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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만해도 비포장도로였던 곳이 어느새 아스팔트로 바뀌어 있다. 바로 닌빈(Ninh Binh)으로 가는 길이다. 닌빈의 제방은 새롭게 지어졌고 배를 타고 유람하는 코스 역시 시간에 따라 세분화되었다. 모두 관광객 유치를 위한 조치이지만, 나처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이곳을 찾은 여행객에게는 그런 인공적인 모습이 눈에 약간 거슬린다.

▲ 닌빈 호아루 선착장으로 가는 입구. 아스팔트 공사가 한창이다.
ⓒ 양유창

영화 <인도차이나> 촬영지로 유명해진 덕분인지 닌빈의 개발 속도는 무척 빠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난개발로 허우적거리는 자연이 있다. 하지만, 아직 정도가 그리 심한 편은 아니어서 고혹스런 풍경을 즐기려는 여유는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고즈넉한 수로를 따라가는 뱃놀이에서 갖가지 동굴까지, 닌빈은 흔히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불린다. 단지 느낌이 비슷한 것뿐만 아니라 두 곳 모두 지질학적으로 중국 남서부의 석회암 지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닌빈에서 시작된 이러한 지세는 하롱베이를 거쳐 중국 계림까지 뻗어 있다.

▲ 나룻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 전경. 멀리 보이는 제방은 새로 지어진 것이다.
ⓒ 양유창

닌빈은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버스로 2시간 정도 거리다. 옛 베트남 봉건왕조의 도읍이었던 탓에 많은 유적지가 보조되어 있으며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부유층의 휴양지로 사랑받았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프랑스식 건축물이 눈에 띈다. 또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군 포로를 숨기고 심리전을 전개하며 전세를 뒤집은 거점이기도 한데, 이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 한 배에 두 명의 관광객이 타고 뒤에는 두 명의 뱃사공이 노를 젓는다.
ⓒ 양유창

닌빈 외곽의 호아루에서 '삼판'이란 나룻배를 타고 유람을 시작한다. 7km의 수로를 따라 세 개의 수상동굴까지 배가 다니는데, 나는 동굴 두 개만 돌아보기로 했다. 대략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구간이다. 조그마한 나룻배에 2명의 관광객과 뱃사공이 타고 닌빈을 유람한다. 좁은 수로를 돌아나갈 때마다 거대한 암석바위와 동굴이 나타나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2시간 동안 나를 안내하는 뱃사공은 아들과 함께 탄 아저씨였다. 쉴 새 없이 노를 저으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래서인지 사공들은 손 뿐만 아니라 발로도 노를 저을 줄 안다. 첫 번째 동굴이 나온 지점에서 아저씨는 여자 사공과 교대했다. 물어보니 셋은 가족이란다. 물살이 세지 않은 구간에서 그녀는 아들에게 노 젓기를 시켰다. 학교 갈 나이가 지났는데도 이곳에서 노를 저어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다소 씁쓸하게 느껴졌다.

▲ 뱃사공 가족. 서로 교대해가면서 노를 젓는다.
ⓒ 양유창

뱃사공은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로부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여자들이 앞장서 나라를 구해냈다고 하는데, 쉴 새 없이 노를 저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베트남인들에게서 그런 기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사공들은 참 친절하고 부지런하지만 물건 팔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주머니는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알았는데, 옛날 식민지 시대때 배운 것인지 관광객에게 배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덕분에 나는 그녀와 몇 가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손수 떴다는 자수를 계속해서 보여주며 사라고 했는데 정성이 대단하여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1개 5달러 부르던 것을 나중에는 3개 5달러에 샀다. 물건을 사니 아주머니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옆으로 지나가는 다른 뱃사공과 얘기를 주고받으며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도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 여자가 몰고 있는 나룻배 안에는 관광객에게 팔기 위한 기념품이 담겨 있다. 뒤쪽의 남자 두 명은 사진을 찍어서 즉석 현상, 코팅까지 해서 판다.
ⓒ 양유창

이 작은 마을에 들어온 천민 자본주의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작은 배로 떠나는 유람은 아주 즐거웠다. 그늘 한 점 없는 수로를 유영하는 동안 햇볕이 따갑고 또 우기에는 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모자를 꼭 써야 한다. 난 가져온 모자를 썼고, 뱃사공은 ‘논’ 모자를 썼다. '논' 모자는 농촌에서 참 유용하게 쓰인다. 안에 색실로써 그림이나 글을 뜨개질해서 장식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논바이터’(Non bai tho)라고 부른다. 이는 “시가 있는 논”이란 뜻이나 원 뜻은 “논을 쓴 여성을 보면 시가 절로 나온다”란 말이다.

