서 내린 사람이 강씨의 멱살을 잡아 강씨가 저항했다고 한다.

"갑자기 '튀자'라는 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어느새 고인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더랍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고 고인의 경우 별다른 저항을 할 새도 없이 칼을 맞은 것이지요."

해당 언론사에 정정 보도 요구
"담당자 없다, 나중에 연락주겠다."


가해자들이 폭행사건을 저지르고 도주하는 중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았단다. 도로와 인도가 구분되지도 않은 좁은 골목길, 폭력 전과범들의 도주 와중에 벌어진 살인 사건이 '통행 방해 시비'로 보도되면서 고인의 친구들은 해당 언론사에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

"고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정정 보도를 했지만 대체로 '그럴 수 없다'는 태도였습니다. 언론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지요. 한 번 거절을 한 후에 다시 연락을 하니 지금 담당자가 없다, 나중에 연락주겠다는 식으로 시간을 끌었습니다. 솔직히 이제는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이한철씨는 "솔직히 학교 주변에서 '길을 막았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어 살인이 났다는 거 재밌는 기삿거리 아닙니까? 확실히 알아보지도 않고 눈길 끌기 위주로 쓴 기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든지 알고나 있는지…."하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또 이씨는 그날밤 고인을 지나친 수많은 차들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못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이 칼을 맞은 것은 11시 40분이었는데 사망 시간은 12시 40분이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친구를 안고 차를 잡으려고 했지만 다들 외면했고 결국 경찰차를 타고 병원까지 옮기는 데만 40분이 걸렸다는 겁니다. 사망 원인이 뭔 줄 아십니까? 과다출혈이었습니다."

"명예 졸업장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학교 차원 위로, 전혀 없어


경북대 쪽문에서 정문으로 가는 길은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좁은 골목길이다.
경북대 쪽문에서 정문으로 가는 길은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좁은 골목길이다. ⓒ 위정은
경남 마산이 고향인 고인은 군대 제대 후 복학해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개강 이튿날 '칼을 맞지'만 않았더라면 1년 뒤 졸업을 할 학생이었다. 고인의 형은 학교 인근 자신이 생활하던 자취방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에서 생을 마감한 동생에게 학교에서 '명예 졸업장'이라도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총학생회 측에서는 경북대 총장에게 명예졸업장 수여를 요구했고 학교측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추석 연휴 이후 학생 차원의 성금 모금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대학 본부 및 전자전기컴퓨터학부(이하 전전컴) 교수회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한철 씨는 사건 이후 본부로부터 한 차례 '등록금 환불고지서'를 받아가라는 연락을 받은 것 외 별도의 연락은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또 전전컴 학장과 한 차례 면담이 있었으나 위로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으며, 고인의 빈소에 전전컴 교수회 명의의 화환이 온 바가 있다고 한다.

해당 사건은 형사 사건이기 때문에 유가족이 합의를 할 경우 일정 정도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지만, 합의하지 않을 경우 가해자는 단순 형을 살게 된다. 현재 유가족 측은 절대 합의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밤길이 무서워요"
경북대, 학내·외 치안 강화 요구 높아

지난 2일 경북대 쪽문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학내 구성원의 치안 강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고인의 명복을 비는 한편 학교 인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에 충격과 공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교수는 '복현의 소리' 게시판에 △ 학교 내에 청원경찰을 둔다 △ 일몰 이후 야간에 경찰이 학교 주변과 학교내를 순찰하도록 한다 △ 으슥하고 필요한 곳에 긴급(비상) 전화를 설치한다 등의 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청원 경찰은 전문적인 인적역량이 부족하고 지속적인 역량유지(예:훈련)가 곤란하며 민간인에 가까운 특성상 유사시에 대처가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 인근 3개 파출소의 경비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할경찰서에 요청하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하지만 한정된 파출소 인력을 대학 내에 배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체적 노력이 요구된다. 이에 최성택(경북대 총학생회장) 씨는 게시판을 통해 "학내 자치 규찰대 구성은 몇 년 전부터 본관에 제안한 바 있으나, 규찰대의 법적 규정이 모호해 본부가 공식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다"면서 "최근 학내에서 도난 사건 및 성추행, 폭력, 금품갈취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바 시급히 학생회 간부들을 중심으로 자체 규찰활동을 재개하고 본부와 더 재빠른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위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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