어떤 논 안에는 조그마한 거울이 달려 있기도 하다. 또 더운 날씨에는 논을 벗어 부채 대용으로 사용하고, 동네 우물가에서는 바가지 대용으로 논에 물을 담아 마시거나 얼굴이나 발을 씻기도 한다니 그 용도가 참으로 가지각색이다.

▲ '삼판'이라 불리는 나룻배 위에 앉으면 세속의 시간은 잊어버리게 된다.
ⓒ 양유창

‘삼판’이라 불리는 배는 두 명의 뱃사공이 배를 운항한다. 한 명은 앞에서 노를 젓고 한 명은 뒤에서 배를 밀어낸다. 수심이 허리 정도에 그칠 정도로 별로 깊지 않아서 긴 막대기로 충분히 배를 밀어낼 수 있다.

▲ 평화로운 기암 산새에 놓인 작은 집에 빨래가 걸려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 양유창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낭만적인 풍경 사이로 작은 보트가 가벼운 떨림을 수면에 일으킨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바람 소리 한 점 들리지 않는 사이로 오리떼가 지나간다. 논밭을 사이에 끼고 산새를 헤쳐나간다. 유유자적, 평화를 즐기던 오후.

▲ 수상동굴로 들어가는 입구. 안으로 들어서면 신비한 어둠과 마주하게 된다.
ⓒ 양유창

한적한 수로를 따라 조금씩 전진해가던 배가 드디어 수상동굴로 들어섰다. 이 동굴의 이름은 ‘빅동’. 빅동은 이 일대 동굴 중에서 가장 큰 천연동굴로 18세기 투둑왕이 주변 풍광에 반해 극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벼랑 끝에 걸린 동굴의 원형 지붕과 고대 무덤들이 주변 풍광을 아름답게 연출한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순간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컴컴해진다.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한기가 느껴진다. 어둑어둑 침묵만이 감돌고 단지 뱃사공이 노를 젓는 모습만 실루엣으로 보일 뿐이다.

▲ 동굴을 빠져나오는 순간은 빛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짜릿하다.
ⓒ 양유창

배는 계속 나아간다. 조금 더 가면 나타나는 두번째 동굴은 ‘탐콕’이다. 항카, 항하이, 항바 등 세 개의 동굴로 이뤄진 탐콕 지대는 형태와 색깔이 다른 종유석과 석순들이 각기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중 항카 동굴이 주변 경관이나 규모면에서 으뜸이다. 동굴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은 오랜 옛날 이곳이 바다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동굴을 빠져나오자 배가 잠시 멈춰선다. 배 위에 가만히 앉아서 암석을 감상하고 있자니 산 속에 갇힌 기분이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 속에 조금씩 목이 마른다. 이윽고 다른 쪽에서 물건을 잔뜩 싣은 배가 다가온다. 사탕수수와 콜라, 과일 등을 팔러 나온 아주머니가 거의 강매하다시피 물건을 떠안기는데 그리 싫지만은 않다. 나는 사탕수수를 조금 사들고 한입 깨물었다. 맛이 약간 텁텁하다.

▲ 벼농사에 한창인 농부들. 시간이 멈춘 듯 평화로운 이곳의 농사는 올해도 풍년이다.
ⓒ 양유창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신비롭던 풍경이 낯익게 느껴진다. 중간쯤 왔을 때 한바탕 스콜이 몰아쳤다. 우산을 펼쳤지만 거의 흠뻑 젖었다. 아이에게 노를 맡기고 있던 아주머니가 다시 노를 잡았다.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2시간 가량 지속된 유람이 끝나가려는 순간이다. 멀리서 염소가 구슬피 운다. 벼농사에 한창인 수상가옥의 농부들이 우리를 살짝 쳐다본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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